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교육세미나 - 특강 3. 현대 과학
2005-09-10 17:42:36 read : 1764
여전도회 교육세미나 - 특강 3. 현대 과학...
이름 : 교육부
게시일 : 2005/03/06 (수) PM 03:43:47 조회 : 539
일시: 2005년 3월 6일(수) 오전 9:00-10:30 제목: 현대 과학문명과 기독교 강사: 문영빈 교수 (서울여대) 1. 서론: 우리의 삶과 과학기술
현재 우리는 과학기술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학기술은 우리의 삶에 깊숙하게 침투해 들어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우리 삶의 부분들이 과학기술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전기, 자동차, TV, 컴퓨터, 인터넷, 핸드폰, 현대의학 등등. 잠깐 현대의학의 발전을 살펴보자. 특히, 현대의학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말해주는 좋은 예이다. X-ray, 초음파, MRI, CT, 내시경 등은 물리학적 발견과 의학의 발전이 얼마나 중요한 상관관계에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얼마 있으면 전혀 부담이 없이 약처럼 먹을 수 있는 캡슐형 내시경이 출현된다고 한다. 이 모든 의학의 발전은 우리가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부위들을 직접 간접으로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이 기술의 도움으로 우리의 뇌, 허파, 장기들, 뼈, 자궁 등 부위들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X-ray, 초음파, MRI, CT, 내시경 등 모두 우리의 시각의 범위를 크게 확장해서 의사들이 확실한 진단을 하도록 도와 주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이렇게 우리의 삶에 깊숙하게 침투해 들어와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힘이 되고 있다. 특히 지난 몇 십 년간 발전된 두 분야의 과학기술 발전은 1932년 영국의 소설가 헉슬리Aldous Huxley가 쓴 공상소설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에 기술된 상상 속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70년 전에 헉슬리가 상상한 그 전율스런 세계가 현실로 우리의 눈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상상하던 세계는 바로 유전공학으로 인간들의 생식과 교육을 통제하는 그러한 세계인 것이다. 유전적으로 우월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들을 구별하여 생식, 교육, 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놀랄만한 세계가 지난 몇 십년 간 유전공학의 혁명적 발전으로 인해 이제는 사실상 현실화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다른 분야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정보과학 분야이다. 개인 컴퓨터의 세계적인 보급과 인터넷의 확산은 세계를 급속도로 네크워크화하고 있다. 이제 세계 어느 곳의 정보를 집에서 편안히 그것도 즉시 얻을 수 있다. 정보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이 일어났고 이제 세계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주도하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 한국 사회는 인터넷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지난 10여년간 우리의 사회는 급속히 변화를 겪어 왔다.
어떤 학자는 이러한 생명공학과 정보과학의 혁명적 발전을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사용하기 시작한 것과 버금갈 정도로 획기적인 전환이라고 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제 많은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의 혁명적 전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서구에서 17세기 계몽주의의 시작이 18세기의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면서 겪었던 사회전반에 걸친 전환을 능가하는 그러한 혁명적 전환을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가 지금 체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세계로의 전환은 우리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우리의 생존자체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무한한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기독교는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오늘 강의의 중심주제이다. 이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순서로 강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기독교의 다양한 대응들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살펴본다. 다음, 과학기술사회의 정의구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의 정의구현을 위한 기독교의 역할은 무언인지 생각해 본다.
2. 과학기술과 기독교의 역사적 관계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기술의 중요한 발전은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고 그와 따른 다양한 기독교적 대응들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과학기술적 성과들 중 몇 가지만 선별해 그에 따른 사회문화적 파장과 기독교적 대응들을 살펴보자.
먼저 16세기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에 의한 지동설은 근대천문학의 문을 열었는데, 이는 지구중심적 사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카톨릭교리가 지배하던 중세시대를 그 뿌리부터 흔든 대사건이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새로운 학설은 지구를 한낱 혹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며 따라서 이 혹성에 사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존엄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또 성서에서는 태양이 뜨고 진다는 말은 있어도 지구가 돈다는 말은 없으므로 성서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과학적인 관측에 기초를 둔 갈릴레오의 지동설은 성서의 권위와 교회의 권위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해석이 되었고, 그 유명한 종교재판으로 과학자 갈릴레오를 억지로 침묵시키는 것으로 결말을 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지만, 성서의 올바른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주고 있으며 또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가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를 교훈해 주는 역사적 대 사건이었다. 하나님이 창조한 질서를 알려고 하는 과학적 노력이 성서에 대한 문자적 해석으로 말미암아 무참하게 묵살되어진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교회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올바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또 겸허히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성서의 해석은 매우 조심스러운 작업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일방적인 문자적 해석이 가져오는 교회와 신학의 경직화가 어처구니없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갈릴레오의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이단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과학에 대한 무지와 성서에 대한 좁은 이해가 과학과 신학을 정면대결로 치닫게 하는 우를 범한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저명한 과학사가인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는 <근대과학의 기원들Origins of Modern Science>이란 명저에서 16세기와 17세기의 근대과학의 태동, 발전이야말로 기독교가 시작된 사건 다음으로 서구문명사회에서 가장 획기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로 이어지는 근대천문학의 태동은 서서히 중세사상의 와해를 가져왔고 17세기 데카르트를 거쳐 뉴턴에 의한 근대물리학의 정립과 함께 확실하게 근대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까지 서구사회를 주도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유기적 세계관이 결정적으로 무너지게 되고 이를 대신해 기계적 세계관이 과학의 영역을 넘어 문화, 사회 전 영역에 파급되어 주도하게 되었다. 또한 뉴턴의 물리학적 방법론이 과학의 영역을 넘어 모든 학제들을 주도하는 방법적 패러다임이 되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 물리학적 패러다임으로 사회 문화 전반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계몽주의 시대는 근대 과학의 발전이 사회문화 전 영역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온 가장 극명한 사례일 것이다.
데카르트부터 시작된 계몽주의 사상은 전통과 교회의 권위로부터 이성의 완전한 해방을 선언함에 따라 이성의 권위아래 계시의 권위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데카르트와 뉴턴에 의한 기계적 세계관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붕괴시키자, 많은 사람들에게 신학이 중대한 위기를 맞이한 것처럼 비추어졌다. 특히 뉴턴이 발견한 자연 법칙이 모든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인식되자 하나님의 자연에서의 섭리와 역할에 대한 이해가 어렵게 느껴졌다. 자연법칙에 따라 모든 것이 움직인다면 자연세계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어떻게 미친단 말인가? 즉 자연법칙과 하나님의 섭리의 관계가 무엇인가? 이와 같은 중요한 신학적 문제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때 이에 대한 응답으로 계시에 기초한 종교가 아니라 이성과 과학에만 기초한 종교를 꿈꾸는 자연종교가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와 과학의 법칙을 조화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태초 창조의 사건으로만 국한시키거나, 하나님의 섭리를 자연법칙의 오류를 교정하는 역할로 국한시키는 등 극단적인 신학적 운동이 태동되었다. 이러한 신학적 운동은 중세와는 정반대로 과학 혹은 이성이 신학을 지배할 때 기독교와 신학이 얼마나 황폐하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역사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즉 중세와 같은 극단적 신앙주의는 과학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고 계몽주의와 같은 극단적 이성주의는 신학의 황폐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즉 극단적 신앙주의나 이성주의는 종교와 과학을 건전하게 조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극단적인 역사적 사례들에서 분명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은 이러한 과학적 사고방식이 획기적 기술의 발전과 대중화로 이어지고, 구체적으로 경제구조와 사회구조의 혁명적 변화로 나타나게 되었고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의 말을 빌자면 사회의 합리화rationalization of society 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즉 산업혁명은 사회구조의 근대화를 가져왔고 이러한 근대화는 곧 구조의 합리화 혹은 과학화를 의미했다. 즉 과학의 정신이 사회의 구조화로 구체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의 과학화인 것이며 과학기술사회 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와 함께 시작된 서구의 팽창정책과 식민지정책은 축적된 근대과학기술 세계화의 발단이 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역사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정립된 다윈의 진화론은 또 한번 사회 문화적인 혁명을 초래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진화론적 패러다임의 밑거름이 되었고 이에 따라 사회의 진화, 지식의 진화, 종교의 진화 등의 이론이 형성되었다. 이 다윈의 진화론은 또 다른 차원에서 과학과 기독교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하자, 프린스턴 신학교의 찰스 호지Charles Hodge와 같은 소수의 저명한 신학자들은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도태이론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해석을 하면서 진화론을 무신론적 사상이라고 보고 강력히 반박했다. 하지만 한편 대다수의 신학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을 창조론과 대립되지 않는다고 보고, 창조론을 진화론과 자연스럽게 조화시켜 진화론적 창조론 혹은 창조론적 진화론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즉 진화론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진화론을 무조건 무신론적이라고 보았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고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창세기의 창조이야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근본주의 운동fundamentalism이 크게 일어났고, 이들은 진화론을 창조론과 극단적으로 대립시키고 유명한 법정투쟁까지 가면서 이러한 대립구도를 고착, 대중화시켰다. 이러한 사례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가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즉 창세기의 창조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문제에 이 논쟁의 초점이 있는 것이다.
또한 19세기 후반, 물리학 영역에서 열역학의 법칙, 전자기장의 법칙 등이 발견, 정립되어, 20세기 사회 문화 전 영역에 또 다시 폭발적인 영향을 미칠 새로운 차원의 과학기술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게 되었다. 즉 열역학의 법칙과 자기장의 법칙은 20세기 초 현대물리학의 두 기둥인 양자역학과 상대성 원리의 정립을 위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게 되었다. 현대물리학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계몽주의와 함께 시작되어 오랫동안 군림하던 뉴턴의 근대물리학의 패러다임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물리학의 정립은 과학 전 영역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또 한번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혁명을 가져오게 되었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원리는 전대미문의 폭발력을 지닌 대량학살을 위한 핵무기 개발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게 되었고,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서 그 가공할 위력을 직접 보여주었다. 또한 핵 에너지원의 개발로 말미암아 수력, 화력발전소에 대한 대안으로 핵발전소가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현대물리학의 이 두 기둥은 천체물리학 발전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게 되었고 결국 빅뱅이론 등으로 대변되는 현대우주론의 정립을 가져왔다. 이뿐 아니라 현대물리학은 물질의 궁극적 구조를 밝히려는 시도를 하는 입자물리학의 발전을 가져왔고 이러한 물질 구조에 대한 양자역학적 이해는 반도체 개발의 기초를 제공하게 되었다. 반도체의 개발은 사회 문화적 혁명을 가져왔는데, 이는 바로 이 반도체야말로 라디오, TV 등 주요 매스미디어 매체들뿐 아니라, 20세기 후반 정보화 사회를 주도하게 된 컴퓨터의 핵심부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의 보급은 세계를 네트워크화하고 따라서 세계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20세기 초반 현대물리학의 태동은 20세기 후반 문화, 사회, 경제 구조 전 영역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초를 제공하게 되었다.
또한 유전자의 발견과 20세기 중반 왓슨과 크릭에 의한 DNA 구조발견은 생물학분야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바로 이러한 유전자의 발견과 DNA 구조 발견은 현재 생명복제와 지놈프로젝트로 이어지면서 혁명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생명공학의 기초를 제공하게 되었고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상상하기 힘든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또한 유전자의 발견과 DNA 구조 발견은 인간이해에 있어서도 새로운 전환을 가져왔다. 바로 DNA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므로 이 DNA에 대한 이해야말로 인간이해의 핵심적 열쇠라는 시각이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E.O. Wilson이 제창한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은 이렇게 인간이해에 있어서 지나칠 정도로 유전인자의 결정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자연주의적 인간이해는 물질주의, 과학주의와 함께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사고방식과 철학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한편으론 인류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혜택을 가져왔으며 우리 삶의 질을 눈부시게 향상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태계파괴, 환경파괴, 핵무기와 생화학무기의 등장이라는 인류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들을 파생시켰다. 또한 가상공간, 세계화, 유전자 조작, 생명 복제 등의 많은 심각한 사회윤리적 문제들을 파생시키고 있다. 나아가서 과학기술의 이데올로기화로 인한 물질주의, 과학주의, 기술지상주의 등의 팽배는 비인간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한 빈부의 격차, 의미의 상실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을 파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대두는 과학기술은 가치 중립적이라는 오래된 생각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게 되고, 과학기술이 더 이상 사회적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이에 대한 사회 윤리학적 연구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다양한 신학적,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적절하고도 건전한 기독교적 역할에 대한 고찰이 시급하게 되었다.
3. 과학기술사회와 정의구현
이제 우리는 과학기술사회의 정의구현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근대화과정을 통해 등장한 과학기술사회 는 정치, 경제, 교육, 법, 과학, 기술, 종교 등 극도로 분화된 많은 사회 시스템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시스템은 독특한 운영체계, 논리체계, 가치체계를 가진다. 본 주제와 관련되어 특히 중요한 것은 각 사회 시스템은 독특한 가치체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종교는 과학과 그 가치체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간의 가치체계의 차이는 종종 시스템간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고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는 집단이기주의와 같은 현상을 통해 이러한 시스템간의 갈등을 자주 경험한다. 따라서 핵심적인 문제는 이렇게 극도로 분화된 기술사회에서 시스템과 시스템간의 가치판단의 차이를 조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포스트모던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윤리학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현대 기술사회의 심각한 분화를 고려할 때,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회의적이라는 것은 별로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 기술사회의 심각한 분화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스템간 가치판단의 차이에 대한 조정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기술사회가 분화되었다 하더라도, 각 시스템들이 공통의 생활세계, 합리성, 환경, 운명 등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가치판단의 차이를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는 최소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기술사회는 극도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가치 조정의 가능성을 상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노사문제는 회사의 운명은 노사가 공유하고 있으므로 회사가 망하면 다 망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극도로 분화된 기술사회의 정의구현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정의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의라는 개념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며 다면적 개념이다. 우리는 정의의 네 가지 면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과학기술에 관련된 정의로 지식, 이해, 창조성 등과 같은 가치들을 강조한다. 둘째는 창조질서와 관련된 정의로 즉 종, 속, 생태계, 자연 등의 온전성을 강조한다. 셋째는 사회질서와 관련된 정의로 평화, 조화, 사랑, 관계성, 공동체 등의 가치들을 강조한다. 넷째는 인간존재의 의미와 관련된 정의로 의미, 자유, 개별성 등의 가치들을 강조한다. 기술사회의 총체적 정의 구현이란 이러한 네 가지 면의 정의가 잘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룬 최적의 상태를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 창세기 1-2장에 있는 창조이야기에는 이러한 정의의 네 가지 면에 상응하는 심오한 이미지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첫 이미지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하신 땅을 정복하라 (창 1:28)는 말씀에 있다. 이 정복 이라는 이미지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이해, 관리, 조작을 의미하며 이는 곧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의 와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미지는 선악과 (창 2:17)인데 이는 곧 창조질서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 한계를 나타내므로 곧 창조질서와 관련된 정의 와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이미지는 첫 남녀의 결합으로 이는 곧 사회질서와 관련된 정의 와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이미지는 생명나무 로 이는 인간존재의 의미와 관련된 정의 와 상응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인간존재의 의미는 영생과의 관련을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모든 이미지들의 총체적 집합인 에덴동산 은 이러한 정의의 네 가지 면들이 온전하게 균형을 이룬 최적의 상태를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대 기술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한다는 것은 바로 정의의 다면성이 온전하게 균형을 이룬 최적의 상태를 찾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현대 기술사회는 총체적 정의를 극대화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반면 합리적인 기술사회는 그 존재를 위협하는 총체적 위험성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환경파괴, 원자폭탄, 생화학무기 등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파생하는 총체적인 위험성인 것이다. 또 이제 우리는 유전공학의 혁명적 발전으로 인해 생명체의 유전인자조작과 복제의 능력까지도 갖게 되었다. 이는 자칫 창조질서를 와해시키는 돌이킬 수 없는 총체적인 위험성까지도 내포할 수 있다. 합리적 기술사회는 이러한 총체적 위험성을 최소화해야 하며 반면 총체적 정의를 극대화하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총체적 정의의 극대화 과정은 분화된 사회 시스템들간의 긴밀한 교류와 네트워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생각은 합리적 기술사회는 20세기 최고의 과학사상가 중 하나인 칼 포퍼Karl Popper가 제안한 열린사회open society 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 시스템들간의 끊임없는 비판을 촉진하는 사회를 열린사회 라고 제안하고,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등의 사회이론을 닫힌사회closed society 를 조장하는 것으로 보고 맹렬히 비판했다. 이렇게 포퍼가 제시한 것과 같이, 기술사회는 정의의 다면적 요소들이 공론화되어 대화, 토론, 협상 등을 통해 총체적 정의가 극대화 될 수 있는 열린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열린사회는 시스템사이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열린 자세와 배우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사회의 총체적 정의 구현을 위해서는 새로운 과학기술 지식의 교육과 대중화가 매우 중요한데, 이는 기술사회가 총체적 가치판단을 올바로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과학기술에 어떠한 혜택과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는지를 제대로 알고 조심스레 저울질하는 것을 통해서만, 사회가 전체적으로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가치판단이 어떤 일정 시스템의 몫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몫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과 교회 역시 이러한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노력에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4. 과학기술사회 정의구현을 위한 기독교의 역할
그러면 이제 기독교는 이러한 사회의 총체적 정의 구현을 위해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기독교는 성경 등 여러 기독교적 자원들을 통해 정의의 총체적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기술사회의 공적 가치판단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성경의 창조이야기에 나타난 정의에 대한 풍부한 뉘앙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창세기는 정의의 다면성을 온전하고 조화롭게 드러내고 있다. 20세기 초 위대한 기독교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고전적 명저 <인간의 본성과 숙명The Nature and Destiny of Man>에서 기독교적 이미지들의 공적 역할을 사회윤리영역에 직접 적용했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 나라 와 같은 기독교적 개념들은 사회를 위한 이상향을 드러내고, 반면 죄 와 같은 개념은 현실상의 근본적 원인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니버의 견해에 의하면 기독교 사회윤리는 바로 이러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관계를 이해하고 현실을 이상에 어느 정도 근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창세기의 기독교적 이미지들이 정의의 총체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니버가 말하는 일종의 이상향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정의의 총체적 비전은 기술사회에서 간과되고 있는 정의의 차원들을 드러낸다. 많은 사상가들이 기술사회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부정적 모습을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기술사회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베버는 인간의 자유와 의미를 잃어버린 쇠우리iron cage 로, 하버마스는 대화적 이성이 마비되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로, 마르크스는 경제적 이득의 불공정한 배분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으로, 하이데거는 실존적 의미의 상실로, 니체는 생명력의 상실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기술사회의 부정적 모습은 간과된 정의의 차원들을 나타내고 있는데, 정의의 총체적 비전은 이러한 간과된 차원들을 드러낼 뿐 아니라, 총체적 정의구현의 올바른 방향을 안내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인 것이다.
둘째, 기독교는 공적 영역에서 다른 사회 시스템들(즉 과학, 기술, 정치, 경제 등)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교류에의 참여를 통해, 총체적 정의구현의 극대화에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말한 것처럼, 기술사회는 모든 사회 시스템들간의 긴밀한 교류와 네트워크가 가능한 열린사회여야 하며 그래야만 총체적 정의 구현이 극대화될 수 있다. 이러한 교류와 네트워크가 없이는 어떤 시스템도 고유 시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고 따라서 그 시각의 맹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혁명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모든 사회 시스템들과 기독교에게 올바른 가치판단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즉 과학지식의 대중화와 교육이 건전한 과학기술에 대한 가치판단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은 기독교 시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기독교적 정의에 대한 구체적 이해와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기독교는 정의의 총체적 의미를 적절하게 이해하고 재해석하여 공적 대화에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적 작업은 독일의 저명한 사상가인 가다머Gadamer가 말하는 지평의 융합Horizontverschmelzung 인 것이다. 그는 지평 을 특별한 관점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시각의 범위라고 정의하고, 이해를 전통의 지평과 해석자가 처한 새로운 지평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사건이라고 보았다. 즉 이해는 지속적 사건이며, 한 시스템은 다른 시스템의 지평을 통해 자신의 시스템을 재해석할 수 있고, 또 한편 다른 시스템에게 자신의 고유한 시각을 제시하여 그 시스템의 재해석을 도와줄 수 있다. 즉 이러한 끊임없는 교류 혹은 상호피드백을 통해서만 기술사회의 총체적 가치판단의 극대화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독교는 정의에 대한 통전적 이해를 통해 과학기술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등 다양한 종류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이데올로기 비판정신은 히브리 선지자들과 예수그리스도로 대변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예언적 전통은 하나님의 형상, 에덴동산, 언약, 하나님 나라, 새창조 등의 강력한 상징적 개념들을 통해 정의의 절대적 기준과 통전적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통전적 정의구현을 가로막는 이데올로기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히브리 선지자들은 모세의 언약이라는 절대적 기준을 통해 당대의 이데올로기(우상숭배 등)를 강력히 비판할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상수훈에서 아름답게 묘사된 하나님 나라 라는 개념을 통해 정의에 대한 절대적이고 총체적 비전을 제시하며, 당시의 이데올로기(경직화된 유대교)를 강력히 비판했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사상가 하버마스(Habermas)는 이데올로기를 병리적 커뮤니케이션 혹은 거짓된 합의로 이끄는 체계적으로 왜곡된 커뮤니케이션 으로 보았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닫힌사회 의 특징이며, 시스템간의 끊임없는 비판과 교류를 촉진하는 열린사회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정의의 총체적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기독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미혹을 폭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 기독교 역시 타 사회 시스템들의 비판에 겸손히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중세와 같이 기독교 정신이 경직화되고 이데올로기화 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5. 결론
이제 이 강의의 내용을 정리해 보기로 하자. 첫째, 우리가 얼마나 과학기술문화에 깊이 젖어 있으며 정보과학과 생명공학의 혁명을 통해 신세계로 진입하는 역사적 전환기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이러한 신세계는 새로운 엄청난 가능성과 위험성을 함께 내포하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에 대한 다양한 기독교적 반응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로 이해와 적절한 비판을 가할 수 있는 균형있는 시각을 가진 기독교적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셋째, 정의의 다면성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비전이 현대 기술사회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사회의 총체적 정의구현은 모든 구성 사회 시스템들의 긴밀한 교류와 네트워크가 가능한 열린사회 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는 다양한 기독교적 자원들을 통해서 다면적 정의가 조화를 이룬 총체적 비전을 제시하고, 다른 사회 시스템들과의 긴밀한 교류와 상호피드백을 통해 총체적 정의구현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과학기술지상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