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하이데거에 의한 선험철학적 문제설정의 갱신
1. "지평들"과 그것들의 "시대성"
하이데거의 사고는, 그의 초기의 단계와 후기의 단계간의 모든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선험철학적이었다. 그의 의도는, 그것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의 전체가 계층적 질서를 이루어 개관될 수 있는 그러한 "최고의 존재자"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존재자가 존재자로서 존재하고 인간에게 보여지는(또는 숨겨지는-그리하여 숨겨진 것으로서 아쉬워하고 그리고 찾아질 수 있는-)것을 가능케하는 그러한 조건을 반성하려고 한다.
이때에 하이데거는 전통적인 선험철학과 다음과 같은 확신을 공유하는데, 그 확신은, 사고의 가능성과 이 사고에 나타나는 것(즉 존재하는 것)의 가능성은 이 양자를 서로 매개하는 한 공통된 조건에 근거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선험철학에 대한 그의 비판은 언제나 그가 이 오래된 통찰로부터 끌어낸 결론에 근거해 있다. 만일 매개의 원리가 사고에 대해서나 또한 동시에 이 사고에 마주치는 것(즉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나 다 같이 그 가능근거가 된다면, 그때에는 사고는 먼저 "무세계적인(즉 세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주관"으로서 구성되어지고 "그러고 난뒤에 비로소" 세계와의 관련속에 들어서게 되는 그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고는 언제나 이미 세계 내에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 "세계"란 말은 존재자의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존재자가 마주쳐지게 되는 그러한 "지평"을 의미한다. 무세계적 주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인식의 무관련적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타나는 일체의 것은 언제나 이미 관계들과 지시들의 연관체-이것의 구조는, 그것이 인간을 포괄하고 일체의 주어지는 것과 추구되는 것에 인간의 세계내의 한 기능을 부여한다는 데에서, 나오게 된다-내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가 그 자신이 존재하는 방식에 의하여 언제나 이미 "한 열려진 것"-이것은 결코 어떤 무형상적인 공허가 아니라 일정한 구조와 조직을 가진 지평이다-속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숨어있는 자로서의 존재자를 묻고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을 주어진 것으로서 발견해 낼 수 있고, 또 그것을 유의미한 것으로서 이해할 수가 있다.
하이데거의 이 선험철학적 명제의 역사철학적 의의는, 지평의 구조는 각 시대마다 특수해서, 존재자는 그때그때마다 그러한 지평내부에서, 따라서 각 시대마다 그들의 특수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관찰한 데에 있다. 이리하여 예컨대, 근대적 인간의 지평은, "염려", 즉 그 자신의 존재가능성이 그에게 중요시됨으로써, 그에게는 그 자신의 존재의 가능성이 그의 "관심사"-즉 그것에다가 그가 자신이 행하는 그리고 자신에게 마주치는 일체의 것을 관련시키는 그러한 그의 "관심사"-로 되는 그러한 "염려"에 의하여 구조지워진다. 이러한 지평 내에서는 존재자는 "유용한 도구"로서, 즉 노동의 원료로서, 노동의 산물로서 또는 재료로서 나타난다.
이처럼 하이데거가 일체의 현실을 노동에 대한 재료로서 또는 그 산물로서 파악하는 한, 그는 "세계 내 존재"의 근대적 방식을 매우 철저하게 규정하였노라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확인해 줄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수행(생산)이 존재자를 원료로서, 생산수단으로서 또는 소비재로서 발견할 수 있기 전에, 이 지평이 이미 설정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지평이 오늘날 열려있는 이 방식은 세계 내 존재의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여러 가지 구조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망각하였다.
다른 시대들은 세계 내 존재의 다른 방식들에 의해 규정되어져 있어서, 그때엔 존재자는 사람들에게 다른 구조를 가진 지평 속에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의 세계와 중세인들의 세계는 근대적 기술과 과학의 세계가 아니었으며, 세계의 변화와 더불어 "존재의 의미"도 바뀌어졌다. 즉 인간이 그 자신의 존재가능성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에게 다른 존재자가 존재자로서 나타나는 방식도 바뀌어졌던 것이다.
이런 한에서, 하이데거는, 역사안에서 사고와 존재자간의 매우 상이한 관련방식들이 교체되어 왔다는 관념론의 견해를 확증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관념론이 이러한 모든 형식들을 한 "절대적 지식"에의 접근 단계로서 이해했던 반면에, 하이데거는 주관과 객관간의 이론적 관계를 사고와 존재자간의 근본적 관계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는 생산자의 그의 원료와 산물에 대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근대의 특수한 관계이다. 또 그것은 근대과학의 시대에 있어서조차 "파생적인 것"으로서, 즉 "대상"에 대한 "기술적" 관계-이러한 대상의 객관성은 다만 특수한 종류의 "Nachstellen"과 "Feststellen"에 의해 현상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에 근거해 있는 것임이 입증된다.
하이데거는, 그가 각기 그 나름대로 사고의 방식, "존재자를 대하는" 방식, 그리고 양자(즉 사고와 존재자)간의 매개의 방식을 규정하는 상이한 지평들이 역사의 상이한 시기들에 속해 있다고 함으로써, 선험철학에 역사적 의의를 그리고 역사에 선험철학적 의의를 부여하였다. 그때에 중심문제는 이 시기들간의 이행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어려움은, 상이한 지평들이 아직은 하나의 포괄적인 전체적 지평안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이 문제의 불가피성은, 각기의 현재는, 그 안에서 그것이 자기자신과 존재자를 이해하는 그 지평을, 그것이(즉 각기의 현재가) 자신의 시대적 특수성을 명심할 때에만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데에서 들어난다.
2. "보냄"과 "보내짐"으로서의 역사
"체계"와 "존재"에 대한 위에서 서술된 이해에 의하면, "희귀한 역사적 결단"은,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낡은 지평이 닫혀서, 일체의 상실되었던 것, 일체의 찾고 있었던 것, 일체의 추구하고 있었던 것, 일체의 몰랐던 것, 물었던 것, 그리고 해답했던 것이 새로운 길로 옮겨지게("보내지게")될 때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인간은 제멋대로 어느 한 지평을부터 다른 지평으로 들어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낭만주의 조차도 "중세의 세계"를 동경은 할 수 있을지라도 그 속으로 들어설 수는 없다). 다른 편으로 지평은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적 구조가 아니고, 인간이 그 속에서 "정향"하고 그속에서 "살아갈"때에만, 나아가서 인간이 "진리"의 각기의 특수한 방식-이것은 "세계"의 각기의 특수한 방식에 대해서 상대적이다-을 스스로 "작용"케 할 때에만(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예술-작품의 역사적 의의가 속해있다), 열릴 수 있고 또 열려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철학의 제1물음은, 인간을 그의 노정(존재자와의 만남)의 각기 특수한 방식에 향하게 하는 그러한 "보냄"과, 그리고 이 경우에 인간이 수행하게 되는 것간의 관계에 대한 물음, 즉 인간을 그의 길로 "보내는", "보냄"이 그 경우에 어떻게 인간을 "필요로 하는가"(즉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보냄)에게 봉사케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에게 그의 자립성을 "인정해주는가")의 물음이다. 하이데거는 이 관계를 규정하지 않았다. 그런 한에서, 그는 그의 역사이해에서 생겨나오는 가장 중요한 물음에 해답하지 않고 다만 그것을 "암시"하는 데에 국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한 역시 진리와 역사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오는 결과이다. 왜냐하면 사고의 가능근거는 결코 확정될 수 있는 표상의 대상이 아니고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요구의 연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결적 이론이 아니라 "참을성있게 묻는 것"(Ausstehen der Frage)이 이 근거에 대한 적합한 관계이다. 왜냐하면 사고는 다만 그렇게 해야만이 다가오는 보냄에 대해 스스로를 개방할 수 있고 또 역사를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역사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과 역사철학의 현재 상황
그렇게 암시되어진(상기된) 물음이 의미하는 바를 명백히 지시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특히 "보냄"이란 말의 애매성-이것은 "역사를 신비화"할 위험을 생겨나게 한다-은 하이데거의 역사이해에 대한 근본적이고 원리적인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편으로 지난 십년의 세월은 신실증주의, 신마르크스주의, 신해석학의 부활은 가져왔지만, 이 역사이해를 넘어서진 못하였다. 역사철학의 새로운 파악을 위한 단초는, 언어철학적 반성이 역사문제에 적용될 때에,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언어는, 그 구조에 의해, 그 안에서 우리에게 마주치는 자가 의미기능들의 담지자로서 이해될 수 있는 그러한 연관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언어적 문헌의 배후로 파고들어, 언어는 이러한 구조의 변천과 발전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허용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지평의 변천은 경험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 이 경우에, (그 안에서 존재자가 존재자로서 우리에게 마주쳐지고 이해되어질 수 있는 그러한 구조에 대한)선험철학적 물음과 (언어적 문서의 자료에 대한)역사적-경험적 탐구는, 구조의 시대적 제약성에 대한 물음과 시대들간의 이행에 대한 물음이, 이러한 방식으로 방법론적으로 조종될 수 있다(그 반면에 이러한 물음이 하이데거에서는 밝혀질 수 없는 신비한 것으로 이끌어져 갈 위험이 있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그러한 한 방법으로 결합되어진다. 그러나 여태까지는 언어철학적으로 근거지워진 역사철학의 체계적 전체적 기획이 결여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간략하게 개관되었던 바와 같은 역사철학의 역사에 대한 회고는 이후의 역사문제의 철학적 연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사를 정당화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즉 역사에 대한 철학적 사색은, 상이한 시기들에 있어서, 각기 선험적 반성에서 역사적 의의를 얻어내고 그리하여 거꾸로 또한 역사적 반성을 선험철학적으로 기초지울 수 있을 때에, 그 주제의 원리적 측면에로까지 나아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문제에 대한 결론적 고찰에서, "선험철학과 역사"의 연관을 그 논술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영남대의 허재윤 교수가 Richard Schaeffler 교수의 Einfuhrung in die Geschichtsphilosophie를 완역한 것이지만, 같은 해 울산대의 김진 교수가 1997년에 철학과 현실사에서 출간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글은 김진 교수의 역서를 전혀 참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번역한 것이고 원서의 판마저 다르므로, 비교해서 읽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