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27장 30 ~ 31/ 십일조의 원리와 축복
오늘은 특별히 십일조 헌금에 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삶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헌금으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헌금 가운데 특히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레27:30).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10분의 1은 10전체를 대표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드리게 하신 목적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게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감사하며 살도록 하시는 데 있습니다.
1. 구약성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 생활이 어떻습니까?
민 18:23-24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1) 각 가정에서 십일조 생활을 했습니다.
십일조는 고대 세계에 있어서 보편적인 관습이었습니다. 애굽, 바벨론, 앗수르 가나안에서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고대 세계의 십일조는 대개 일종의 세금으로 드려졌습니다. 이에 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드리는 물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소산의 처음 것, 첫 열매, 초태생과 함께 모든 소산의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드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레27:30). 이 십일조는 각 가정을 단위로 하나님께 드려졌고, 하나님은 이 십일조를 받아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아 섬기는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민18:20). 그들은 땅에서의 기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민18:24).
2) 레위 지파의 십일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은 레위 지파는 그 십일조에서 십일조를 떼어 제사장에게 바쳤습니다(민18:25-29). 즉 백성들의 십일조는 레위 지파에게, 레위 지파의 십일조는 제사장에게 바치게 한 것입니다. 레위인들은 백성들을 위하여 성막에서 봉사했고,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민18:6). 그들이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헌신 원리가 적용되고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3) 십일조 헌금의 원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헌금하는 생활에는 몇 가지의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십일조는 아래에서 위로 상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장자였고(출4:22).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 했으며(민 3:11-13). 아론 자손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제사장 자손으로 선택되었습니다(출28:1). 장자(첫 새끼, 첫 열매)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십일조의 헌금 원리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둘째, 십일조는 성소에 갖다 바쳤습니다. 매년 3대 절기인 초실절, 맥추절, 수장절에 성소에 가서 드려야 했습니다(신 14:23-26; 신16:16,17).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경배와 순종, 그리고 종속의 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매 3년째의 십일조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성읍에 비축했습니다.(신 14:23-26, 신 16:16-17). 이것은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십일조가 구제의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넷째, 십일조는 제사장에게 갖다 바쳤고, 제사장은 이를 하나님께 거제로(하나님께 드렸다가 제사장의 소유가 됨) 드렸습니다(민18:24). 이것은 십일조가 하나님께 바쳐진 다음에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받는다는 뜻을 상징한 것으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지만, 동시에 제사장과 레위인의 기업인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서 십일조의 사용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십일조 헌금에 있어서의 이러한 원리들은 오늘날 교회의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리라 하겠습니다.
2. 신약에서의 십일조생활입니다.
눅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 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1) 십일조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1:42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에 정해 놓지 않고
품목까지 세밀하게 십일조를 드리고 있는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책망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가 율법적 규례이므로 신약 교회에서는 이것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키도록 교훈하신 것은 지켜야 마땅한 것이고, 또 구약에서의 십일조의 원리는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십일조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 헌금에 있어서 어떤 식이나 계산보다도 십일조를 헌금하게 하신 하나님의 율법 속에 제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정신에 충성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것 없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외식에 불과한 것입니다(마23:23).
3. 신자와 십일조 헌금의 원리입니다.
레 27:30-31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사람이 그 십분 일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오 분 일을 더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의 것으로서의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소산의 10분의 1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레27:30).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살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 제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2) 전부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해서 10분의 9는 사람의 것이라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전체를 다 원하신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십일조만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부를 다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바치라고 하신 것이고, 사도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의 인생 전부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생명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므로 삶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롬12:1, 고전 6:19-20). 십일조는 이러한 삶을 유지시키고 촉진시키는 하나의 지렛대입니다.
4, 십일조 드리는 신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말 3:10-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했습니다.
1) 하늘의 문이 열려 복이 차고 넘치게 됩니다.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믿음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신자는 주일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삽니다. 그리고 물질을 드리는 기준이 십일조이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하늘이 열리는 축복이 임합니다. 하늘이 열리면 복을 받습니다.
2) 황충이 없어지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황충이란 메뚜기과의 곤충으로 보통 “누리”로 말해지고, 풀무치와 비슷한데, 몸길이가 5cm가 됩니다. 황충은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그 떼가 앉은 곳에 순식간에 땅 위의 풀 하나도 남아나지 않게 만드는, 농작물의 큰 해충입니다.
아무리 잘된 농사라 해도 황충이 떼가 지나가면 모두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신자의 사업과 직장에 황충을 금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잘됩니다. 사업이 축복을 받습니다. 농사가 잘됩니다. 여러분의 직장이 복을 받습니다.
포도나무 밭에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열매를 거두기전에 열매가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 농사는 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기한 전에 포도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즉 사업을 하고 농사를 짓고 직장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고 창대하게 하십니다.
아무리 농사가 잘 되어도 거두기 전에 태풍이 와서 쓸어버리면 열매를 못 거둡니다. 기한 전에 떨어진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데 물건이 잘 팔리기 전에 값이 폭락하거나 잘못된 것이 기한 전에 떨어진 것입니다.
전남 영광군 동성교회에 수박농사를 짓는 집사님이 계시는데 몇 년 전 큰 태풍이 와서 다 익은 수박이 큰 손해를 끼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목사님을 청해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목사님, 태풍 때문에 우리 수박농사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수박밭에 오셔서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요청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집사님의 부탁인지라 태풍 속에서도 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수박을 안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수박밭은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수박 잎은 다 날라 가고 큰 수박만 줄기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박을 따서 출하해서 팔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웃집과 같은 교회 신자집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수박은 모두가 이리저리 태풍에 굴려 다녀 깨어져서 수확을 하나도 못했다고 합니다.
태풍 속에서도 수확한 집사님의 가정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기한 전에 열매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거룩한 것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신명기 14:22-23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1/10을 드리는 것입니다. 월급의 1/10, 사업수익의 1/10, 농사의 1/10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사업이 안 되고 직장이 막히고 농사가 안되는 것은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당장은 아깝고 힘들어도 믿음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드리는 십일조를 받으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말라기 3:10-12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축복을 받습니다.
결론
십일조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하나님이 일관되게 요구하시는 예물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 우리들 자신 전부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십일조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일조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 중에 열중에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는 신자가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받습니다. 새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새롭게 됩니다. 예수님이 보혈로 구원을 받은 신자가 이제 나는 내가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몸과 내가 가진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소유 중에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9를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10에 1을 바치고 9를 가지고 사는 신자는 부족할 것 같아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10을 다가지고 사는 사람은 늘 부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믿음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