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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2006-06-03 13:20:04   read : 2673









요한계시록,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이필찬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신약학)

요한계시록을 설교한다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보수적 신학을 견지하는 대다수의 목회자들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요한계시록 해석에 대한 확신의 결여 때문일 것이다. 요한계시록 해석에 대한 확신은 설교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곧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신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의 해석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요한계시록과 같은 매우 독특한 성경을 해석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해석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선택했다 하더라도 좀더 세부적인 부분에까지 그러한 해석의 원리들을 적용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로 남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요한계시록 해석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확신을 어떻게 요한계시록 본문의 모든 부분에까지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에서 이러한 해석의 원리를 논하는 것은 목적에 벗어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요한계시록의 설교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이 글을 통해 요한계시록 해석의 원리를 제시하면서 그것에 기초한 설교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하고자 한다.

요한계시록 해석의 출발점
구체적인 논의에 앞서, 설교자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요한계시록이 유기적인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말은 누구에게도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성경이 기계적 영감이 아닌 유기적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은 매우 익숙한 사실이다. 요한계시록이 유기적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과정에서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요한계시록이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로 기록되었다고 믿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어떤 인간적 요소가 가미되었다는 견해는 그 자체가 불경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유기적으로 기록되는 과정에서, 저자 요한의 사상과 언어와 성격이 본문에 충분히 반영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며 부정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과 말씀으로 구성되었는데, 어떻게 저자 요한의 사상과 언어와 성격이 반영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요한계시록이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직접 보여 주신 환상과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저자 요한의 손을 거쳐 독자들에게 전달된 것도 사실이다. 저자 요한은 자신이 받은 계시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고 적절하게 생략하기도 하는 작업을 가미했다. 이것을 유기적인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하는 것이고, 요한계시록의 해석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성경 해석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라면 요한계시록의 해석 또한 저자 요한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저자 요한이 기록한 본문의 의도를 드러내어 청중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 때 설교자는 피상적이고 전통적인 해석에 얽매이기보다는 본문의 문맥과 문학적 구조, 신학적이며 구속사적인 배경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합리적 절차를 무시한 채, 저자의 의도보다는 설교자나 해석자의 의도를 요한계시록의 본문에 주입하려고 한다. 즉, 저자 요한의 입장에서 본문을 보지 못하고 오늘날 독자들의 입장에서 본문을 해석하려고 한다.

단적인 예로, 근래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자연적 재앙 혹은 전쟁을 포함한 정치적 사건들의 발생을, 재앙에 대한 기록으로 충만한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관련시켜 그 의미를 제시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시도는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해 주셨다는 신화적 환상에 사로잡히다 못해, 적절한 해석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매우 주관적인 설교자 본인의 영성(?)에 근거하여 본문을 마구잡이로 헤집어 놓는다.

이러한 왜곡된 해석은 설교자의 깊은 기도와 요한계시록을 다독했다는 영웅담에 의해 합리화 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야말로 저자 요한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성경이다. 설교자는 건전한 해석의 과정을 통해 저자 요한의 의도를 성실하게 파악하고 적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의 성격
다음으로 설교자가 요한계시록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기억해야 할 것은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의 성격이다. 책의 성격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해석의 기초를 세운다. 요한계시록의 성격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묵시 문학’, 둘째 ‘예언의 책’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신’이라는 것이다.

‘묵시 문학’은 간단하게 말해서 초월적 차원을 상징적 표현을 통해 기록했음을 의미한다. 초월적 차원이라면 공간적 초월로서의 ‘하늘’과 시간적 초월로서의 ‘종말’이 그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이 두 가지 요소가 매우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하늘이란 요한에게 매우 독특한 공간이다. 그곳은 하나님의 통치가 발현되는 장소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4:2~3)인 동시에,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가 승리한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7:9~17; 14:1~4).

더 나아가서 그 곳은 종말적 축복을 미리 맛보는 곳이기도 하다(참조 7:15~17). 그래서 하늘은 현재적 체험의 성격을 가지면서 동시에 미래를 맛볼 수 있는 초월적 장소이다. 이처럼 매우 독특하게 묘사되는 ‘하늘’의 의미에 대해 설교자의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매우 당연하다.

물론 설교자가 이러한 부분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더라도, 그런 내용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설교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이해와 준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준비는 단순히 영적 능력 차원이 아니라 학습을 통한 지적인 무장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예언의 책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 여기에서 ‘예언’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언은 단순히 미래의 일을 말하는 차원을 넘어서 구약 선지자들의 사역의 성격을 규정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선지자들이 예언의 사역을 감당할 때 그들은 늘 과거에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에 근거하고 그것을 의식했다.

예를 들면 선지자들은 모세오경의 율법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정죄하기도 하고 심판을 선포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나 출애굽의 역사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미래에 이루어질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과거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선지자들의 예언의 사역은 불가능했다. 이와 같이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예언의 말씀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예언의 본질이기도 하다.

예언의 의미는 예언의 책으로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공한다. 요한계시록 역시 구약에 근거하여 말씀을 전개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언은 그 자체로 성립되지 않고 반드시 앞서 말씀하셨던 내용에 근거한다. 구약의 배경 없이 예언의 말씀으로서 요한계시록은 성립될 수 없다. 예언의 사역을 수행하는 선지자 요한은 자기가 보고 들었던 환상적 계시가 철저하게 구약을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식하였고, 그것들을 구약을 근거로 통찰하여 기록했다.

따라서 설교자가 요한계시록을 올바로 해석하고 설교하기 위해서 구약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요한계시록에는 엄청나게 많은 구약적 표현들이 등장한다. 문제는 이러한 표현들이 인용의 형식 없이 문장 가운데 묻혀 있다는 데 있다. 복음서나 바울서신 등에 구약 인용이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구약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구약적 표현들을 찾아 내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부단한 학습이 필요하다. 일단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구약적 표현 방식에 익숙해지면 그 설교의 파괴력은 가히 가공할 만하다는 것을 위로 삼을 수 있다. 청중들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륜의 흐름과 성취 그리고 완성에 대한 소망을 발견하며, 성경을 보는 시야가 열리고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감동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설교자는 결국 이러한 맛에 설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1장 4~5절 말씀을 보면 요한계시록이 서신으로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이 서신이라는 사실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데 어떠한 도움을 주는가?

먼저 서신으로서 요한계시록은 그 분명한 수신자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상정한다. 요한계시록은 1차 독자이기도 한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기 위해 그들의 정황을 의식하면서 기록된 책이다. 달리 말하면 요한계시록은 사도인 저자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일곱 교회 공동체에게 선포하는 내용이라고 요약하여 말할 수 있다. 이는 설교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공한다.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저자 요한과 일곱 교회 공동체와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거나 설교할 때 이 서신의 수신자인 일곱 교회 공동체의 정황을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우리 입장에서 모든 말씀을 이해해 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이 서신이라는 매우 간단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수신자의 존재를 망각하게 되어 말씀이 공중 분해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설교자들은 요한계시록이 일곱 교회 공동체에게 어떻게 이해되었으며, 저자 요한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어떠한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그들에게 어떠한 유익을 끼쳤는가에 대해 먼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결과 설교자는 요한계시록 본문에서 저자 요한이 본래 의도했던 바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의도를 파악한 후에야 설교자는 비로소 오늘날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적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적용의 문제
적용의 문제는 각 본문에 따라 다양하게 논의되어야 하겠지만, 원칙적인 측면에서 말하면 철저하게 해석에 기초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해석과 적용의 경계가 불분명하여 적용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예를 들면 6~16장에 소개되는 인·나팔·대접 심판은 사실상 구약에서 전망했던 종말의 결과로서 설정된 것이다. 종말의 도래를 결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5장에서 책의 인을 떼시는 어린 양의 등장이다.

“누가 책의 인을 떼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한가?”(2b절)라는 질문에, 유다 지파의 사자 곧 어린 양이 그 책의 인을 뗄 것이라고 답변한다(5:5~6). 이것은 종말적 정황을 발생시킨다. 그로 인하여 다니엘 2장과 7장 등에 종말적 정황으로 전망되었던 하나님 나라가 속히 임하였기 때문이다. 구약적 맥락에서 종말은 ‘심판’과 ‘구속’을 야기한다. 그래서 6장 이후로 이 두 가지 종말적 측면이 번갈아 가면서 기록되고 있다.

특별히 6~8장에서는 인에 대한 심판 시리즈로, 5장에서 책의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이 실제로 책의 인을 떼는 장면들과 함께 심판의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심판을 저자 요한과 독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들은 오늘날 발생하는 심판을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심판들과 일 대 일로 대응하여 연결시키려는 유혹을 받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은 해석과 적용을 혼동하는 처사이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심판의 현상들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고, 오늘날 자연적 재앙을 포함한 역사적 사건들은 요한계시록의 해석을 통해 획득된 구속사적 관점을 갖고 적용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곧 다가올 심판의 시대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들로 통찰할 수 있다.

이상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지면의 한계로 인해 다소 일반론적인 범주에서 다루어 보았다. 이러한 내용으로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납득시키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요한계시록을 설교하는 점에 있어서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고, 좀더 깊이 있는 요한계시록 연구를 위한 기초가 되었으면 좋겠으며, ‘나도 요한계시록 본문을 가지고 설교할 수 있다.’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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