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열대야에 에어컨이 없어 잠을 못 잔다는 데 우리는 에어컨 때문에 잠이 안 와요. 아주 미치겠습니다.”
서울 봉천동 원룸 임대업자 원모(45)씨는 23일 자신의 건물 현관에 ‘세입자님들,제발 에어컨 좀 꺼주세요’란 호소문을 붙였다. 원룸 입주자들이 에어컨을 물쓰듯 하는 바람에 엄청난 전기요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씨는 지난해부터 원룸 임대 계약을 하면서 전기요금을 관리비에 포함시켜 월 8만원을 받기로 했다.
세입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기요금을 쓰는 만큼 내게 하는 ‘종량제’가 아니라 ‘정액제’로 바꾼 것이다. 장마가 끝나고 찜통 더위와 열대야가 찾아온 지난주부터 원씨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작됐다. 전기요금 부담이 없는 세입자들이 밤낮 없이 에어컨을 틀어대기 때문이다. 원씨는 “6월엔 방 28개에서 전기료가 70만원 나왔는데 7월엔 얼마나 나올지 예측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에어컨을 정말 헤프게 쓰는 세입자에겐 다른 집으로 옮기도록 통사정하고 있다”며 “방마다 에어컨이 없으면 원룸 장사는 생각할 수도 없고,이 지역 원룸 절반 이상이 정액요금제”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봉천동뿐 아니라 서울 자양동 성수동 등 원룸 밀집지역마다 건물주와 세입자간 ‘에어컨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자양동 원룸 건물주 임모(57)씨는 지난주부터 낮 동안 한 시간마다 건물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별 생각없이 에어컨을 켜놓은 채 외출하는 세입자가 많아,빈 방에서 돌아가고 있는 에어컨 실외기를 찾아내 끄기 위해서다. 그는 “밤마다 에어컨 실외기 소리에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아 잠을 설친다”며 “뾰족한 대책이 없어 그저 무더위가 빨리 끝나기만 기다린다”고 밝혔다. 봉천동 원룸 주인 김모(64·여)씨도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켜놓는 세입자에게 달래보고 부탁도 해보지만 살인적인 더위 때문에 소용이 없다”면서 “원룸을 주로 쓰는 젊은 세대들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사정을 생각해 스스로 아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남들은 열대야에 에어컨이 없어 잠을 못 잔다는 데 우리는 에어컨 때문에 잠이 안 와요. 아주 미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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