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홈     교회안내     예배안내     담임목사목회     신구약66권장절전체설교(가입후열람)     교회학교     전도부     교육부     남전도회     여전도회     청년부     봉사부     선교부     예배자료     신앙자료     생활정보     시,수필,컬럼     기도실     이단자료     운영자자료실     가  

  일반교회시사
  이쁜글.좋은글
  각 기관 부서
  교육자료실
  성경공부 방
  오늘의 Q.T
  은혜의 간증
  절기(추수.맥추)
  여름성경학교
  주일학교설교
  고난(사순절)부활절
  5월가정의 달
  성령 강림절자료
  찬송 및 복음송
  기독교영상플레시
  기독교자료
  기독교동영상
  덕천교회 약도
  시사 예화
  유머 예화
  상식건강자료
  고려수지침강의
  가정상담
  한자 사전
  아름다운이야기
  다양한 이미지
  성경말씀 듣기
  기도는어떻게하나?
  선 교 학
  신간도서기독교
  자주묻는질문 답변
  예화자료
  목회설교돕는 정보
  기도원 소식
  북한 탈북자 등
  명언 격언실
  역사신학실
  실천신학실
  현대신학실
  철학이야기
  히브리 헬라어사전
  비교이단자료
  창조와진화론
  1907년 대부흥사
  강해설교
  컴퓨터 배우기
  평신도신학
  유익한 정보
  특선.다큐멘타리
 



성경공부

생활정보

사전사이트



“부킹하고 삥땅 놓고 그러는 카바레야?”/톰 라이트의 천국관과 지옥관
2011-11-06 15:30:37   read : 5032

“부킹하고 삥땅 놓고 그러는 카바레야?”/톰 라이트의 천국관과 지옥관

“부킹하고 삥땅 놓고 그러는 카바레야?”

 

입력 : 2011년 07월 21일 (목) 18:36:40 / 최종편집 : 2011년 08월 09일 (화) 00:44:03 [조회수 : 886] 진성재jsj-jin@hanmail.net

 

   
▲ 부킷빙땅
   
▲ 부킷빙땅


나는 처음 이곳 말레이시아에 와서 쿠알라룸푸르 시내 중심지역인 부킷빙땅(Bukit Bintang)에서 사역했다. 한국에서 목사님들이 간혹 안부전화를 한다. “진 선교사 사역지가 어디라고 했던가?” “예, 부킷빙땅이라고 시내 중심에 있습니다.” “부킹빙땅”? “부킹하고 뭐 삥땅 놓고 그러는 카바레야?”----하...하...하..

‘언덕위에 별’이란 아름다운 이름의 뜻인 이 지역은 최고급 호텔과 유명한 백화점, 명품상가들이 즐비하고 빌딩숲으로 둘러 싸여 있는 반면에 어둡고 그늘진 곳이다. 골목골목에는 마약자들과 알콜 중독자들, 부랑자들이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마약을 구하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주차를 도와주며 조금씩 돈을 받아 마약을 구하기도 한다. 화려함과 그늘진 곳이 공존 해 있는 곳이다.

처음에 와서 이 지역을 섬기면서 어찌 보면 생각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마음을 열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이들이라 생각되었다. 웬지 측은해 보이기도 하고 아무 희망이 없이 사는 저들을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매 주 두 번씩 사모와 함께 밥을 만들어서 갖다 주었다. 매 주 100인 분 이상의 밥을 만들어 갖다 주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도시 한 복판에서 그래도 나를 알아주고 밥을 기다리는 저들을 생각하면 기쁘고 감사하게 감당할 수 있었다.

사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에게 밥을 날라 준다는 것이 남자인 나도 가까이 가기가 쉽지 않은데, 아내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담대하게 다가갔다.
아내가 나중에 나에게 한 말이지만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 의욕 없이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사람에게 가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고, 눈의 초점도 없이 거의 웃통을 벗어젖힌 채 쳐다보는 사람이 무서웠다고 한다.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공통점이 눈동자의 초점이 없고 낮에는 자고 있는데 길에 누워 서 자는 사람들에게는 깨우기가 무서워서 머리맡에 음식을 그냥 놔주고 온 적도 있었다.

우리가 사역 하는 시간은 오후 다섯 시에 시작해서 밤 아홉시 정도 돼야 끝났다. 뒷 골목에 쓰레기 더미 옆에 냄새는 나고 쪽문이 있었는데 그 안쪽을 지나가다 보면 정말 등골이 오싹할 때도 있었다. 허름한 지하에서 또는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마약에 취해 누워 있는 사람, 다리가 썩어가다 못해 일부 다리를 절단한 사람도 있었고, 노골적으로 밥 보다는 마약살 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혹시 저 사람이 뛰어 나오지는 안을까? 밥을 가지고 가면서도 계속 가야하나! 다시 돌아가야 하나! 무서워서 망설일 때도 있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이 음식이라도 주면 거절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실,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처음에는 두려웠고 그들도 반응이 냉담했지만 차츰 우리를 알아보고 마음을 열고 반갑게 맞아주곤 했다.

   
▲ 교도소(Pudu 감옥)
   
▲ 교도소

국가적으로는 마약을 소지한 사람이나 마약자들을 중형으로 다스리며 부킷빙땅 시내 중심에 있는 교도소(Pudu 감옥)로 보내서 다스리지만 그렇게 한다고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일부 마약자들이 쾌락과 향락을 얻기 위해 하는 자들도 있지만, 살 의욕이 없이 마음이 공허해서 한 번 한 번 대하던 것이 유혹에 빠져 끊지 못하는 사람, 젊은 대학생들이 밤 새워 공부하려다 잠을 쫓으려고 잠 안 오는 약을 대하다가 유혹에 빠진 학생들, 삶이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다 중독된 사람들, 밤에 나이트클럽이나 술집에서 술에 조금씩 타서 먹다가 중독되어 끊지 못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양 팔과 귀 밑에 주사바늘을 꽂다가 약물 효과가 약하면 허벅지에 찔러요.” “허벅지가 가장 짜릿하고 빠르죠!” “여자들은 주사바늘을 숨길 수가 있기 때문에 허벅지에다 바늘을 꽂아요.”

주일 날 아침이면 예배당 입구에 늘 용변을 보고 술과 마약에 쩔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 형제가 너스레를 떨고 있다. 말레이 국립 마약청에서 정식으로 보고하기를 마약자 중에 상당수 무슬림인 말레이계가 있다고 보고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고 일 년에 한 차례 한 달 씩 금식기도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신앙에 기쁨과 만족이 없다. 형식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영혼은 회칠한 무덤이요, 생명력과 평화가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변화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마약자들이 변화 되서 새 사람 되는 것이 많이 보았다. 바로 성령님께서 만져 주시면 된다. 주님이 한 영혼 한 영혼 안아주시고 치유해 주시면 이들이 변화된다. 말씀으로 치유 받고 기도로 고침 받을 때 그들이 변화되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때 마약에 빠져 소망이 없이 살아가던 형제들이 하나님 말씀으로 치유 받아 새 사람이 되고 그가 신학공부를 하고 지금은 마약자들 위해서 사역하고 있는 형제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2절)

   
   
▲ 마약치료 센터
   
▲ 여성 재활원 선교 사진
   


나는 부킷빙땅 시내 중심에 50년이 된 현지교회 ‘KLBC’(Kuala Lumpur Baptist Church)에서 ‘임마누엘’ 한인교회를 개척했다. 파송교회 담임목사님과 장로님 그리고 주위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축하 해 주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 창립일이 바로 2001년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사건’의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지난 10년 동안 지금까지도 이민목회를 하면서 받은 크고 작은 상처와 아픔이 많았고 흘린 눈물도 적잖았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국에서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는 할머니 권사님들과 온 교우들이 있어서 나는 든든하다. 선교사들은 파송받기 전에 선교사 인준을 받고 1년 간 파송교회에서 봉사를 해야 한다. 1년간 봉사하며 선교사 준비도 하고 파송교회와 긴밀한 관계도 유지하기 위해서 인 것 같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참 독특했던 것이 파송교회에 출석한지가 고작 3주 밖에 안 되었는데 하루는 기획위원회를 열어서 회의를 하는데 “내년 4월이면 창립 30주년이 되는데 30주년 기념 책을 발간했으면 하는데 그 일에 적당한 사람이 진전도사가 적당하다”며 나를 책임자로 세워 준 것이다. “와! 새로 교회 간지 3주 밖에 안 된 사람에게 30주년사 책을 쓰라고” 하시니 그렇다고 새파란 전도사가 기획위원 앞에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예! 하고 순종은 했지만 정말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덕분에? 1년간 교회 갖다가 집에 오면 보따리 싸서 도서관에서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래도 그 때는 신혼이었는데!!!

그런데 더 특이한 것은 선교사로 파송을 받는 조건이 ‘파송 받고 나서 3개월 내에 이민교회를 개척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아마! 지금까지 선교사 파송 이래 나 같은 경우가 있을까?’ 목회하기 싫어서 선교사로 왔건만!....

두 말 없이 ‘예’하고 순종했지만 때로는 원망도 들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나고, 그냥 선교만 하는 주위 선교사들이 부럽기도 하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주일 날 아침에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기 전 현지교회 봉고차를 빌려서 멀리서 공부하고 있는 한 명의 형제를 데리러 갔다가 그 마저도 못 일어나서 허탕치고 돌아올 때면 왜 그리 잔디밭에서 축구하고 있는 말레이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고 부러워 보였는지 모른다. “저들은 기쁨 충만히 공차기 하고 노는데 나는 왜 이리 처량한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때는 행복한 고민이었다. 지난 이민 목회 1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다시 파송하는 사명으로 보냈다. 그 간 정들었던 교인들이 처음에는 새 신자로 와서 봉사할 수 있도록 잘 양육했더니 한국으로 들어가고 다른 나라로 떠나 갈 때는 서운함도 있었지만 보람도 느낀다. 그러나 성도들 끼리 해외에 살면서 처음에는 서로 의지하고 없으면 못사는 그런 좋은 관계가 작은 이해관계로 깨져서 원수가 되고, 교회를 욕하고 목회자를 험담하며 떠나갈 때, 또는 사랑을 베풀고 처음 공항에 도착해서 데려오는 것부터 집 구해주고, 아이들 학교까지 다 넣어주고 수발을 들어서 간신히 성도로 만들었는데 배신하고 더욱이 험담하고 떠날 때 그 아픔과 밤잠을 못자고 힘들어 하며 몸부림칠 때도 많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고민하고 또 엎드려 기도할 때 마다 내 자신의 영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나모 모르게 내가 성장했음을 느낀다. 문제를 끌어안고 새벽마다 주님께 엎드려 기도할 때, “주님!”하고 부르짖을 때마다 주님은 나를 만나 주셨고 치유해 주셨다.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나에게 응답을 안 해 주신 것이 없다. 내가 혼자 인 것 같아 힘들어 할 때도 분명히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셨고, 그동안 가까이에서 나에게 많은 음성도 들려주시고 내 길을 인도 하고 계셨다. 때로는 쓰러질 때도 있었지만 완전히 쓰러지지 않도록 일으켜 세워 주셨고 오히려 깊은 골짜기에서 샤론의 백합화 되시는 예수님을 더 가까이서 만나게 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 37)

   
▲ 임마누엘교회 창립 예배 사진
   
▲ 임마누엘 초기 멤버
   
▲ 부킷빙땅 먹자골목
   
▲ 부킷빙땅 먹자골목


처음에 우리가 예배드리던 예배당은 부킷빙땅 시내 중심 먹자골목에 있는 허름한 2층 상가에 위치해 있었다. 예배드리러 가려면 먹자골목 한 가운데를 지나서 상가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언젠가 주일날 아침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그 날 따라 시청에서 하수구 정화작업을 하러 나온 것이다. 하수구 속으로 호수를 집어넣고 약을 뿌리기 시작하니까 수 년 동안 음식찌꺼기를 먹고 자란 쥐와 바퀴벌레들이 밖으로 나오는데 우리가 발 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길 위로 올라와 죽어 자빠졌다. 발라당 누워서 사지를 떨며 죽어가고 있는 것, 정신이 혼미해져서 슬금슬금 기어가는 것, 그 나마 산 것들은 걸을 때마다 신발 밑에서 밟혀 죽어갔다.

문제는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된 새 신자 가족을 데리고 가는 날이었다. 그것도 강남에서 온 새 가정이었는데!....., 왜 하필 그 날 작업을 하는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내 평생 그 날 만큼 예배드리러 가는 길이 험난하고 멀게 느껴진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날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기도를 해도 말씀을 전해도 내 발에 밟혀 죽어간 바퀴벌레 생각을 지울 수 가 없었다.

한 가정 전도하기 쉽지 않은데 환경 탓 하고 ‘이런 교회 다시는 못 오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날 이후 3년 동안 그 가정이 이곳 말레이시아에 사는 동안 엄마와 딸과 아들 세 식구가 한 번도 예배에 빠진 적이 없다. 교회는 처음 나온 가정이었는데 큰 딸은 반주자로 봉사하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학업을 계속하고 있고, 엄마와 아들은 한국에 들어가서는 아빠를 전도해서 세례 받게 하고 본인은 집사가 되어서 소망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있다.

한 때 갑상선 암이 걸렸지만 믿음으로 잘 극복하고 이제 건강을 회복하고 얼마 전에는 전화로 “목사님 신학을 공부할 까 봐요”하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 교회에 예배 드리러 온 그 날 애타게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부족한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귀한 열매를 맺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 로얏 플라자 성탄찬양
   
▲ 로얏 플라자 성탄찬양


부킷빙땅 이곳에는 크고 유명한 백화점들이 많이 있다. 특히 매 년 성탄주간에는 이곳에 유명한 '로얏 플라자(Royat Plaza)' 입구에서 성탄송과 찬양을 드린다. 각 요일마다 월요일에는 현지 중국계 교인들이 영어로, 화요일에는 필리핀 근로자 성도들이 따갈로어로, 수요일에는 우리 교우들이 한국말로, 목요일에는 미얀마난민들과 근로자들이 끄친어로, 금요일에는 말레이 교우들이 중국어로 찬양을 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부킷빙땅 시내 중심에서 그것도 이슬람 땅 한 가운데서 온 교우가 함께 각 나라말로 또는 한국말로 캐롤과 성탄찬양을 하며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큰 백화점 앞에서 마음껏 큰 소리로 찬양하며 주님의 오심을 축하한다는 그 자체로 신나는 일이다. 무심코 지나가던 외국인과 현지인들이 심지어 무슬림들도 관심을 갖고 박수해주며, 따라 부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뜻 깊은 시간을 갖곤 했다. 하얀 눈은 내리지 않는 비록 무더운 한여름 밤이지만, 어린아이들과 온 교우가 긴장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큰 소리로 찬양할 때의 그 기쁨과 감격, 외국인 근로자들과 난민들이 고국을 떠나서 이국 땅에서 겪은 그 동안의 서러움과 고생은 이미 찬양하고 있는 저들의 입술과 마음속에는 ‘Hot Christmas’가 아닌 ‘White Christmas’다.




독자 한마디
9Ew6WWa0
Bobbie tpa8bnb7ru@gmail.com

의견쓰기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한마디


이전으로
일반교회시사
누구도 알려준 적 없는, 하나님을 말하고 천국을 그리다 [2011.11.05 06:44]|일반교회시사
2011 한국 셀교회 개척 컨퍼런스
“부킹하고 삥땅 놓고 그러는 카바레야?”/톰 라이트의 천국관과 지옥관
"도올선생, 기독교의 아웃사이더?"
도가니 배우들에게 수화 가르친 김유미 원장
합동, 목회자 최저생활비 전격 시행
한국교회 본이 되는 교회 30개 명단
미국이 보관 중인 조선시대의 모습
청년들이 교회 떠나는 6가지 이유: “과잉보호가 싫어요”
창세기 대홍수 그랜드 레퀴엠-지층과 화석을 통해 드러나는 엄청난 진실!
개종 이유로 사형선고, 코란에도 위배되는 것”
한반도 평화와 한국교회 갱신 위한 10만 대성회
감동글 끝까지 읽어 보셔요
교회는 목사의 것?
통합측, “구순연 씨, 사이비성 농후” 규정
 | Home | 사이트구조 | 내용검색 | 전체내용보기 | 내용올리기 |
경남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 1431-5 (전화055-883-4843)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