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가 많은 교회라고 하여 부임하였으나 전연 순교자가 있는 교회답지를 않게 보였다. 내가 영락교회를 가본적이 있다. 김응락장로님이 교회 건축위원으로 교회를 사변중에 지키시다가 퇴각하는 공비에게 기도중 사살되여서 뜰에 작은 비석에 이름이 세겨진 것을 보고 이런것이라도 이곳에 세워졌으면 흔적이라도 남을텐데...
그래서 행여 문서라도 남았나 조사했으나 다행이도 선임교역자님들이 몇분의 이름만 찾아 남겨 놓았다. 나는 이 명단을 보고 그 기쁨을 형언할 수 없이 기뻤고 소망이 있었다. 부임 첫날밤 우리교인이라 하지만 지금 우리 교인이 아닌 무리들이 교회안에서 열심히 기도하신 모습을 이틀저녁을 꿈으로 보고 더욱 관심을 풀길이 없어 내 기어히 이분들의 이름을 밝혀 놓고 말리라 다짐하였던 것이다. 이젠 우리는 이들의 신앙을 결코 자랑하는 교회로 끝나지는 않겠다.
이제부터 이들의 신앙의 자세와 기풍을 세우는 교회가 되어 선교와 봉사와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리라는 자세로 마음을 다지며 이 연구에 임한 것이다.
연 구 목 적
대한 예수교장로회(통합) 광주노회소속 야월교회는 전남 영광군 염산면 야월리 471-1에 소제한 교회로써 1908년 4월 5일을 기하여 설립된 교회이다.
조선 예수교장로회 사기상에는 영광군 염산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본리인 문영국, 정정옥등이 일진회를 대항하기 위하여 봉산교회를 다니다가 차차 진리를 습득한 후열성으로 전도하여 신도가 증가함에 교회를 설립하고 선교사 배유지 , 도대선, 남대리, 이아각 과 조사 박인원, 이경약, 최홍교, 이규주 등이 차제 시무하니라.
기독교대백과사전에는 이어서 야월리교회의 초기 명칭이 염산리교회였고 현재의 영광군 염산면 봉남리 소재 염산교회는 사실상 1939년 군남면 옥실리 교회로 출발 1947년 봉남리 현 소재지로 옮겨 염산교회로 명칭을 변경하다.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다.
염산면에서는 최초의 교회로 시작하였다. 야월리는 염업이 크게 성한 곳이다. 해방후에 육지와 제방으로 연결된 후 오늘날에는 교통도 편리하게 된 것이다. 사실 순교자가 있는 교회라지만 전연 문서나 어떤 유적이나 흔적을 찾을수 없어서 이분들을 찾아서 잊어버리고 숨겨진 역사를 한국 기독교 역사에 제자리 찾기를 해야겠다는 담임목사로써 의지를 갖게된 것이다.
한국기독교사에 이토록 한 시대의 아픔과 수난을 맞이하여 신앙을 지킬려고 하다가 수없는 인명을 잃었지만 전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이름들을 볼수 없다. 그 이름을 찾아 놓지 않으면 영원히 잊혀질 것이다. 이제 이분들은 마땅히 한국기독교사에 기록되여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더구나 작은 교회였기에 교역자가 없었고 한때 한국전쟁후에 교회당도 불태우고 교인은 한사람도 남지 않고 순교하여 백지화된 교회이기에 역사적인 기록 및 순교자 명단도 찾지 못하였다. 이제 이분들의 이름이라도 가족사항이라도 정확이 찾아 전하여야겠기에 이 연구에 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