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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여, 제자가 되라!
2007-01-26 12:14:07   read : 2480

청년이여, 제자가 되라!

막 8:34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의 비전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었습니다. 즉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죽어있던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난 영혼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고,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전략을 바로 '제자'라는 전략이었습니다. 제자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는 그가 쓰실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1세기의 세상을 이 열두 제자들을 통해서 변화시키셨습니다.

저는 세상을 살려내기 위한 주님의 전략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부르셨던 그 주님께서는 지금도 제자들을 부르고 계시며 제자들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을 통해 주님은 당신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청년들은 오늘 우리 시대의 제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참 제자의 길을 걷기를 원한다면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 대답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8장 34절에 나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두 종류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무리'이고 또 하나가 바로 '제자'입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무리와 제자로 구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무리를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군중, 헌신되지 않은 무리를 예수님은 결코 쓰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전히 준비된 한 사람, 바로 제자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왕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무리가 아닌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째,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떠라오너라." 부르시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던 당시의 제자들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꿈은 바로 민족의 회복입니다. 그 꿈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고 사는 민족의 젊은이들이 당연히 가질 만한 꿈입니다. 아니, 가져야 마땅한 꿈일 것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절대로 포기될 수 없는 그런 꿈이었을 겁니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바고 살던 때의 이 땅의 뜻 있는 젊은이들의 한결같은 꿈도 민족 해방이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소위 젤롯인으로 알려진 열심당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민족 해방의 전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들의 꿈이었던 민족 해방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로마 군중들에게 힘없이 잡히셨고 십자가의 형틀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황망한 예수님의 죽음은 곧 제자들의 꿈이 무산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꿈이 부활하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 그들은 이제 드디어 그때가 가까웠다고 믿으며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바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제자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달랐습니다. 제자들의 꿈과 예수님의 꿈이 달랐습니다. 제자들의 목표와 예수님의 목표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민족 해방의 꿈을 구고 있었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꿈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꿈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뽑으시면서 그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꿈을 이루려고 불렀는데 제자들은 제자들대로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던 것입니다.

물론 민족 해방을 위한 노력은 소중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제자들의 생각을 부인하거나 무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에 있다." "그러나 우선 순위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너희들이 나의 제자라면 너희들이 꾸어야 할 더 중요하고, 더 고상하고, 더 소중한 꿈이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보다 더 큰 꿈이 있다. 그것은 온 세상 모든 라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더 중요한, 더 높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내 인생의 주인 되신 그분의 꿈을 위해서 때로는 내가 가진 좋은 꿈도 접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좋은 생각, 목표, 가치를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부인의 결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청년들은 그들의 삶의 과정에서 반드시 자기 부인의 과정을 지나가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비로소 우리는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십자가를 진다'고 하면 그것은 곧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맞습니다. 사실 십자가에는 고생과 희생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단순한 희생이나 고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는 고통과 희생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묵묵히 십자가로 걸어가신 이유가 무엇일가요? 저항 한번 하지 않으시고 순순히 목 박히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셔서 속죄의 제물이 되셔야만 온 인류가 속죄함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각자가 져야만 하는 십자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말은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지 못한 채 나를 향한 나의 계획만 붙들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를 통한 하나님의 기대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한 계획을 이루시려고 어떤 은사도 주시고 열정도 주시고 소망도 주셨는데 내가 하나님의 뜻은 모르고 내 고집만 세우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하나님의 뜻은 사장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정 제자가 되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자기 십자가를 져라"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뜻 앞에 자신의 인생을 드려서 바쳐라. 이것이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 뜻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결국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도한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록된 성서의 말씀을 통해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통해서 특별히 큐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삶, 이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너의 십자가를 지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이 과감한 요청 앞에 "예! 주님 나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다르겠습니다."라고 응답하며 과감하게 헌신하는 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주님을 날마다 따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졌다면,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해졌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계획대로 살면 됩니다. 그 뜻대로 살면 됩니다. 결국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한 번이 아니고 '날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2000년 전 초대교회 시절, 적은 숫자의 제자들이 1세기의 세상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가장 영향력 있었던 대도 바로 이 1세기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숫자도 적고, 재정도 부족하고, 건물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단순한 순종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씀대로 믿었습니다. 그들은 주어지는 하루 하루를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매일매일 날마다를 주님을 따라 십자가로 걸어가는 순교적 삶을 살아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삶이었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라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로, 사마리아로, 로마로 그리고 땅 끝까지 나아가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날마다 어디든지 기꺼이 주님을 좇아갔습니다. 결과적으로 1세기의 세상은 복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세상은 복음의 영향으로 상당한 충격과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이 날마다 주님이 말씀하신 삶을 살아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루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렇게 산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이것입니다. '내 욕심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비전을 따를 것인가?' '그냥 편한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어려움이 있어도 때론 아파도 하나님의 계획대로 달려갈 것인가?' 우리는 이 싸움을 날마다 싸워야 합니다. 매일 매일 싸워내야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순종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을 날마다 따라가는 삶!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마지막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오늘 우리가 만약 이러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된다면, 1세기의 세상을 열두 명의 제자들을 통해 변화시키셨던 것처럼 오늘 이 21세기의 세상은 우리를 통해,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통해 분명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꿈을 함께 꾸면서, '무리'가 아닌 '제자'가 되어 주님을 위해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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