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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도회교육세미나 - 아침성경연구
2005-09-10 17:40:31   read : 3109

 


 여전도회교육세미나 - 아침성경연구
이름 : 교육부    
게시일 : 2005/03/06 (수) PM 03:37:36    

일시: 2005년 3월 6일(수) 오전 7:00- 8:10
본문: 열왕기하 18장
제목: 믿음의 승리
강사: 이동수 목사 (장신대 구약학)

1. 본문의 구조

  1-3절: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대한 성서 기자의 전형적인 서론
  4-8절: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과 믿음과 정치 개혁에 관한 보도
  9-12절: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패망한 기사
  13-16절: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유다의 요새지들을 점령하고 남은 예루살렘을 위협하고 있을 때 히스기야가 산헤립에게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고 조공을 바친 이야기
   17-25절: 앗수르의 랍사게가 히스기야의 신하들을 통해서 히스기야가 믿음을 포기하고 항복하라고 요구함
   26-37절: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랍사게에게 유다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유다 말 대신에 아람 말을 사용하도록 요청했으나 랍사게가 거절하고 히스기야가 항복하라고 계속해서 요구함

2. 본문의 배경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로부터 독립하려는 정치 개혁을 일으켰다(왕하 18:7-8). 주전 701년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반역한 히스기야를 징벌하기 위해서 군사를 이끌고 유다의 요새지들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산헤립 왕은 남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위해서 히스기야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하였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이처럼 히스기야 왕과 유다의 위기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3. 본문의 주제

  우리말 개역성경이 '의지하다, 의뢰하다, 신뢰하다, 바라다, 든든히 믿다, 맡기다' 등으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 <바타흐>( '의지하다')와 그 파생어 <빝타혼>(   )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 중에서 오직 히스기야 왕과 연관해서 쓰였다. 동사 <바타흐>는 열왕기하 18장 5절, 19절-22절, 24절, 30절, 그리고 19장 10절에 나타나며, 그 파생어 <빝타혼>은 18장 19절에 쓰였다. 이 파생어는 구약성경에서 열왕기하 18장 19절과 이 본문과 평행되는 이사야 36장 4절에 '의뢰'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전도서 9장 4절에 '소망'이라는 뜻으로 한 번 더 나타난다. 이 낱말들이 이스라엘 왕 중에서 히스기야에게만 쓰였다는 것은 성서 기자가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한 믿음의 왕이 바로 히스기야였음을 강조하는데 있다. 따라서 열왕기하 18장의 주제를 유다의 우상 숭배의 온상지인 산당을 없애고 여호와를 의지한 히스기야의 믿음으로 여길 수 있다.  

4. 본문의 주제와 관련된 낱말들 해설

  1. 히스기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을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왕하 18:5).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1년에 강대국 앗수르의 사르곤 2세에게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됨으로써 나머지 땅도 앗수르의 세력 안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리하여 북왕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앗수르의 한 지방으로 편입되고, 상류층 사람들은 앗수르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버리고, 이방 족속들의 상류층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왔다(왕하 17:1-6, 24-41). 이런 커다란 비극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다(왕하 17:7-23).
     이처럼 어려움이 많았던 북왕국의 역사와는 달리 남왕국 유다는 내적인 위기를 거의 겪지 않았다. 그렇지만 유다도 앗수르의 위협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다는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지킬 수는 있었지만, 앗수르의 봉신 국가로서 앗수르 대왕을 군주로 모셔야 했다.  
   사마리아가 앗수르 사람들에게 함락될 때 남왕국을 다스리던 사람은 유다에서 가장 훌륭한 임금들 가운데 하나인 히스기야(주전 725-697년)였다. 그는 유다의 예배에서 이방 요소들을 철저히 없애버렸다(왕하 18:1-8). 그렇지만 히스기야도 반 앗수르 동맹에 가담하므로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주전 701년에 유다를 정벌하러 왔다. 산헤립은 유다의 여러 요새를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에워쌌다. 히스기야는 매우 많은 공물을 바치고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왕하 18:13-16).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고 아주 어려운 가운데서도 모범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신뢰한 임금이었다(왕하 18:17-19:37).

  2. 산당(山堂).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18:4전).
    히스기야는 종교 개혁을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산당을 제거하였다. 우리말로 산당으로 옮긴 히브리어 낱말은 <바마>(   )이며 '높은 곳'이란 뜻이다. 산당은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신들을 숭배하던 장소였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 후 산당을 이방 제의와 영적 음행의 장소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스라엘 왕들이 산당을 없애고 예루살렘 성전을 유일한 합법적인 예배 장소로 인정하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산당을 그대로 두느냐가 왕들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왕하 18:22 참조). 이 기준에 따라서 산당을 없앤 히스기야와 요시야(왕하 23:8)는 적극적으로 선한 왕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선한 일을 했으나 산당을 그대로 둔 유다의 여섯 왕들은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들어야만 했다. 여섯 왕들은 다음과 같다. 아사(왕상 15:11-15 중에서 14절); 여호사밧(왕상 22:43); 요아스(왕하 12:2-3 중에서 3절); 아마샤(왕하 14:3-4 중에서 4절); 아사랴/웃시야(왕하 15:3-4 중에서 4절); 요담(왕하 15:34-35 중에서 35절). 유다 왕들 중에서 이 여섯 왕들 이외에 유다 왕들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과 함께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다.

   3. 의지하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왕하 18:5전).
    이 본문에서 '의지하다'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가 <바타흐>(   )이다. 이 낱말은 흔히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지하려는 경우들을 보여 주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은 금은 보화와 재물(렘 48:7; 49:4; 시 49:6; 잠 11:28), 애굽과 앗수르와 같은 강대국(왕하 18:21, 24=사 36:9; 사 36:4), 군대의 용사들과 무기(삿 20:36; 호 10:13; 시 44:6; 사 31:1 등), 바로와 같은 지도자와 신하들(대하 32:10; 시 118:9; 146:3; 사 31:1; 36:4-6, 9; 렘 2:37; 46:25; 겔 29:16 등), 성읍과 성벽(신 28:52; 렘 5:17 등), 사마리아와 벧엘과 같은 도시들(암 6:1; 렘 48:13), 집(욥 8:15; 18:14), 자신의 의(겔 33:13), 힘(사 30:12; 시 62:10[11]; 잠 21:22 등), 마음(잠 28:26)이나 아름다움(겔 16:15)이나 업적(렘 48:7)이나 죄악(사 47:10), 다른 사람들(삿 9:26; 시 118:8; 렘 17:5), 형제(렘 9:4), 친구(시 41:9[10]; 렘 9:3[4]; 미 7:5), 진실하지 못한 자(잠 25:19), 우상(시 115:8; 135:18; 사 42:17; 합 2:18), 허망한 것(사 59:4), 거짓(렘 1:4; 7:8; 13:25; 28:15; 29:31 등), 포학(시 62:10), 들짐승(욥 39:11), 소망(전 9:4; 욥 6:20), 심지어 성전 건물 자체(렘 7:4, 8; 13:25; 28:15; 29:31 등) 등이다. 이런 세상의 것들은 흔히 실패와 상처와 고통과 부끄러움과 파멸을 가져온다.
   따라서 하나님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왕하 18:5, 22; 19:10; 대상 5:20; 시 22:4-5; 37:3, 5; 56:4, 11; 115:9-10; 사 7:9; 30:15 등). 특히 전혀 빛이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여호와를 의지해야 한다(사 50:10). 여호와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찾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는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자비가 풍성한 하나님이시다(시 9:10; 31:6, 14; 56:3, 4, 11; 121 등).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을 받고(렘 17:7), 행복을 누리며(잠 16:20; 시 40:4; 84:12), 평안히 거하게 된다(레 25:18, 19; 시 4:8; 겔 34:25, 27-28).  

  4. 연합하다.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연합하여'(왕하 18:6전)
   이 본문에서 '연합하다'로 옮긴 히브리어 낱말은 <다바크>(   )이다. 이 낱말은 다양한 물체가 서로 함께 단단히 달라붙어 하나가 된 것을 뜻한다. 따라서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연합하여'란 히스기야가 여호와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말 개역 개정판은 욥기 19장 20절에서 이 낱말을 '붙었다'로 옮겼다. 이 낱말이 본문에서처럼 쓰인 경우를 창 2:24; 신 4:4; 10:20; 11:22; 13:4; 30:20; 수 22:5; 23:8; 시 119:31에서 볼 수 있다.
         
5. 메시지

  고대 이스라엘 왕 중에서 다윗 왕 이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적극적인 칭찬을 받았던 두 왕은 종교 개혁을 일으켜서 유다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답게 변화시키려고 했던 히스기야와 요시야왕이었다. 이 시간에는 이 두 왕 중에서 히스기야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 본문의 4-8절은 히스기야 왕이 우상 숭배의 온상이었던 산당을 없애는 등 우상 숭배의 요소들을 제거한 종교 개혁과, 강대국 앗수르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정치 개혁과, 히스기야의 믿음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이다.
  본문의 17-25절에 앞서서 13-16절은 주전 701년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앗수르로부터 벗어나겠다는 히스기야 왕의 반역을 징벌하기 위해서 군사를 이끌고 유다의 여러 요새지들을 함락시킨 후 남아 있는 수도 예루살렘을 위협해 오고 있는 위급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앗수르 군대의 침입은 소위 글자 그대로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다. 그 당시 세계의 초강대국이었던 앗수르 군대는 고대 중동 지역에서 가장 난폭하고 잔인한 군대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다 나라가 앗수르를 대항하는 전쟁은 인간적인 전략과 방법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는 이미 게임이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유다 나라에 닥친 위기는 조선의 선조 임금이 황급히 한양을 버리고 개성으로 평양으로 의주로 계속해서 피난을 떠나야했던 치욕의 임진왜란과 견주어 볼 수 있다.
유다 나라의 이런 엄청난 위기 앞에서 종교 개혁의 왕인 히스기야도 당황한 나머지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자신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라기스로 신하를 보내었다. 라기스는 수도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유다 남부의 중요한 요새지였다. 히스기야는 당면한 위기를 넘겨보기 위해서 산헤립 왕에게 자신의 반역을 사죄하고 산헤립 왕이 요구한대로 은 300 달란트와 금 30 달란트를 바쳤다. 앗수르 역사 문서에는 히스기야가 바친 조공 품목에 대해서 성서 보다 자세히 기록되었다. 조공 품목 가운데는 금 30 달란트와 은 800 달란트 이외에도 온갖 종류의 보석들, 그리고 왕의 딸들과 왕의 첩들과 남녀 악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히스기야 왕은 이처럼 치욕적인 외교적 수단으로 위기를 넘겨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본문의 17절 이하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예루살렘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들도 위급한 상황에서는 히스기야처럼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지하려는 모습들을 흔히 보게 된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은 히스기야처럼 금은 보화와 재물을 의지하려고 한다. 애굽과 앗수르와 같은 강대국과 군대의 용사들과 무기를 의지하고, 바로와 같은 지도자와 신하들을 의지하려고 한다. 성읍과 성벽, 사마리아와 벧엘과 같은 도시들, 자신의 힘이나 마음이나 아름다움이나 업적이나 죄악, 다른 사람, 형제, 친구, 진실하지 못한 자, 우상과 같은 허망한 것, 거짓, 포학, 들짐승, 소망, 심지어 성전 건물 자체 등을 의지하려고 한다. 물론 이런 예들은 성경에서 모두 증거하고 있다. 이런 예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헛된 것들을 의지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들려주고 있다. 히스기야가 자신과 나라의 위기 앞에서 금은 보화에 의지하는 것이 일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이런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은 잠시 잠간으로 그치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의 것들은 흔히 실패와 상처와 고통과 부끄러움과 파멸만 가져올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성경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을 받고(렘 17:7), 행복을 누린다고 하였다(잠 16:20). 특히 전혀 빛이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여호와를 의지해야 한다고 하였다(시 23:4; 사 50:10). 여호와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자비가 풍성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시 31:6, 14; 56:3, 4, 11 등). 따라서 우리가 어떤 형편에 처해 있던지 영원히 의지하고 도움을 구할 분은 시편 121편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다.
  본문 17-25절은 산헤립 왕이 많은 금은 보화로 만족하거나 안심하지 못한 나머지 마침내 남아 있는 예루살렘을 포위해서 공격하고 신하들을 보내어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완전히 항복을 받아 내려고 압박해오고 있는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히스기야 왕과 유다 나라는 그들의 생존이 판가름날 최대의 위기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산헤립 왕의 연대기에는 그 당시 상황을 이처럼 적고 있다. '나는 그(히스기야)를 새 장 안에 있는 새처럼 그의 예루살렘 궁전에 포로로 만들었다. 그의 성문을 빠져나가려는 자들을 방해하기 위해서 그를 흙으로 만든 보루로 둘러쌌다'고 하였다. 히스기야 왕은 이런 나라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우리말 개역성경에 '의지하다, 의뢰하다, 신뢰하다, 바라다, 든든히 믿다, 맡기다' 등으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와 그 파생어가 이스라엘 왕들에 대해서 오직 히스기야 왕과 관련해서 쓰였다. 이 낱말이 오늘 본문의 18장 5절을 위시해서 19절-22절, 24절, 30절, 그리고 19장 10절에 나타난다. 물론 믿음에 대해서 이 낱말 이외에도 여러 모양으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낱말이 이스라엘 왕들 중에서 히스기야 왕에게만 사용되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즉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한 믿음의 왕이 바로 히스기야였다.
   따라서 본문 17-25절에 보시면 산헤립의 명령을 받은 랍사게는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하며 히스기야 왕과 유다 나라를 침몰시키려는 주요한 작전이 바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히스기야의 믿음에 대해서 시험하는데 있음을 보게 된다.
   19절에서 랍사게는 먼저 히스기야가 무엇을 믿고 버티어 보려고 하는지를 물어 본다. 이 질문에는 우리말 '의뢰'라는 낱말을 반복하여서 히스기야의 믿음의 뿌리까지 흔들어 보려고 한다.
   20절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중요한 요소가 작전과 군사력이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이를 무시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라' 등의 빈말과 같은 것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 히스기야 왕이 도대체 누구를 의지하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의 질문이다.
   21절은 애굽을 믿느냐? 바로를 믿느냐? 그러나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고, 바로는 배신할 것이기 때문에 애굽과 바로를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한다.
   22절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느냐? 그러면 예루살렘 제단에서만 예배드리도록 하고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허물어 버린 사람이 바로 히스기야가 아니냐? 라는 질문으로 히스기야의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왕과 백성 사이를 나누어 보려고 한다.
   23절은 앗수르가 히스기야에게 말 이천 필을 주어도 유다 나라에는 기마병이 없어 쓸모 없으니 이처럼 형편없는 유다의 군사력을 도무지 의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24절은 그러면 유다의 연약한 병거와 기마병을 보충하기 위해서 애굽을 의지하려고 하지만 21절에 이미 말한 것처럼 이는 헛된 일이 될 것뿐이라고 말한다.
   25절은 앗수르가 유다를 쳐들어온 것은 오히려 여호와의 말씀을 따른 것이라고 하면서 앗수르의 침략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17-25절에서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애굽과 애굽의 군사력과 유다의 군사력도 의지할 수 없으며,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도 의지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결국 이 말씀은 히스기야는 더 이상 의지할 곳이라고는 없고 항복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므로 왕이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는 여호와를 의지한다는 믿음도 버릴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랍사게는 유다 백성들에게 히스기야 왕이 여호와를 믿으라고 한 말을 믿지 말라고 외치면서(18:30) 계속해서 항복할 것을 요구한다(18:26-37). 19장에는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중보 기도의 요청을 받은 예언자 이사야가 등장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를 믿어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19:1-7). 그러나 앗수르 왕은 히스기야에게 신하들을 보내어 '여호와를 의지하지 말라'(19:10)고 외치면서 끈질기게 히스기야의 믿음을 흔들며 다시 항복할 것을 요구한다. 믿음의 왕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사신들이 가져온 편지를 받아 읽고 성전에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 편지를 펼쳐놓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여호와께 자신과 나라를 구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 드린다(19:14-19). 예언자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해서 '앗수르는 패망하리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을 전한다(19:20-34). 여호와의 응답대로 앗수르의 185,000명의 군대는 여호와의 천사로 말미암아 죽게 되고, 산헤립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돌아간 후 신전에서 자기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19:35-37).
   히스기야가 그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강력한 군대에 맞서서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었던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오직 여호와를 의지한 왕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 때문이었다. 성서 기자는 히스기야의 믿음에 대해서 18장 5절에서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히스기야는 어떻게 이처럼 믿음의 왕이 될 수 있었는가? 본문의 18장 6절에서 히스기야의 세 가지 믿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본문은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고 말씀한다.
  첫째,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연합하여'라는 말씀에서 '연합하다'로 옮긴 히브리어 낱말 우리말 개역개정판의 욥기 19장 20절에서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뿐이로구나'로 번역하여 이 낱말을 '붙었고'라고 옮겼다. 따라서 이 낱말은 다양한 물체들이 서로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함께 단단히 달라붙어 있는 것을 뜻한다. 이 낱말이 성경에서 맨 먼저 창세기 2장 24절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는 말씀에 나온다. 이 말씀에서 결혼이란 남녀의 두 몸이 단순히 성적인 관계로 합쳐서 한 몸을 이룬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아담은 자신의 갈빗대로 만든 여자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고 하였다. 이처럼 결혼은 이전에 서로 남남이었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남편과 아내가 되어서, 피와 살을 나눈 혈연 관계가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것과 같은 관계를 맺고, 한 몸에 뼈와 살이 단단히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완전한 사랑의 일치를 이룬 부부 관계가 된 것을 뜻한다. 따라서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연합했다'는 말씀은 히스기야가 여호와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여호와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뜻한다.
     둘째,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떠나지 아니하고': 이처럼 여호와와 연합하고 온전히 하나가 되어 친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은 여호와를 떠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히스기야 왕 이후 종교 개혁의 왕인 요시야 왕 때 백성들은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대하 34:33).
     셋째, '히스기야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와 연합하고 떠나지 않는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여호와의 계명을 지켰다'고 말씀한다(창 26:5). 요시야 왕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며' 여호와께 순종하고 언약을 세웠을 때 백성들도 모두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였다(왕하 23:3).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는 말씀은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에서도 볼 수 있다. 여호수아는 여호수아 23:6-8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말씀을 '떠나지 말고', 우상 숭배하지 말며,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라'/'연합하라'고 권면하였다.
   히스기야는 종교 개혁 왕, 믿음의 왕이었으나 자신과 나라의 큰 위기 앞에서 여호와 대신에 먼저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물며 믿음이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 앞에 우리 가정에, 교회에, 일터에, 나라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올바르게 판단하고 올바르게 결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특별히 나라의 지도자들은 모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히스기야 왕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여호와를 끝까지 의지하는 믿음으로 최후의 승리를 얻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에게 지교회의 여전도회를 이끌어 가시도록 회장직을 맡겨주셨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했던 히스기야 왕과 같은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를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통해서 지교회의 여전도회와 여전도회 전국 연합회와 우리 교회와 나라 가운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으로 극복하고 승리하는 복을 내려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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