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영토)국가의 발전과 군현체제의 확대]
전국시대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5세기 말(기원전 403)을 기준으로 한다. 그것은 춘추시대의 대국인 진나라에서 신하인 한, 위, 조 3씨가 반란을 일으켜 진을 멸망시키고 이들 3씨가 각기 한위조 3국을 세우면서 새로운 정치변혁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춘추시대에는 아직 존왕양이의 대의명분이 사회를 지배했으며 이에 따라 주대의 정치질서인 예가 존중되었다. 하지만 진의 멸망을 계기로 시작되는 전국시대는 신하가 주군을 멸하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공벌하는 약육강식의 경쟁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리하여 종래의 읍제[도시]국가 형태는 더이상 존립할 수 없게 되면서 영역[영토]국가로 변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춘추시대 170여국은 전국 초기 20여개 국만 남게 되었으며, 국가의 발전에 따라 제후의 지배권이 확대되면서 국가간의 전토와 인민을 쟁취하기 위한 끊임없는 멸국병국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이른바 전국7웅[진, 초, 연, 제, 한, 위, 조]의 등장이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전국시대의 정치, 사회적 변혁은 춘추 중기 이후 출현한 군현제적 전제지배체제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먼저 국의 성격에서 정치질서의 변화형태를 엿볼 수 있다. 즉 서주와 춘추 초기의 국의 제후가 씨족공동체의 장으로서의 성격이라면 전국시대의 국은 이러한 씨족공동체를 탈피, 영토[영역]국가로 변모하여 갔다. 더불어 전제군주의 출현과 다수의 현을 통치하면서 군현제적 전제지배체제가 전국7웅의 각국에 확대되었다. 현과 군의 출현과정은 여러 유형이 있는데 대국이 소국 병합시에 그 땅에 현을 설치한 경우나 경, 대부의 도읍을 몰수하는 방법, 국내의 소도나 향읍을 현으로 바꾸는 경우 등 여러 방법이 있었다. 이에 대해 군은 주로 변방지역에 설치된 것이고, 군의 면적은 현보다 컸으나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정치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넓은 군을 분할해 현을 설치하게 되고, 행정상으로 군 아래 현을 두게 되었다.
전국시대의 군현제 출현은 동시에 왕[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관료지배체제를 탄생시켰고, 영역국가 내의 토지와 인민을 국왕이 직접지배하게 되어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체제가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춘추시대의 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공[제후]과 경, 대부 사이의 회명과 반맹의 관계가 사라지고 주군과 가신의 주종관계가 새로운 정치질서로 등장하였다. 전국시대의 군신관계는 가부장적 관료체제로 정비되어 신하는 군주의 수족과 같이 활동하게 되면서 중국관료제의 원형으로 정착되었고 신하는 지방의 현에 파견 주군의 명을 대행하는 관료로서 현을 통치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현의 상부기구로 군이 설치되어 그 아래 향을 두게 되었다. 따라서 은, 주, 춘추시대 이래 지방조직의 기본단위이던 읍이 군현체제로 흡수되면서 해체되어갔다. 그리하여 은주시대의 읍제국가체제는 군현체제로 바뀌어 갔고, 씨족제적 봉건체제도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로 변화되는 정치질서의 재편성이 단행되었다. 이후 제후들은 후, 군의 칭호를 버리고 왕호를 사용하였으며 위나라의 혜왕(기원전 345)에 이어 제나라의 위왕이 칭왕을 하였으며,(기원전334)이어 진과 한, 조, 연에서도 왕호를 칭하기 시작하였다. 각 군주의 칭왕은 대체로 중앙집권적 왕권체제가 안정되는 시기에 시작되었고, 각국의 군주들이 부국강병으 ㄹ위한 변법실시시기와 때를 같이하고 있다. 이는 명실상부한 전제군주의 지위와 권위를 과시하고 더 나아가 천하에 군림하기 위한 천하왕의 소망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칭왕제도와 함께 관제의 개편도 단행되어 각국에서 종래의 세습귀족과 새로 개편되는 관지과의 분리를 꾀하고 관직의 세분화를 적극 추진하였다. 특히 행정의 장관인 승상과 군사의 장관인 장군의 직책이 분리되었고, 이들의 통솔하에 중앙과 지방[군, 현]의 관직체계가 정비되어 나갔다.중앙관료기구는 행정수반인 승상[상국 또는 재상]이 있어 백관의 장이 되었다. 승상 아래에는 사관으로서 감찰을 맡은 어사, 토지와 백성을 관장하는 사도, 토목사업을 맡은 사공, 형벌을 관장한 사구(혹은 연위), 수공업을 맡은 공사, 재정업무의 소부 등이 설치되었다. 이로 인해 국가권력의 신장과 왕권의 강화에 따라 군사를 장악하는 장군의 지위가 상승되었으며 특히 전국시대에는 징병제가 실시되었고 각국이 다투어 전쟁을 하게 됨에 따라 문무관직의 분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장군직이 처음 설치된 것은 진(晋)이 멸한 한, 위, 조에서 비롯되었고, 이어 진(秦)에서도 실시하였다. 다만 초에서는 장군이 없고 주국(또는 상주국)을 두었으며, 장군 아래 위 혹은 국위가 있었다. 진이 6국을 통일한 후에 태위가 군사권을 장악한 것은 이와 같은 국위를 계승한 것이다.
지방의 군에는 국방과 행정을 담당하는 군수(또는 태수)가 있고, 그 아래 군사업무를 맡는 위와 감철업무를 맡는 어사를 두었으며, 현에는 현령과 현승이 있고, 현 아래 향과 리를 두었다. 이같은 중앙집권적 행정제도는 그대로 진(秦)에 계승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