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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본 환상, 밤에 부른 찬송
2007-02-16 13:39:35   read : 1991

밤에 본 환상, 밤에 부른 찬송

행 16:25-32
이규왕 목사(수원제일교회)

(행 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 16: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 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행 16: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행 16: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행 16: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6: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일 년 중에는 추운 겨울과 따스한 봄이 있는 것처럼, 하루 중에 밝은 낮과 캄캄한 어두움이 공존합니다.

인생의 계절에도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 밝은 낮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 공존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밝은 낮에는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지만, 캄캄한 밤에는 한숨을 쉬며 절망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도 형통한 날만이 아니라 곤고한 날도 주신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낮과 같이 형통한 날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밤과 같이 곤고한 날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1.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

우리가 살다가보면 인간관계에서 다투거나 헤어지는 문제가 발생되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누가 옳고 그르고, 잘했고 못했는가 하는 문제에 매어달려 문제의 책임을 어느 한 쪽에 전가하려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쪽이 더 잘못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했으면 용서를 해주어야 할 사람이 다 옳은 말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이론만 주장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드릴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람들이 바로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입니다.

만일 바울이 바나바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렇게 위대한 바울이 될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바나바가 바울의 고향에 까지 직접 찾아가서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를 동역하면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였습니다. 또한 두 사람은 형제처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고 함께 선교사가 되어 일차 선교여행을 통해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행 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행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렇다면 누가 그와 같은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다투어 헤어지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정말 예기치 못했던 문제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는 심각한 다툼이 일어나 마침내 동서로 갈라지는 마음 아픈 일이 벌어졌습니다.

(행 15: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여기서 심히 다투었다는 말은 의견의 불일치로 인해 격렬한 말다툼을 한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갈라섰다는 말입니다.

과연 무엇이 그렇게 절친한 두 사람 사이를 갈라서게 하였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것은 이차 선교 여행을 떠나는 문제까지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만 마가 요한을 동행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바울과 바나바가 평행선을 달리는 주장을 서로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바울의 입장은 마가 요한이 일차 선교여행에서 중도 탈락한 것은 선교사에 가장 중요한 사명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차 선교에서 또 다시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면 선교 사역에 피해가 오기 때문에 동행시킬 수 없다고 강경하게 주장한 것입니다.

2) 바나바는 마가 요한이 일차 선교여행에서 중도 탈락한 후에 회개를 했으니 다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어 일꾼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이차 선교에 동행을 시키자고 강경하게 주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물론 두 사람의 주장은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한 고집이 아니라 나름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선교를 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개인의 견해입니다.

두 사람이 심히 다투고 갈라서게 된 본질적인 원인이 두 사람이 똑같이 자기주장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 아집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상대방을 포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없는 사람은 가정에서 부부 사이에, 교회 안에서 교우 간에 얼마든지 다툼이 일어나고 갈라설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여실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도 가정과 직장과 교회 안에서 좋은 관계 사이에도 때로 다투게 되는 원인도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이해하고 양보하기보다 둘 다 고집을 부리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설령 어느 한 쪽이 잘못했을지라도 먼저 시인하고, 상대방은 이해하고 용서한다면 다툼이나 분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물론 인생의 만남이란 인간관계는 아무리 좋은 관계일지라도 아무런 갈등이나 다툼이 없이 항상 좋기만 할 수는 없기에 때로는 다투기도, 그로 인해 언젠가는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헤어진다고 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투는 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헤어진 후에 서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비록 다투고 헤어졌을지라도 서로 원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관계는 지속되었고, 바울이 배척했던 마가 요한은 후일에 바울 곁을 떠나지 아니하는 충성스런 심복이 되었음을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갈 2: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골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몬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딤후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2. 한 밤의 환상

인간관계에서 만남은 헤어짐의 전제요 헤어짐은 새로운 만남의 전제입니다. 바울사도가 바나바와 갈라선 것은 참으로 아쉽고 섭섭한 일이지만, 바울은 바울대로, 바나바는 바나바대로 각기 선교를 함으로 오히려 선교는 더욱 확대되어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행 15: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행 15: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

물론 하나님의 일을 좀 더 효과적으로 잘해 보려는 욕심에 갈라선 바울과 바나바의 심정은 편치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바울에게 바나바나 마가 요한 못지않은 좋은 일꾼을 만나게 해주셨는데 그 사람이 바로 루스드라에서 만난 디모데였습니다.

디모데는 1) 아버지가 헬라인이요 어머니가 유대인인 혼혈아였으며, 2) 어려서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 신앙의 지도를 받은 뿌리 깊은 신앙인이었으며, 3)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모범 청년이었습니다.

(행 16: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여기서 칭찬받는 다는 말은 미완료 상태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젊은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와 같은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로 삼았으며, 에베소 교회의 담임목사로 세우고 목회서신인 디모데 전 후서를 기록해 보낼 정도로 사랑을 쏟았습니다.

(딤전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딤후 1:3)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1) 길을 막으시는 성령

디모데를 얻은 바울은 마치 농부가 밭에 싹이 난 것에 물을 주는 것처럼 일차 선교지를 순행하여 가는 곳마다 신학의 통일성과 더불어 활력을 불어 넣어 교회가 부흥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행 16:4)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행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그러나 바울은 주어진 과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만족하며 안디옥으로 귀환하는 대신 새로운 선교지 개척을 위해 동아시아 쪽으로 방향을 옮겼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말씀이 소아시아 지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를 포함한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을 뜻하는 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바울 사도가 계획한 아시아 선교는 마치 소외된 지역처럼 성령님이 길을 막으셨을 뿐 아니라 아예 허락지 않으시는 것이었습니다.

(행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행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왜 허락하지 않으시고 왜 금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시고 무조건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하는 일도 그렇게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옳고 선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깊은 뜻 가운데서 길을 막으시기도 하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묵묵부답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바울은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며 살았습니까?

2) 바울의 순종

바울이 마가 요한의 문제를 바나바에게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하였기 때문에 바나바와의 좋은 관계가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아시아로 가는 길을 막으셨을 때는 즉각 순종하였습니다.

(행 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바울이 무조건 순종하였을 때 비로소 성령께서 왜 아시아로 가는 것을 막으셨는지 사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드로아에서 바울이 밤중에 본 마게도냐의 환상입니다.

(행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행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말은 마게도냐 사람들이 절박한 상태에서 울부짖으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을 뜻하며,

2) ‘떠나기로 힘쓰니’라는 말은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열망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추구하는 모습을 뜻하며,

3)‘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는 말은 매우 특이한 단어로 단순히 동의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함께 결합하다, 함께 짜 맞추다, 한 몸을 이루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바울이 마지못해 억지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도 신속한 순종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그 같은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바울을 크게 쓰신 이유였습니다.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라는 찬송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말씀으로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순종하며 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이왕 믿을 바에야 전폭적으로 믿고 신속하게 순종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시 119:60)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



3. 밤에 부른 찬송

바울이 아시아로 가려던 자신의 의지를 접고 밤중에 드로아의 환상을 보고 순종하여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그렇다면 환상을 본 대로 누군가 바울의 일행을 기다리다가 반갑게 맞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하였으나 기대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행 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 아무도 반겨 주는 사람이 없었을 뿐 아니라,

2) 안식일을 맞이했으나 복음을 전할 회당을 찾지 못했으며.

3) 과연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만한 장소를 찾다가 몇몇 여인들이 강가에 모여 기도하는 기도처를 발견하고 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행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1)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루디아가 마음을 열고 받아드림으로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음으로 최초로 그리스도의 가정이 탄생했으며,

2) 점하는 여인에게 붙은 귀신이 여러 날 동안 바울을 괴롭히자 쫓아버리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3) 귀신들린 여인을 이용하여 여 돈벌이하던 주인에게 고발을 당하여 많은 매를 맞고 투옥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행 16: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행 16:24)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1) 여기서 많이 친다는 말은 당시 40에 하나를 감하는 매를 가리키며,

2) 깊은 감옥에 가둔다는 말은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지하 감옥을 뜻하며,

3) 착고는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다리를 벌려 발목에 채워 고통을 주는 형벌 도구입니다.

그 다음 수순은 무엇이겠습니까? 순교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절박한 상황이지만 생소한 객지에서 아무도 구원하여 줄 사람이 없는 캄캄한 밤을 만난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성령의 명령에 순종한 결과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으며, 밤중에 본 환상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캄캄한 밤 온 몸이 쑤시고 결리고 매를 맞은 상처는 아픔만 더하는 고통의 밤에 바울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렇게 절망적인 밤에 희망을 품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 소리 높여 찬송 하였습니다.

(행 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여기서 밤중은 모든 사람들이 깊이 잠드는 한 밤중을 가리키며, 기도는 쉬지 않고 계속하는 현재 진행형 동사이며, 찬미도 고통 중에서도 계속되는 미완료 상태를 뜻합니다.

그 소리는 온 감옥 안에 울려 퍼졌으며, 다른 죄수들과 간수를 자극하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며, 그로 인해 바울과 실라에게 고통만 더해질 것을 알면서도 기도와 찬송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예상 못한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행 16: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여기서 이에 홀연히 라는 말은 갑자기 일어난 큰 지진의 원인이 자연 현상이 아니라 바울과 실라가 한 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한 결과로 일어난 초자연적 현상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1) 옥터가 ‘움직였다’는 말은 수동태로 휘젓는 것과 같이 흔들리는 상태이며,

2) ‘다 열리며’는 자동문처럼 열렸다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 열었기 때문에 문이 열린 것을 뜻하는 수동태이며,

3) ‘다 벗어진지라’도 역시 쇠사슬이 저절로 풀어지거나 죄수들 자신이 풀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풀어주었기 때문에 모든 죄수들의 것이 다 풀어지는 수동태를 가리킵니다.

과연 누가 지하 감옥에 쇠사슬에 묶여 있는 죄수들을 손 하나 대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이 과연 세상에서 누구입니까?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밤에도 바울과 실라가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한 것이 이처럼 하나님을 움직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기회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간수가 바울의 전도를 받고 그 자리에서 감동을 받고 결신을 하였습니다.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6: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것만이 아닙니다. 간수의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고 크게 기뻐하는 믿음의 가정이 됨으로 빌립보에서 두 번째 그리스도의 가정이 탄생한 것입니다.

(행 16:33)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행 16: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그 결과 빌립보가 마게도냐 선교의 전진 기지가 되었습니다, 뒤를 이어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들이 바울 서신에 나오는 여러 교회들입니다.

그러므로 돌이켜 보면 처음에는 잘 이해할 수 없고 무조건 순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어려움만 더해 가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으나 이제 알고 보니 그 모든 것의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이 바울을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하신 이유도,

2)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이 부르는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도,

3)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하신 이유도 다 이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자신들의 몫을 다 했을 때 바울을 가두게 했던 상관들이 등을 밀면서 감옥을 나가게 했으며, 더 이상 괴로움을 주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평안한 마음으로 감옥에서 나와 첫 결신자 루디아의 가정을 심방하고 당부한 후 빌립보를 떠났습니다.

(행 16:36)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행 16: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그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이며, 여러 바울 서신 중에 읽고 듣는 이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성경이 바로 빌립보서인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과 실라 만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그 말씀이 내게 주신 것이라면 무조건 즉각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님을 좀 더 잘 믿어 보려고 하고, 말씀에 더 잘 순종하려고 할 때 만사형통이 아니라 바울과 실라처럼 견디기 어려운 고난에 처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고 이제는 죽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되는 최악의 상황을 만날지라도 믿음을 잃지 말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은 캄캄한 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자에게 밝은 달과 수많은 별들을 준비해 놓으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밤을 만났을 때 당신을 바라보는 자들을 위해 달이나 별보다 더 아름다운 비전인 환상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칠흑같이 어두워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인생의 밤에도 절망하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에게 기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한 밤에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한 밤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한 밤에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새벽은 오는 것처럼 한 밤에 찬송은 나를 가두었던 감옥 문을 열게 하고 나를 묶었던 사슬을 풀게 하고 나를 두렵게 했던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고 마침내 자유와 평안을 맞게 하는 새 아침의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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