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역 26년을 마감하면서 여러 생각들이 일어난다. 그 중에 우리 교회가 갖고 있는 세계 기독교에서의 리더십을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바람직한 선교사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잘 아는 친구를 평소에 존경하고 있어 그를 두고 그림을 그려 보고자 한다. 특히 그의 회고록은 좋은 자료가 된다.
필 파샬은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이다. 특히 이슬람 선교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십자가와 초승달’이 교과서나 다름이 없다. 그는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특히 아버지가 차라리 없었더라면 바라지나 않고, 또 아픔도 덜 느끼며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여튼 그는 다 커서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여 사역의 길을 준비했다.
신학공부를 마치고 방글라데시 선교사로 갔을 때 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역을 해나가야만 했다. 16년 동안 수많은 실수와 실망, 실패의 연속이었다. 다카의 빈민촌에서 살았으니 사람과 환경에서 오는 어려움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10여 년 동안 단 한사람의 개종자도 얻지 못했다니 그의 참담한 심정을 어찌 헤아려 알 수 있을까? 우리처럼 깨달음이 늦은 사람이던가. 10여 년을 허비하고야 중요한 깨달음이 있어 그는 무슬림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이제 그의 무슬림 접근방식은 무슬림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라면 누구나 적용하는 획기적인 방법이 되었다. 물론 교회들이 생겨나고 일꾼들도 늘어났다. 그 동안에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에서 독립하는 처참한 내전을 견뎌내기도 했다. 이 동안 그는 풀러 등의 학교에서 수학을 거듭하여 종래에는 경험과 이론을 골고루 갖춘 이슬람 선교전략가로 자리를 확고히 했다.
필리핀으로 옮겨와 20여년을 보냈다. 마닐라 도심 무슬림 지역 한 가운데 작은 독서방을 열고 오가는 무슬림들이 어느 때라도 들려 복음에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일을 20년 동안 끊임없이 계속했다. 동시에 남쪽 민다나오 섬의 이슬람 밀집지역을 중점적으로 공략하여 전도팀을 양성했다. 특히 이슬람 선교에 몸담고 있는 일선 사역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에게서 배우고 영적인 무장을 하는 대회도 주선하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또 필리핀의 한 신학대학원과 함께 이슬람 선교에 헌신한 아시아 선교사를 훈련하는 수준 높은 프로그램도 시작하여 지금 10여 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의 이론과 실제가 크게 인정을 받아 12권의 책이 나왔고, 풀러, 예일, 콜롬비아 등에서 강의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한 한국 선교사가 사역 20년을 맞아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에 찾아와 큰 축복을 빌었다. 한편으로는 36년의 사역이 아무런 장식 없이 끝나는 것을 덤덤하게 마치는 모습이 무척 대조적이었다.
그를 이상적인 선교 지도자의 모습에 가장 가깝게 그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가난을 딛고 세계 이슬람 선교전문 학자로 성공한 때문일까? 어디에서나 그림자처럼 그의 아내와 동역, 동행하는 다정한 모습에서일까? 아니면 두 내외가 스스럼없이 시골 버스에 몸을 맡기고 7시간의 여행을 즐기는 여유 때문인가? 기독교 서점에 빛나게 진열되어있는 12권의 책 때인가? 아니면 예일이나 풀러에서 달변을 토하는 그의 학문일까? 물론 이런 것들도 모두 그의 중요한 성취의 일부이다.
알고 보면 그는 모든 사람들이 호감을 가질 만큼 이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아닌 것 같다. 상당히 깐깐하고, 특히 질문을 던질 때는 칼 같은 번득함이 상대를 오싹하게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참으로 부러운 성공자이다. 선교사로 말이다. 어떤 건가?
첫째 그는 36년의 사역을 꾸준한 헌신으로 잘 마쳤다. 그의 영적인 무장,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그의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두 번째로 그는 자기 선교분야의 전문가로 발전을 계속해왔다. 먼저 사역의 경험을 통해 분명한 자기 길을 찾은 다음 이를 학문으로 표출, 발전해 내는 정진을 계속했다. 셋째로 그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모든 선교사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연구하여 저작을 남겼다. 네 번째, 그는 다음 세대를 훈련하는데 자신의 정성을 쏟았다. 이는 강단에서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꾸어 말하자면 무슬림 선교라는 분야에서 일선 전도사에서 대학원 교수에 이르는 다양한 다음 세대 일꾼을 양성했다. 다섯째,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그는 매우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였고, 이를 다시 선교의 진전에 활용하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훈련 프로그램과 컨퍼런스 등이 이런 것들이다. 여섯째, 이렇게 세계 일류 선교사 학자였지만 그는 여전히 단순하고도 검소한 삶을 자연스럽게 즐기며 살아왔다. 마지막으로 가장 부러운 것은 그의 지도력이 세계 무슬림 선교계를 움직이고 방향을 정할만큼 크고도 대단한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가 능숙한 언변으로 어떤 높은 자리를 차지한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영향력은 위치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의 자신, 그 자체가 지도력이었다.
우리 선교사 중 1 퍼센트는 바로 이런 큰 손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당장 150명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자신의 선교사역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을 받고, 학문성을 갖춰, 세계의 선교계가 이런 한국 선교사의 저작과 연구로 준비를 하여야 한다. 물론 여러 나라가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리더와 전문가이다. 이런 지도자 150명이 지금 어깨를 꿈틀거리고 있는가? 그들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가? 신학대학원들과 선교전문단체들이 그들의 이름을 주시하고 있는가? 한국 선교사 150명 말이다. 만일 보이지 않는다면 어디에서부터 이를 시작해야 하는가? 누가 나서서 할 일인가? 한국 선교는 다른 나라에서 지도자가 나타나 끌어주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그 정도인가? 파샬이 은퇴하여 이제는 마음껏 저술과 훈련에 전념하겠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그가 명실 공히 세계선교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큰 손’이라는 걸 부러워하는 것이다.
(선교타임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