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서울의 강남. 부의 상징이자 부동산 열풍의 중심지인 이곳에 빈부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빈민촌이 있다. 포이동 266번지로,위용을 과시하며 솟아 있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아래 납작 엎드려 있다. 양재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타워팰리스와 266번지 판자촌은 부와 가난이 극명하게 교차되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사방을 낡은 함석판으로 두른 266번지는 밖에서 보면 높게 쌓인 고철들만 보이는 것이 영락 없는 대형 고물상이다. 근처 주민들도 쓰레기나 고철을 모아 놓는 곳으로 알지 이곳이 104가구의 보금자리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기자가 동네로 들어서자 지붕을 맞대고 서 있는 판잣집들과 골목 곳곳에 널려 있는 가정용 LPG 통,처마밑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신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민들은 1981년 정부가 넝마주이,부랑자 등을 모아 이주시키면서 이 동네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서울시 소유 체비지인 하천변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정착한 주민 150여명은 24년이 지나는 동안 104가구,350여명으로 불어났다. 266번지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3∼4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재래식 공용 화장실이 있을 뿐이다.
주민 박수길(62)씨는 10평 남짓한 판잣집에서 아들 내외와 2명의 손녀딸까지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집안에 세면대도 없어 여름에는 대야에 물을 받아 몸을 씻고,겨울에는 수돗물을 가스불로 끓여 간단한 세수만 해야 하는데 마을 전체가 이런 식이다.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 앞에 설치된 공동 우편함에서 자신의 편지를 찾던 50대 주민에게 부동산 개발 얘기를 꺼내자 곧바로 “여기서는 그거 관심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판잣집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판에 무슨 부동산이냐”고 반문했다. 서미자(49·여)씨는 “속옷만 빼면 모두 주운 물건이지만 다른 건 바라지도 않는다”며 “보잘 것 없는 집이지만 주소지라도 인정받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서씨 주민등록증에는 1989년 구획정리와 함께 대한민국 행정구역에서 사라진 포이동 200-1번지가 주소로 적혀 있었다. 서울시가 구획정리를 하며 200-1번지를 266번지로 변경하면서 이곳 주민들을 무단 점유자로 취급돼 266번지로 주민등록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266번지는 주민등록상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지구인 셈이다. 주소지가 없다보니 주민들은 인근 슈퍼마켓이나 친척집 등에 집주소를 옮겨 놓았으며 아이들은 코앞에 초등학교를 두고도 멀리 떨어진 다른 학교에 다녀야 한다.
더욱이 서울시가 1990년부터 매년 토지변상금을 청구하면서 가구마다 5000만∼7000만원씩의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모(58·여)씨는 “토지변상금 때문에 혹 이곳을 떠날 여유가 생기더라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아파트를 몇 채씩 가지고 세금 걱정을 한다는 얘기는 TV속 다른 세상 사람들의 얘기”라며 한숨 지었다.
대책위 조철순 공동위원장은 “눈만 돌리면 보이는 고층 빌딩,고급 아파트를 부러워하지도 꿈꾸지도 않는다”며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쓰러져가는 판잣집이지만 비 안새게 고쳐서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투기? 남의 나라 얘기지. 여기서는 부동산의 ‘부’자도 꺼내지 않아.” 
독자 한마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