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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서 삼서 유다서 공부
2006-10-17 03:58:34   read : 1897

요한이서 삼서 유다서


 제 1 과 사랑하며 경계하라

본문: 요한 이서 1-13
요절: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4)
요한 이서는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기 전 주후 95년 이전에 쓴 것입니다. 쓴 동기는 요한 일서와 비슷합니다. 성육신을 부인하고 성도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는 이단 사상을 경계하고, 사랑의 삶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순회 전도자들이 많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적 그리스도는 이것을 악용하여 이단설을 퍼뜨렸습니다. 순진한 성도들은 그것도 모르고 분별 없이 영접하다가 이단에 빠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묵과할 수 없어서 그들을 경계하도록 촉구하는 서신을 쓰게 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1-6)
1-3절은 인사말입니다. 수신자를 말하고 축복합니다. 수신자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 자녀”입니다. 이 말은 교회를 일컫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4-6절에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도 중에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다”라고 말합니다. “기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쁨의 원인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가 교회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행한다는 것”은 ‘진리 안에서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말은 당시에 문제가 된 영지주의의 가르침에 빠지지 않고 진리 안에 굳게 서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신앙을 지키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어서 “서로 사랑하자”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말하는 계명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고, 이미 “처음부터 들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서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다시금 교훈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문제가 많을수록 이단적 도전이 많을수록, 사랑에 힘써야 합니다.

2. 거짓 교사들을 경계해야 합니다(7-11)
7-11절은 사랑이 없고 방종을 일삼는 적 그리스도를 경계하라고 권면 합니다. 먼저 적 그리스도의 정체를 밝힙니다(7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며 성도를 미혹했던 자들을 ‘적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소위 ‘가현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가현설은 그리스도가 실제 물질적인 몸과 인간성을 갖지 않았고 단지 유령의 몸, 인간의 환영을 가졌다고 가르치는 이단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음식을 잡수신 것, 물을 마신 것, 태어나시고 죽으신 것은 모두 환영이라고 봅니다. 즉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8절)고 권면 합니다. 적 그리스도에게 끝까지 미혹 당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한 것” 곧 사도가 전파하여 믿음의 기초를 닦아 놓은 것을 헛되게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약속한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9절의 “지내쳐”란 말은 하나님의 진리에서 탈선하여 그릇 되이 새 사상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끝까지 미혹 당하지 않는 길은 “교훈 안에 거하는 것” 입니다. 진리 안에서 만족하고 진리로 살아갑시다.
우리 성도들은 이단설이 횡행하는 이 때에 조심하면서 이미 받은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서서 약속된 상(8절)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그러면 거짓 교사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접촉하지 말아야 합니다(10절).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이것은 이단에 대한 단호한 경계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라”고 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을 영접하고 교제하는 것을 단호히 금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결국 타협하는 것입니다. 이단자의 악한 일에 동참하는 일이 됩니다. 육체에 상처를 입듯이 영혼에도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제 2 과 형제를 사랑으로 영접하라

본문: 요한 삼서 1-11
요절: “이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8)


요한 삼서의 저자는 스스로를 “장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쓴 시기는 밧모섬으로 유배 가기 이전에 썼을 것이라고 보아 주후 95년 이전이라고 봅니다. 요한 삼서는 다른 요한의 서신과 큰 차이는 없으나 순회 교사의 접대문제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 서신은 가이오에게 보낸 서신으로서 그의 선하고 신실한 행위에 대한 칭찬과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는 순회 교사들을 사랑으로 접대한 가이오의 선한 행실을 칭찬하면서 권장하고 있습니다(1-8절). 반면에 주의 사역자들을 마땅히 대접하고 환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여 순회 교사들을 냉대한 디오드레베를 책망하고 있습니다(9-11절). 그리고 충성된 데메드리오를 칭찬하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12절).
우리는 요한 삼서를 통하여 초대 교회의 생생한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복음 중심으로 사는 신실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주의 일에 겸손하게 협력합시다.

1. 우리는 칭찬 듣는 신실한 일꾼이 되어야겠습니다(2-8)
1절에 “가이오”를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먼저 가이오를 위해 기도하고, 그의 믿음을 칭찬합니다(2-4절). “네가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 합니다. 신앙이 건실한 것처럼 육체가 건강하고, 모든 일이 형통하기를 바라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도는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하는 말을 전해 듣고 심히 기뻐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은 그가 받은 복음에 바로 서서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4절에 가이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즐거움이 없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사역자의 기쁨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가 진리로 무장하여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는 것만큼 기쁨과 보람은 없을 것입니다.
가이오는 어떤 진리의 실천을 한 사람입니까? 순회 교사를 잘 대접하고 도왔습니다. 5절에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5절) 했는데, “나그네”는 순회 교사를 의미하고, “신실한 일”은 물질로써 순회 교사들을 돕는 일에 있어서 성심을 다한 것을 말합니다. 순회 교사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그들을 물질적으로 힘써 보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8절).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회 교사를 돕는 것은 진리를 위한 성도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그렇게 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이오는 진리의 통일과 전파에 기여한 신실한 일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칭찬 듣는 진리의 신실한 일꾼이 됩시다.

2. 우리는 악하고 교만한 일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9-12)
9-11절에는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말하고, 그런 악행을 본받지 말라고 하면서 데메드리오를 가이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9절에 순회 교사를 접대하지 않은 디오드레베를 거론합니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라는 말은 요한이 순회 교사들에게 소개장을 써서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9절). 사도의 편지를 무시하므로 교회 지도자 가운데 머리가 되고자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항상 종의 자세를 가져야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의 권위도 무시하고, 진리를 전하기 위해 여행하는 순회 교사들을 접대하지 않은 것은 큰 교만입니다.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교회에서 내어쫓는도다”(10절)라고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열거합니다. “폄론”은 남을 깎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유위부족하여”란 말은 ‘그것도 부족하여’란 뜻입니다. 디오드레베는 1)요한의 사도권을 무시했습니다. 2)악한 말로 사도 요한과 그가 보낸 순회 교사를 비방했습니다. 3)형제들을 접대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4)그것도 부족하여 순회 교사들을 접대하고자하는 다른 교인들을 출교 시켰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10절)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 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계속해서 가이오에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11절). 사도는 그 악한 행동이 가이오에게 까지 영향을 줄까 염려한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11절).
마지막으로 가이오에게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데메드리오를 소개합니다. 그는 세 가지 면에서 검증을 받은 신실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12절). 1)뭇사람에게 증거를 받았습니다. 2)복음진리의 차원에서 흠이 없는 자입니다. 3)사도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믿을 만한 사역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삼중의 증거를 받는 일꾼이 되어야 겠습니다.
디오드레베는 이렇게 사도의 소개장을 가진 사람을 멸시했으니 얼마나 교만한 자입니까? 그는 교회에 고통을 주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결단코 그런 사람이 되지 맙시다.

제 3 과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

본문: 유다서 2-23
요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0-21)


유다서를 쓴 저자는 ‘예수의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유다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기는 주후 70-80년 사이로 추정합니다. 기록 장소는 예루살렘입니다. 이 서신은 이단의 공격으로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성도들에게 보냈습니다. 구원에 대하여 가르치려고 편지를 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위기를 느껴서 이단을 경계하고, 신앙적 자세를 견고히 할 것을 권면 하는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주변에는 사이비한 자들이 이단설로 계속 교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 성도들은 바른 믿음으로 무장하여 미혹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1. 이단은 심판을 확실히 받습니다(5-16)
1-4절은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믿음의 도리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할 필요를 느껴 편지를 쓴다”고 말씀합니다(3절). 누구와의 싸움입니까? 4절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입니다. 그러니까 이단자들은 옛적부터 이미 심판 받을 것이라고 기록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판결”이란 무엇입니까? 지금부터 유다가 말하려고 하는 심판입니다. 5-7절에서 그것을 자세히 말합니다.
그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경건치”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첫째로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는 자”들입니다(4절). ‘색욕거리’는 ‘성적 방종과 무절제’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율법과 관계없이 방종한 생활에 빠졌습니다(딤전 1:9, 10, 벧후 2:19). 둘째로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한 것을 말합니다.
이런 성격의 이단을 경계하기 위하여 서신을 쓴 유다는 이단은 확실히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교훈 합니다. 과거의 예를 들어서 심판의 확실성을 말씀합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심판(5절), 자기 지위를 떠난 천사들의 멸망(6절),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7절)을 예로 듭니다.
8-13절까지 당시 이단자들의 악행을 지적합니다.
첫째, 무아적 황홀 상태를 추구하면서 도덕적으로 방종 하는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라고 했습니다(8절).
둘째,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 했습니다(8절). 스스로 선지자나 사도로 자처하고 신앙적 규범과 제도를 훼방하였습니다. 그러면서 9절에서 “모세의 승천기”라는 위경에 있는 내용을 인용합니다. 모세의 시체를 감추려 할 때에 방해하던 마귀를 심판하지 않고 겸손하게 그 심판권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교만하게도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훼방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는데, 꼭 가인과 발람과 고라와 같이 멸망할 것입니다(11절).
셋째, 애찬을 거침없이 먹어버려 사랑의 교제를 깨뜨렸습니다(12절).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라고 했습니다. 성찬을 두려움 없이 먹고 마셔 거룩한 영적 통일과 조화를 깨뜨리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찬의 암초”일 뿐 아니라,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 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 하는 별들”(12-13절)처럼 멸망하도록 심판을 받게 됩니다.
14-16절은 이단자들을 그리스도 재림 시에 확실하게 심판할 것을 말씀합니다. 무엇을 심판합니까?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정죄”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했습니다. 그들은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을 주님은 확실히 심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단자들이 득세하는 것 같으나 결국 정죄 받아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는 멸망할 자의 주장과 그 대열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2. 이단을 경계하고 신앙을 튼튼하게 건축해야합니다(17-23)
이단의 특성을 말씀하여 경계하라고 교훈 합니다. 이단의 특성은, 첫째 당을 짓습니다(19절). 둘째 육에 속하였습니다(19절). 셋째 성령은 없습니다(19절).
이단의 공격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첫째,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해야 합니다(20절). 둘째, 성령의 감화 속에서 기도해야 합니다(20절). 셋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켜 나가야 합니다(21절). 넷째, 영생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합니다(21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우리의 신앙을 튼튼하게 건축하고 하나님과 긴밀히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안에 거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요 15:9).
그러면 이단에 미혹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라고 합니까? 미혹된 정도에 따라 대처하라고 합니다. 첫째, 신앙에 의심을 품은 자는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22절). 그들은 비록 미혹되었지만 아직 그 정도가 심각하지 않은 자입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으로 권면 하여 의심에서 헤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멸망의 불 속에 끌려 들어간 자들은 “불에서 끌어내 구원하라”고 합니다. 내버려두면 영영한 사망에 이르고 말 자들이니 황급히 사망의 불에서 끄집어내라는 것입니다. 셋째, 완전히 더러워진 자는 심히 경계하고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하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으라고 교훈 합니다(23절).
우리 성도들은 이단의 멸망은 확실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우리의 신앙을 튼튼하게 건축하고 파수하는데 열심을 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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