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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2007-03-16 05:46:20   read : 2288

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행 20:22-25
이규왕 목사(수원제일교회)

(행 20: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5)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사람들이 다 행복을 원하는데 과연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행복한 사람은 지난날 잊을 수 없는 추억과 더불어 아직 오지 아니한 미래의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추억은 성실한 삶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면, 미래의 꿈은 신실한 믿음을 통해서 꾸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삶이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위로가 되고,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은 소망과 인내를 갖게 하여 줍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다 어려움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때로는 불신자보다 더 고난이 클 수도 있습니다. 현실이 막막하기만 할 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럴지라도 그 같은 현실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확고한 비전을 세우기 위해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1. 바울의 업적

바울은 우리들과 본질이 다른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너무나 똑같은 인간으로 혈기도 있고, 배고파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아픔도 느낄 줄 아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한 때 우리들처럼 예수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수 믿기가 어려웠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를 너무나 싫어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잡아 가두고 심지어 죽이는 일에 선봉을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그런 사람이 지난날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예수님을 위해 생명을 걸고, 여생을 살았다면 미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기독교에 대해서 무엇인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목숨 걸고 사랑할 대상을 발견한 사람일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사랑의 대상을 위해 다 불살라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과연 세상에서 생명을 걸고 사랑할 대상이 있습니까? 있다면 누구이며,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독교에 대해서 적대적이었던 사도 바울이 바로 그와 같은 사랑의 대상을 발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대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후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명예와 권세를 배설물처럼 여겼으며 하나 뿐인 생명도 아까와 하지 않고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바울이 그렇게 변한 것은 누가 강제로 시켜서가 아니었으며, 어떤 상급이나 보상이 보장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그렇게 싫어하고 미워한 죄인임에도 예수께서 자기를 버리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시고, 사랑하시는 은혜가 감사해서 그처럼 헌신한 것입니다.

그 결과 괄목할 만한 좋은 열매와 성과가 있었지만 자만하지 않고 겸손히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물론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헛수고처럼 생각될 정도로 그 때문에 억울한 고난을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낙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기 쉽지만 바울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고 도리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도 바울이 그러한 마음의 자세로 일이삼차 선교 여행을 한 결과 복음이 전무했던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에 복음의 전진 기지가 확보되고 그 주변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전쟁 시에 교두보가 확보되면 승산이 있는 것처럼 영적 전투인 복음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총사령관이신 예수께서 이스라엘 팔레스틴 땅에 오신 것도 복음의 전략적 거점을 마련하신 것이요,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교두보를 확보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바울이 일이삼차 선교 여행에서 어느 곳보다 심혈을 많이 쏟은 곳들이 바로 그와 같은 영적인 거점과 교두보가 될 만한 지역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에게해 서편에는 유럽의 관문인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지고

2) 지중해 연안으로 연결되는 해상 교통 요지인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지고

3) 에게해 동편에 유럽에서 소아시아로 들어가는 길목인 에베소에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물론 바울 사도 혼자서 한 일이 아니지만 바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바울이 바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이 위대하기 때문에 위대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일들을 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위대해 진 것입니다. 소문은 항상 일의 결과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종종 주님만이 아니라 자신을 본받으라고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은 바울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그렇다면 우리의 지난 온 길을 한번 돌이켜 보십시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생명을 걸었으며, 무엇을 이루었는가? 아직도 무엇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2. 바울의 비전

바울 사도가 그 정도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여 그 정도 놀라운 업적을 만들어 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때도 되었는데 바울은 조금도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 만큼 열심히 많은 일을 하였으면 탈진을 하여 지칠 때도 되었는데 마치 일 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구상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일이삼차 선교 여행을 간증하는 삶으로 여생을 살아가지 않고 아직 가보지 않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는 야심찬 미래에 대한 비전입니다.

(행 19: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그 이유는 로마에 가야만 출세할 수 있고, 로마에 가야만 성공적인 기독교 지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시 ‘모든 길은 로마로’ 라는 슬로건처럼 땅 끝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놓고 로마가 위치한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것이 자신의 남은 사명이요 비전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롬 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일에 대한 목표가 세워지면 이미 지난 과거 일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쉽게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 로마로 가는 것이 새로운 비전과 목표로 설정되었다면 이미 지나쳐온 선교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로마로 가고자 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해주셔야만 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로마로 가고자하는 비전을 놓고 열심히 기도하고 로마로 갈수 있는 길을 여러 가지로 모색하였습니다.

(롬 1: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그 좋은 길을 얻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기도했을 것입니다. 로마로 가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좋은 길을 모색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목적만이 아니라 방법도 좋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것은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롬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 사도가 로마로 가려고 하는 것이 사사로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가려는 것임을 하나님이 잘 아시면서 왜 길을 열어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만일 바울이 로마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죽을 때까지 못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일에 어떤 방편으로든지 로마에 간 것을 보면 바울이 가고자 하는 시점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응답되는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 응답이 됨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고, 기도의 응답이 늦다고 보채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기도할 뿐이며 응답의 주권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을 미리 미리 기도해 놓는 것은 마치 미리 씨를 뿌려 놓는 것과 같아서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응답의 싹이 나는 것입니다.

(겔 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합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3. 비전을 이룰 때까지

바울만이 아니라 사람마다 나름대로 이미 지나 온 과거의 추억과 아직 오지 아니한 내일에 대한 꿈과 비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난 과거에 연연하여 낙심과 분노와 증오와 후회를 거듭하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정반대로 어떤 사람은 아직 오지 아니한 내일에 대한 꿈과 비전만을 붙잡고 오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면서 세월만 낭비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앞으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전에 자기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1) 사람을 세우는 일

바울 사도는 마치 어머니가 여행을 떠나기 가족을 위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 챙기는 것처럼 마지막 작별을 앞두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씨 뿌려 놓은 교회들을 다시 한 번 순행하며 물과 거름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곳이 바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 여러 교회들이 있는 마게도냐 지경이었습니다.

(행 20: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행 20:2)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여기서 '권한다'는 말은 곁에서 부른다는 말로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을 뜻하며, 바울의 목양 사역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는 바울 사도가 여러 지역 교회들을 차례로 순행하면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물과 거름을 주고, 이단을 경계하게 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이 떠난 후에도 바울이 씨 뿌리고 물주고 가꾼 교회들이 수많은 외부적인 도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복음을 전하는 일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에서 삼 개월 동안 열심히 사역을 한 후 다시 배를 타고 소아시아 수리아 건너가서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을 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수리아에서 바울을 죽일 계획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고 수리아로 갈 수 없자, 그 동안 순행했던 지역의 지도자들과 더불어 드로아에서 만나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행 20: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행 2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그 때 유두고라는 청년이 다락에 걸터앉아 졸면서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바닥에 떨어져 죽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나, 바울이 죽은 청년 유두고의 몸 위에 엎드려 안고 기도하였더니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행 20: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행 20:12)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이는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전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열심이었습니다.


3) 교회를 지키는 일

바울은 오순절이 오기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서두르는 중에 마음에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삼년 동안 눈물을 뿌리며 세운 에베소 교회를 다시 한 번 둘러보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가지 못하는 대신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오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떠나간 후에 에베소 교회에 몰아닥치게 될 시험을 대비하여 교회를 지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행 20: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행 20: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여기서 흉악한 이리란 선한 목자를 가장하고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영혼을 노략할 이단 세력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그 대비책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그것은 지난 삼년 동안 눈물을 흘리며 가르친 말씀과 본을 보인대로 약한 사람들을 돕는 교회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행 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그 같은 당부를 한 후 무릎을 꿇고 합심하여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작별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입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만남과 이별입니까? 쉽게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드라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젊은이나 늙은이를 차별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꿈과 비전을 품고 살아가게 하는 행복한 종교입니다. 비록 실직을 했어도, 나이가 많아도, 가난할지라도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꿈과 비전을 약속하셨습니다.

(행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환상과 꿈과 비전이 바로 하나님의 비전이요, 예수님의 비전이요, 사도들의 비전이요, 사도 바울이 꿈꾸었던 세계 선교의 비전입니다.

물론 그 꿈은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고난이 따르는 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기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혹독한 고난이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자기가 꿈꾸는 비전인 로마로 가는 방법이요 지름길이라면 어떤 고난도 사양치 않겠다는 다부진 각오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행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가야할 로마는 어디입니까? 오늘 우리가 꾸어야 할 미래의 비전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붙잡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고 싶어 하는 신앙의 위인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비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왜 불러 주셨으며, 자신이 생명을 걸고 남은 생애를 송두리째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은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에 우리와 달리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도 바울은 어느 특정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가 땅 끝을 향해 사도 바울처럼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살아가야 하겠다는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비전도 세계 선교라는 비전임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고난이 따를지라도 나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겠다는 다짐과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팽겨 치고 선교사로 나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먼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 힘쓰며, 땅 끝까지 선교하는 일에 기도와 후원과 헌신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정말 때가 되면 나의 전 삶을 불살라 바치겠노라는 각오와 다짐을 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에 옮기게 되는 날 바로 여러분은 이 시대의 바울이 되는 것입니다(장세균 장로님).

물론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성령 충만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매일 매일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바로 비전의 사람 사도 바울을 본받는 삶인 것입니다.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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