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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종 목사의 평신도신학(93)] 구원이란 무엇인가?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은 구원의 방법을 묻는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했다.
당시 로마의 법은 간수가 죄수를 놓치면 그 죄수의 형기를 간수가 대신 치러야 하는 잔혹한 규정을 정해 놓았다. 그런데 지진이 일어났다. 간수는 당연히 옥문이 열려 죄수들이 모두 달아났을 것이라 믿었고 그래서 법대로 심판을 받아야 할 판이라고 생각했다.
죄수들의 남은 형기를 모두 치러야 할 바에야 차라리 자살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간수가 자해를 결심하고 칼을 빼들었을 때에 바울이 그를 만류하며 안심시켰다. 이때 간수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간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의 용서를 말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 방법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간수에게 근본적인 방법을 주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의 대답은 직접적으로는 로마 법의 심판은 물론 근본적으로 영원한 죄의 심판을 면하는 비결을 말한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성경에는 구원이라고 할 때 법의 심판인 죽음의 면제는 물론 죄의 용서나 질병의 치유같은 의미로 사용할 때도 있다.
우리는 구원이라고 할 때 흔히 미래에 있게 될 영원한 심판에서의 구원을 생각한다. 당시 유대인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주님은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과거형)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다.
성경에는 유사한 말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의 복음서인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라고 했고 로마인들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이나 헬라인의 복음서인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표현됐다.
그러나 영적 복음서인 요한복음에는 ‘영생’이란 말로 표현했고 바울 서신에서는 ‘구원’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같은 구원이라는 단어도 어떤 때는 미래적 의미로 사용하고 또 어떤 때에는 현재적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사용되는 구원이란 말은 아주 폭넓은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현재적 의미와 미래적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요한복음 5장 24절은 우리말 성경에서는 과거적 의미로 번역되었으나 원문에는 현재적 의미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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