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8: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행 18: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행 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행 18: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행 18: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피카소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피카소의 대부분의 그림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6명의 가족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린 ‘솔레르씨 가족’이라는 작품의 경매 가격은 무려 500 억 원이나 호가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솜씨가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과 같은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그 속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간은 거대한 것은 말할 것 없고 하찮은 작은 것 하나를 만들지라도 재료와 시간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무엇도 만들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지만, 인간은 어느 것 하나도 자력으로 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인간에게는 돕는 배필이 필요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배필과 동역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일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좋은 부모를 만나고, 좋은 스승을 만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제자를 만나고,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소중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홀로 인간의 구원을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셨지만 인간은 그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을 얻는 일에 전도자가 필요하고 목사가 필요하고 교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좋은 교사를 만나고 좋은 제자를 만나고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임을 오늘 성경 본문의 바울사도와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고린도에서의 사역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만사형통을 원하지만 살아가노라면 희비가 엇갈리는 것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들과 달리 항상 성령 충만한 전도자요 위대한 선교사인 사도 바울이지만 그 사역에도 항상 만사형통과 풍성한 결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우여곡절이 많았음을 바울 사도의 사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아덴에서 사역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별다른 핍박이 없었던 반면에 결실도 풍성하지 못했음을 사도행전 17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바울이 꾀를 부리거나 게을리 한 것이 아니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덴을 떠나는 그이 심정은 씁쓸하였을 것이고 발걸음은 매우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보려는 전도자가 경험하기 쉬운 심정입니다. 그럴 때면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그 일에서 벗어나 도피하고 싶은 슬럼프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음 사역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곳이 바로 고린도입니다.
(행 18: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여기에 나오는 고린도는 어떤 곳일까요? 이 도시는 특히 육상 및 해상 무역로가 집중되어 상업적으로 유리한 위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며 이러한 윤택(潤澤)한 생활은 결국 주민들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
B.C. 5세기 초 고린도 사람들의 문란한 생활 때문에 '고린도 사람이 되다'는 뜻의 헬라어 '고린디아제스다이'라는 말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음란 곳이며, 영적으로도 이방 신전들이 가득한 우상 숭배의 도시였습니다.
당시 인구가 60 만을 헤아리는 대도시였으며 그 가운데 자유인이 20 만, 노예가 40 만이었다고 합니다.
주민의 다수는 헬라인이었으나 각처에 모여온 사람들이 많았고 유대인도 상당수가 있어서 그곳에 유대인의 회당이 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심정에 대해서 '약하매 두려워하여 심히 떨었다'(고전 2:3)고 했습니다.
여기서 약하매 라는 말은 질병이나 마음이 연약한 상태를 가리키며,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는 말은 두려움으로 인한 공포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도 오늘 우리들과 다름이 없는 연약한 인간이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 사도의 도전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도전은 실패나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도 경험하고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나 지금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인 것입니다.
고린도에서 바울 사도는 아덴에서 철학자들과 논쟁하던 방식과는 달리 안식일마다 회당에 찾아가서 종전에 하던 방식대로 복음만을 증거하였습니다.
(행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여기서 ‘밝히 증거 했다’는 말은 법정적인 용어로 변호사가 피고의 무죄함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증거들을 제시하여 사실을 밝히는 모습처럼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지속적으로 증거 하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공통된 모습을 이미 베드로 사도가 삼천명을 회개하여 제자로 삼을 때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행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바울 사도는 어떤 결실을 거두었을까요? 베드로의 열심처럼 바울 사도도 좋은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행 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그 결과 아덴 못지않게 영적으로 열악한 고린도였지만 마침내 그와 같은 고린도에 주님의 몸된 거룩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고 우상 숭배에 빠져 지옥을 향해 가던 고린도 사람이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기까지 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성공이든 실패이든 세상에서 모든 일은 우연은 없습니다. 다 나름대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가 어느 곳보다 죄악이 극심한 고린도에서 그와 같이 성공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던 원인과 비결은 무엇일까요?
2. 하나님의 도우심
바울의 관심은 장소나 사람이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변함이 없는 한 가지 뿐인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일에 성공의 최대 관건은 바울이 얼마나 열심히 잘 하는가 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얼마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도와 주시는가 에 좌우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변화가 더딘 것은 사람입니다. 하루아침 사이에 잘하고 못하고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덴에서 소극적인 성과를 거두었던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아무리 열심히 잘한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었겠습니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처럼 그 사람에, 그 복음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 때문인 것입니다.
(행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행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바울 사도에게 그와 같이 나타나셔서 함께 하심을 확신케 하셨을까요?
(행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그것이 바로 바울의 고린도에서의 말씀사역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철학자들과의 복음의 접촉점을 찾기 위해 합리적인 변론과 변증적인 방법으로 복음 전도를 시도했던 것과는 달리 고린도에서는 순전히 복음의 말씀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때의 바울의 심정을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의도적으로 바울 사도가 굳게 결심한 일이었습니다.
(고전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러나 그 결심을 지키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6 절). 바울이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할 때 유대인들이 대적하였다고 성경은 밝힙니다. '대적'이란 군사 용어로 조직적이며 체계를 세워 결사적으로 반대 행위를 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늘 복음에 반대 세력을 등장시켜 복음을 대적케 합니다.
(고전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그러나 바울 사도는 성령이 충만해졌으며, 담대해졌으며, 마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고린도를 짓누르고 있는 영적 세력과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고전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렇게 하다가 보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울 사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잠잠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힘을 얻은 사도 바울은 온전히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복음만을 증거하는 중에 일년 육개월이 흘러갔습니다.
(행 18:11) 일 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여기서 가르친다는 말은 지금까지 다른 곳에서 증거 하였다는 말씀과 달리 계속적으로 가르치는 제자 사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기간은 데살로니가에서 불과 세 안식일만 증거하였던 기간과 비교하면 고린도교회에 대한 엄청난 특혜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가장 사모해야 할 말씀도 십자가의 복음이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종들과 함께 하시며, 십자가의 복음을 사모하는 사람과 변함없이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듣는 제자가 되어야 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3. 제자와 동역자의 도움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자기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도 안되고 아무리 큰 일을 했어도 자기 혼자 힘으로 한 것처럼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이미 앞서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 일뿐 아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붙여서 그 일을 하게 하시기 때문에 자기 혼자 힘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어떤 일도 불가능하며 또한 다른 성도들의 기도와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본보여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도, 베도로만이 아니라 요한과 야고보를 늘 동행시키신 것도, 마지막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라고 말씀하신 것도 서로의 협력을 뜻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주인공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핍박자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예수님의 은혜일 뿐 아니라 선지자 아나니아의 기도와 바나바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 요한의 문제로 바나바와 다투고 분리를 한 후에도 바울은 단독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실라와 짝이 되었으며, 그 후에도 여러 사람들을 제자와 동역자로 삼아 주셨기 때문에 바울의 사역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을 마감하고 3차 선교 여행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도 가는 곳마다 제자와 동역자를 붙여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핍박으로 인해 아덴으로 떠날 때 실라는 남겨두고 바울 혼자서 떠났습니다.
(행 17: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바울은 다시 혼자의 몸으로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를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그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로마의 황제 글라우디오가 내린 유대인 추방령 때문에 로마에서 고린도로 피신해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동역자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 사도와 같이 장막을 만드는 일에 동업자처럼 공동생활을 하면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통해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한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과 고린도에서 일년 반동안 같이 사역을 하면서 바울 사도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이 됨으로 그들의 신앙에 놀라운 성장과 성숙의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상부상조하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가리켜 바울은 그들을 동역자라고 불렀으며 항상 바울과 함께 하면서 생명도 아끼지 않는 좋은 제자 좋은 동역자로 바울을 도왔기 때문에 바울의 선교 사역에 탄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롬 16: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행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은 그와 같은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잘 알고 있는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랑하기를 자기를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은 부부라고 자랑할 정도로 신임을 받았습니다.
(롬 16: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그 이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이 교회가 되었으며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두 부부를 각별히 대해 줄 것을 당부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고전 16: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2) 실라와 디모데
바울 사도가 혼자서 고린도에 도착했던 바울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지만 고린도 사역이 활발해지면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의 도움이 더욱 요청되었습니다.
(행 17: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여기서 속히 는 최상급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장 빨리, 전 속력으로 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린 이유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도움이 큰 위로가 되기는 하였지만 실제적인 말씀사역에 필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의 기쁜 소식을 전했고(살전 3:6), 실라는 빌립보 교회의 소식과 그들이 보낸 선교헌금도 함께 가져왔습니다(고후 11:9, 빌 4:15).
(행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안정된 목회나 유력한 후원자가 없었고 생업으로 인해 안식일에만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통해 전해준 기쁜 소식과 헌금으로 오로지 말씀에 전념하며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3) 아볼로
바울은 이제 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잠깐 에베소에 들렀고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오리라고 기약을 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남겨 놓은 채(엡 18:19) 떠났습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를 방문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아볼로를 에베소 선교를 위해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아볼로는 헬라 철학에 능하고 성경에도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식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설득시키는 언변에도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행 18: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행 18: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흔히 그와 같은 사람은 교만하기 쉬워 남을 가르치려고 할지언정 자기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볼로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을 뿐 성령 충만에 대해서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준비하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아볼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볼로가 바울 사도와 함께 하면서 좋은 동역자가 되고 좋은 제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아볼로를 바울 사도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아무리 바울 사도가 일년 육개월 동안 열심히 사역을 하여 고린도 교회를 세웠다고 할지라도 때가 되어 바울이 떠나고 나면 그 뒤가 더 문제였는데 그것을 아볼로가 잘 맡아 준 것입니다.
바울의 성공적인 선교 사역에는 이상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늘 성경에 보면 그 외에도 집회 장소를 제공한 이방인 유스도(7절)와 회개하고 예수를 믿은 회당장 그리스보(8절)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제자들과 동역자들과 협력자들로 말미암아 고린도에서 장기간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에게는 이와 같은 제자들과 동역자들을 통해서 사역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나 혼자 힘으로는 주의 일은 커녕 나의 생존조차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신앙적으로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고린도와 같이 우상숭배와 음란한 세상에서 전도를 하고 주의 일을 하기는커녕 내 신앙을 유지하고 고수하는 일조차 버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일을 하며, 전도를 하며, 양육을 하며, 사역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의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두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 범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2) 하나님이 붙여 주시는 좋은 제자와 동역자들을 만나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우리를 위해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약속하신 '임마누엘'의 축복보다 더 우리에게 힘과 용기와 위로의 말씀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이요 말씀을 붙잡는 삶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또한 그 말씀이 우리를 붙잡을 때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할 수 있고 실패처럼 보이는 고난은 성공을 위한 필수 과정이 되어질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그를 도와준 수많은 동역자와 제자들이 없었다면 그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브리스길리와 아굴라가 없었다면 고린도에서 사역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한 디모데와 실라를 통한 위로와 재정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헬라 철학에 능통하고 언변이 뛰어난 아볼로가 없었다면 바울의 2차, 3차 전도여행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볼로가 없었다면 에베소 사역은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를 읽어보면 얼마나 신앙의 수준이 있는 교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위해 위대한 지도자도 필요하지만 그를 도와줄 수많은 제자들과 동역자들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누구나 복음 사역에 함께 동참할 수 있고 또 동참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동참하는 수원제일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개인이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사람을 쉽게 잊지 못한다면 주의 일에 동역한 사람들을 어찌 잊으시겠습니까?
(히 6:10)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를 위해 열두 제자의 비전이 있고 이를 위해 주일학교가 있고 이를 위해 교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좋은 제자, 좋은 동역자들이 되어 100만 명이 살고 있는 이 도성을 거룩한 도성이 되게 하고 우리 교회는 이 도성 가운데 하나님이 작정해 놓으신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제자를 삼고 사역자를 삼아 세계 복음화의 전진 기지가 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