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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의지 ⑴
2007-04-24 07:18:43   read : 2257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의지 ⑴

[신성종 목사의 평신도신학 (53)]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의지 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고 했을 때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실 때 인간은 아무 것도 자유롭게 할 수 없으며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도덕적인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미리 알고 계신다면 인간의 선택권은 어디에 있는가? 솔직히 이런 문제는 너무도 깊고 오묘한 문제이기 때문에 분명치 않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란 것은 언제나 주어진 환경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언제 어디서 태어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없다. 또 태어날 때의 능력과 환경,그 무엇도 결정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결정 사항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인간의 자유의지란 플레이펜(Playpen) 안에 있는 유아처럼 아주 작은 자유인 것이다. 많은 것이 이미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프랜시스 섀퍼는 사람들이 공을 던질 때 우리는 공을 받거나 떨어뜨리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처럼 인간의 자유의지란 것은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인간은 아주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선택권은 어떻게 보면 미미한 것이다. 공을 계속해서 공중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권한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예지는 그 자체가 모든 것을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데마가 바울 사도를 버리고 세상을 사랑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러나 그것이 데마로 하여금 영향을 주어 돌아오게 하는 소지를 주지는 않았다. 데마는 자유롭게 행동하였다. 그는 어떤 구속도 없이 자유롭게 개인적인 선택을 하였다(딤후 4:10).

또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바울 사도가 될 것을 미리 알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알고 계셨다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결정하기 전에 우리가 어떻게 선택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지가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을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J I 패커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선택은 이율배반적이라고 했다. 이런 이율배반은 심지어 현대 물리학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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