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성경공부 35인
1. 처음 사람 아담
본문 : 창2 : 7
1. 아담의 뜻 - 사람(1:26 - 아담), 인류를 의미한다. 그리고 한 남자를 뜻하기도 한다.
2. 창조된 아담
1) 흙으로 창조됨 - 인간은 흙으로 창조되었다. 다른 동물도 흙으로 지어졌다(2:19). 이것은 인간이 물질적인 면에서 보자면 다른 동물과 공통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덧없음과 연약함을 의미하며 결국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말씀하는 것이다.
2)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의 입김으로 <산 자>가 되었다. 인간에게 특별히 복을 주셨는 데 생육, 번성, 충만, 땅의 정복, 생물 다스림, 식물 섭취(1:29-30, 안식의 복(2:3)을 주셨다.
3. 그 중에서도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1: 26).
1) 이 말의 뜻은 인간은 만물 중에서 가장 존귀한 자라는 것이다. 시편 8:5-8 에 보면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어진 인간은 주님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을 다스리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다.
2) 또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는 뜻이다. 마16:26에는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아무 쓸데가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 하셨다.
3)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이 창조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기를 받음으로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참 모습 그대로 인간 속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기 때문에 흙으로 만들어졌으나 귀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4. 타락한 인간
1) 하나님은 아담에게 부족함이 없이 복을 주시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2:17)고 하시면서 한 가지를 금하여 순종의 법을 약속하셨다.
2) 아담의 본분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신 동산에서 식물을 먹고 자유롭게 만물을 통치하면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아내로 더불어 사랑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것이었다.
3) 그러면 왜 '금단의 열매'를 주셨는가? 그리고 인간이 이를 범했다고 해서 왜 인간을 벌하셨는가? 처음부터 그런 것을 만들지 않고 인간으로 하여금 범하지도 못하게 만들었어야 하지 않는가?
4) 그러나 우리는 이 금단의 열매가 인간에게만 주어졌다는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자유로운 인격'으로 만들어졌으며, 인간은 이 자유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되어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그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사실은 인간이 자유로우면서도 책임있는 주체임을 가리키고 있다.
5) 인간은 무한 절대자가 아니라 유한 상대자이다. '금단의 열매'는 곧 인간으로 하여금 이것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며 여기에 손을 댄 것은 무한 절대자로 되고 싶은 욕망에 의해서 저질러진 죄의 결과이다(3:5).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지 못하고 에덴에서 쫓겨났다. 인류는 잃어버린 에덴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나 부패와 타락은 날로 더하여 갈 뿐이다.
2. 처음 여자 하와
본문 : 창2 : 18-23
1. 하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
창세기 1장 안에 '좋았다'(선하다)는 말이 6번 나온다. 그러나 2장으로 넘어가면 '좋지않다'는 말이 한번 나온다.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으나 아담(인간)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않다'(선하지 않다)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완전한 인간, 살아있는 인간(한쌍)을 창조하시기 위해서 다시 일을 하신 것이다.
2. 여자는 누구인가?
1)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선하지 못하여 아담 맞은 편에 그를 돕는 자(배필)를 만들기 위해서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 또 하나의 사람을 만들어 그 앞에 세우셨다. 그때 아담이 한 말은 다음과 같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2)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로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 지혜서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여자가 남자 위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머리뼈에서 만들지 않으셨다. 짓밟히지 않도록 발뼈에서 만들지도 않으셨다. 남자와 동등하게 하기 위해 옆구리 부분에서, 그의 보호를 받기 위해 팔 밑에서, 그리고 그의 사랑을 받기 위해 심장 가까운 곳에서 취한 뼈로 만드셨다."
3.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1) 여자인 하와의 뜻은 "생명"이다(창3:20). 아담은 인간, 그러므로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생명의 인간" "살아있는 인간"이 비로소 된다는 뜻이다. 여자가 없으면 아담 그대로 있어야 하며 남자가 될 수 없다. 여자가 있기 때문에 남자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남자는 여자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며 여자는 남자를 도와주므로서 비로소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후 최초로 하신 일은 신랑 아담과 신부 하와의 결혼식을 주례하신 일이다.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부부의 신비요, 일부일처제도의 원칙이다. 하나에서 둘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둘을 다시 하나로 만들 때 결혼의 비밀이 있으며 생육하고 번성이 가능해진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고, 그 자녀가 성장하면 배필을 만나 새 가정을 이룩하게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가정의 원리이다. 이와 같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사람을 위해 가정제도를 또 창조하신 것이다.
4. 유혹받은 하와
1) 인류의 시조가 뱀의 유혹을 받아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되는 이야기는 성경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슬픈 내용이다. 이 사건은 둘이 함께 있어야 될 아담과 하와가 떨어져 있으므로 그 사이를 사탄이 가로막고 유혹했다. 사탄은 여자에게 동정하는 것 같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회의를 일으키게 하고 반항하도록 유혹했다.
2) 뱀과 이야기를 시작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신을 일으키게 하는 뱀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삭제하고, 흐리게 하고, 첨가하고 변경하였다(3:1-4). 범죄한 여자는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다. 신앙은 감정을 불러 뜨겁게 하는 가슴과, 말씀으로 흔들림이 없게 하는 머리로 해야 한다.
3. 가인과 아벨
본문 : 창4 : 1-16
1. 여전히 사랑받는 사람
1) 에덴 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죄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두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있었다. <가인>이란 '얻다'라는 뜻이며, <아벨>이란 '입김'이란 뜻이다.
2) 이 형제는 성장해서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다.
2. 제사드리는 가인과 아벨
1)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여호와께 드렸는데 하나님이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고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다.
2) 그 이유는 무엇인가? 히브리서 11:4에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나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말씀 하셨다. 이로 보아 아벨은 신앙으로 더욱 아름다운 제사를 드린 것이니 아벨의 제사는 신앙의 의식인 동시에 참 종교요, 가인의 제사는 불신의 형식인 동시에 거짓 종교이다. 수많은 교인이 다함께 하나님께 예배하지만 신앙이 있어야 참 예배요, 신앙이 없으면 허식에 불과하여 하나님이 이를 받지 않으신다.
3) 가인은 자기가 사랑받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래서 자기 기준에 의해 자기가 주격이 되어 자기가 만족하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겼다. 하나님은 수단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
3. 인류 최초의 살인
1) 가인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가인은 자신의 제물이 열납되지 못한 이유를 살펴 회개하여야 하지만 오히려 화를 내었다. 분노에 사로잡힌 가인을 향하여 하나님은 부드럽게 부르시면서 절제하지 않으면 재화가 올 것을 경고하셨지만 불순종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인간의 죄는 단순히 인간의 상태가 아니라 엄연한 행동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아우를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은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9절). 이것은 3장에서 죄를 짓고 하나님께로부터 얼굴을 돌리고 동산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긴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3:9)고 물으신 것과 비교가 된다. 아담에게 던지신 물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있는 위치를 물으신 것이고, 가인에게 던지신 물음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있는 위치를 물으신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
4. 아벨의 피
아벨의 피는 의로운 자의 피를 대표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10-12에서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23:29-36에서 예수님은 의인의 고난을 말씀하시면서 아벨의 피흘림이 의인으로서 첫 번째 흘린 피임을 상기시키는 것을 볼 수있다. 이러한 의인의 피는 시대마다 고난 당하는 자들의 것이다. 그러나 10절 말씀처럼 그 피는 그냥 흘려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상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밑거름이 된다.
4.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본문 : 창5 : 21-24
1. 에녹의 시대
1)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던 시대는 암흑의 시대였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는 말씀에 깊은 뜻이 있다. 므두셀라는 사망이 장차 온다는 뜻이다. 이것을 보면 므두셀라 시대부터 사망이 다가오는 시대요, 홍수 심판이 가까운 죄악이 관영한 시대임을 알 수 있다.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노아 홍수가 시작되었으니 그 시대가 얼마나 악한 시대였던가를 알 수 있다.
2) 홍수 심판을 앞둔 시대에 사는 에녹은 밖에 나가면 동행할 사람이 없고 들어오면 마음을 함께 할 사람이 없어 외롭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일들이 나쁜 것들 뿐이었다. 그래서 외로운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두려운 세상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절대 안전한 생활이었다.
2.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는가?
1)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히브리서 11:5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은 같이 살았다는 뜻이다. 서로 믿는 사이가 아니면 함께 살 수 없다. 에녹이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도 에녹을 믿었기에 함께 살 수 있었다.
2) 하나님과 뜻을 같이 하므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에녹은 하나님 뜻에 절대 순종하였고 그 뜻을 따라갔다. 하나님께서 어려운 길이나 가시밭길로 인도하여도 내 의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므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다.
3) 그 생활이 성결하므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다. 에녹은 시대가 어려운 때라고 해서 숨어 있을 비겁자가 아니었으며, 박해가 두렵다고 가만히 있을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 예언자였다(유1:14-15). 홍수가 임박한 시대에 에녹은 홀로 바른 신앙에 굳게 서서 깨끗하게 행동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다.
3.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간 에녹
1) 인간의 죽음을 성경은 죽었다 혹은 잠잔다고 했는데 에녹을 하나님이 데려가신 이유가 무엇인가? 이사야는 "올바른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실상은 재앙을 벗어나 평화를 누리러 가는 것이다"(사57:1-2 )라고 하였다. 에녹은 홍수 심판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이 데려 가셨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고통 아닌 것이 없다. 특히 홍수 심판 전의 시대는 죄악이 관영하였으니 악 때문에 고통이 많았다. 그 고통의 멍에를 벗겨 주시기 위하여 데려 가셨다. 에녹은 지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지면의 홍수 심판을 보지 않고 천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니 이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이 지구상에 없다.
2) 에녹은 마지막 심판이 임하기 전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려 올라갈 성도들의 예표이다. 오늘도 죄악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사는 신자들을 하나님께서 에녹처럼 마지막 심판 때에 데려 가실 것이다.
5. 노아와 홍수 심판
본문 : 창6 : 13-22
1. 올바르고 흠없는 사람 노아
1) 노아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5: 29)는 말씀처럼 노아는 인간의 고생을 '위로하는 자'로 성장하였다.
2) 노아가 살던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차고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 하는 것을 보시고 사람만드신 것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실만큼(6:5-6) 악하였다.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인간은 죄를 저지르고 악을 행하여 '세상은 이제 막판에 이르렀고 땅 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다'
(6:13). 이제는 인간의 죄와 악을 심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슬퍼하시고 마음아파 하셨다.
3) '그 당시에 노아만큼 올바르고 흠없는 사람은 없었다'(9절). 여기서 흠없는 사람이란 완전 무결한 사람이라는 뜻보다는 '그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다'(9절)는 기록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아는
(1)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8절)
(2) 의인(9절) (3) 완전한 사람(9절)
(4)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9절)
(5) 당대의 심판을 확신하고 방주를 만들어 예비한 사람(히11:7).
(6) 의를 전파한 사람(벧후2:5)이었다.
2. 하나님의 심판
1) 노아 시대는 혼란과 음란의 시대요, 포악과 죄악이 만연한 시대였다. 사람들을 지면에 그대로 둘 수 없는 말세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인류를 멸망시킴에 있지 않고 구원함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120년이란 회개의 시간을 주시고 의인 노아를 세워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전파하게 하셨다. 그러나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마24:38-39).
2)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예비하도록 하셨다. (1) 노아의 방주는 구원선으로 곧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형이다.
(2) 방주가 잣나무로 만든 것처럼 교회는 영생하신 예수의 몸과 그 십자가로 건설하는 것이다.
(3) 방주가 위를 향해 창을 내어 빛과 공기를 통하도록 한 것과 같이 교회는 하늘을 향해 성령님의 기운을 호흡하며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이는 영교의 길을 가지고 있다.
(4) 방주의 안과 밖을 역청으로 칠하여 물의 침투를 방지한 것처럼 교회도 세상 풍조의 침입을 금하지 않으면 안된다.
(5) 방주 안에 식물과 제물을 저장하여 둔 것처럼 교회에는 영생의 양식이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제물이요, 우리는 그의 제단에 들여놓은 제물들이다.
(6) 방주의 문을 하나님이 친히 닫으셨으니 이와 같이 교회의 문도 하나님이 닫고 여신다.
(7) 방주는 키도 없고 돛이나 노도 없는 배였다. 그저 떠 있기만 하고 자력으로는 항행할 수 없는 배였기에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맡겨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교회도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인도하심에 절대 순종하고 살아야만 한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는 부강을 자랑하던 인간의 문명은 자취를 감추고, 새 세계는 노아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부터 시작 되었다.
6.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본문 : 창12 : 1-4
1. 부름받은 아브라함
1) 아브라함은 본래 '아브람(위대한 아버지)'이라는 이름이었는데 뒤에 가서 '아브라함(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신구약 성경을 통해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조상이다(롬4:11
). 우상숭배로 가득하던 그 시대에 아브라함은 홀로 유일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지켜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렸던 사람이다(약2:23).
2)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히11:8). 신앙의 생애는 언제나 부르심에서 시작된다. 부름받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이 있어서 신앙의 조상이 되었다.
3) 신앙이 있다 하지만 순종이 없는 사람은 뿌리는 있으나 가지가 마르는 나무와 같이 또는 열매없는 무화과와 같이 말라 죽고 만다. 야고보는 이것을 가리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다(약2:17,26). 부르심을 받는 사람은 반드시 순종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순종의 비결은 믿음이다. 믿음없이 순종은 불가능하다.
2. 믿음의 아버지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셔서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실은 그의 신앙의 절정을 보인 사건이다. 본토를 버리라, 친척과 아비 집을 버리라, 하갈이 낳은 아들을 축출하라는 등 모든 어려운 명령을 다 실행하여 아브라함의 신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마지막으로 가장 사랑하는 독자까지 버렸기에 살아있는 신앙으로서 최상의 행위를 보인 것이다.
2) 이러한 아브라함에 대하여 하나님은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창22: 12)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친 위대한 행위는 믿음에 근거한 행위였고, 또 그 행위는 믿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실로 그의 신앙의 절정을 보인 사건이 되었다. 여기서 그는 선민의 조상이 되었고, 위대한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고(마1:1), 모든 성도들의 믿음의 본이 되었다(히11:8-9).
3. 복을 받은 아브라함
1) 신앙의 사람은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려야 한다. 그러나 버리면 버릴수록 하나님은 더욱 복을 주신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버리고 신앙의 길로 나섰을 때 하나님은 복을 약속하셨다(창12:2-3).
2)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단계가 있다.
(1) 먼저 믿는 자들이 복을 받아야 한다. "네게 복을 주겠다"
(2) 다음에는 복을 나누어 줄 만큼 믿음이 있어야 한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복을 받야야 한다.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
3)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신다(약2:5). 믿음은 무진장한 보화의 창고를 여는 열쇠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복을 받는 근원이며 비결이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그 길은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길이기에 우리는 이 길을 또한 믿음으로 결단하고 나아갈 수 있다.
7. 현모양처 사라
본문 : 창17 : 15-19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의 노력과 열정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던 사라의 뒷바라지 때문이었다. 다 같은 환경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조카 롯은 악의 상징이 된 것은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현모양처의 사라가 있었으나 롯의 가정에는 물욕에 눈이 어두운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만을 강조한 히브리서에는 가장 힘있는 신앙인으로 사라를 능가하는 신앙인은 없다고 칭찬한다(히11:11).
1. 여자로서의 사라.
1) 성경은 사라를 처음부터 아브라함의 아내로 기록하고 있으며 아브라함의 현숙한 처로 살다가 아브라함보다 먼저 죽어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다.
2) 사라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평범한 부인이었으나 미모가 뛰어나게 아름다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두 번에 걸쳐 아내 때문에 아브라함이 위기에 처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창12:13-20, 20:1-3).
3) 베드로는 아내가 남편에 대한 복종을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단장하는 본보기로 사라를 언급하였다(벧전3:6). 그녀는 외모의 아름다움만 아니라 자기 남편을 주님이라 부르면서 복종한 내적 아름 다움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4) 사라는 책임감이 강한 여자였다. 가나안에 들어온지 십년이 지나도 자식이 없자 책임을 감당키 위하여 여자로서 참기 힘든 일을 해냈는데 그것은 하갈을 첩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어 자식을 잉태케 한 것이었다(창16:1-3).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참지 못하고 저지른 죄이기도 하였다.
5) 사라는 보통 여자들처럼 질투심도 있었다. 하갈이 잉태한 것을 알고 업신여기자 본처로서 자기 권리를 주장했으며 하나님도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편을 들었다.
2. 믿음의 어머니 사라.
1) 사라는 무엇보다 신앙으로 여자의 지위를 높였으며 신앙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2) 사라의 신앙은 자연 속에서 얻은 것도 아니고, 어떤 초자연적인 데서 얻은 것도 아니다. 그녀의 신앙의 뿌리는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서 얻어진 것이며 아내로서 본분을 다하면서 평범한 지위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얻어진 값진 신앙이다.
(1) 고향 땅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향할 때 불평 한마디 없이 따라 나섰다.
(2) 가나안 땅에서 방황하고 옆에 친구 하나 없이 고독하고 쓸쓸해도 불평 없이 아브라함을 따라 다녔다.
(3) 바로의 후궁이 될 뻔한 일이 있어도 의연히 남편에게만 충실했다.
(4) 나그네 접대에도 불평이 없었다.
3) 이러한 사라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은혜를 주셨다.
(1) 끝까지 변치 않는 신앙을 주셨다.
(2) 인간의 힘으로나 상식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태를 열어 주셔서 잉태하도록 하셨다. 장막 안에서 음식 준비를 하던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창18:10)는 약속을 듣고 웃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롬9:7)하신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8. 온유한 사람 이삭
본문 : 창26 : 23-33
1. 이삭의 생활
25절의 말씀을 보면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1)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이삭의 종교생활을 가리킨다. 단을 쌓은 곳은 브엘세바로 하나님의 계시와 허락이 있어서 이삭이 정착한 곳이다. 이삭이 애굽 길도 중지하고 그랄에서 떠나 브엘세바에서 신앙생활이 깊어졌으니 신자의 거주지나 사업지도 하나님의 지시하는 바가 있어야 복을 받게 된다.
2) 장막을 쳤다는 것은 가정생활을 가리킨다. 이삭의 가정 생활은 순결하고 아름다웠다. 구약의 인물 중에는 여자 문제로 깨끗지 못한 사람들이 여럿이 있었는데 이삭은 일부일처의 가도를 지켜 그의 가정생활은 누구보도 순결하였다.
3) 우물을 팠다는 것은 직업생활을 가리킨다. 우물은 목양에 없어서는 안될 큰 소유이다. 물이 적은 유대지방에서는 우물을 파기도 어렵기에 일생에 우물을 다섯이나 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자기 소유의 우물을 세 차례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한 무저항주의자요 평화애호가였다.
2. 단점을 지닌 이삭
1) 식량 문제로 인한 실수를 하였다. 흉년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정하여 준 땅을 버리고 자기 뜻대로 애굽으로 가려고 했다. 하나님은 이삭이 애굽으로 가려는 것을 막으시고 그랄에 거하게 하셨는데 거기서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랄에서의 생활은 풍부하였으나 그것이 도리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미움을 사서 마침내 부엘세바에 가게 되었다.
하나님은 친히 사랑하시는 사람을 가장 적합한 곳에 서게 하시기 위하여 때로는 고난을 주시기도 한다.
2) 에서와 야곱 사이를 불화하게 했고 편애를 하였다. 진정한 신앙의 상족자를 분간하지 못하므로 축복의 대가로 별미를 요청하게 되었다.
3. 장점이 많은 이삭
1) 순종의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모리아의 제단에 희생의 제물이 되는 일까지도 순종하였다. 결혼도 이스마엘같이 자유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이삭은 순종의 사람이요, 효도의 자식이었다.
2) 신앙의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신앙을 계승하여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신앙생활을 착실하게 하였고, 그 신앙을 아들 야곱에게 이어 준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28절에 보면 이삭을 쫓아 다니면서 괴롭혔던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다"고 할만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친히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3) 온유한 사람이었다. 불레셋 사람들에게서 무리한 손해를 당하면서도 한 번도 대항하여 싸우지 않고 평화의 생활을 한 것은 그가 온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마5:5)한 말씀대로 온유한 이삭은 넓은 땅을 소유하였다.
4) 근면의 사람이었다. 이삭은 일생동안 우물을 다섯이나 파면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목양생활을 착실히 지켜 복을 받았다. 이삭은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남다른 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9. 이스라엘이 된 야곱
본문 : 창32 : 21-30
1. 에서와 야곱
1)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이 잉태케 하셨는데 쌍둥이였다. 이들 쌍둥이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움을 했는데 아이를 낳자 형은 살결이 붉으며 털투성이였기 때문에 "에서"라고 이름짓고, 동생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와서 "야곱"이라 이름지었다. 이 형제가 장성하여 에서는 들과 산을 달리는 사냥군이 되었고 아버지 이삭은 사슴 고기를 좋아하여 에서를 사랑했고, 야곱은 천막 안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곤 하는 편이어서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다.
2) 어느날 에서는 허기진 채 들에서 돌아왔는 데 그때 야곱은 붉은 죽을 끓이고 있었다. 에서는 야곱에게 죽을 요구했고, 야곱은 형에게 장자의 상속권을 요구했다. 장자는 재산권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는 특권이 있었다. 에서는 이러한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야곱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것이 이들의 생애를 갈라놓는 분기점이 되고 말았다.
3) 성경은 야곱의 잘못된 성격보다 에서의 경솔함과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신앙을 나무라고 있다.(히12:16). 이 사건은 에서만이 아니라 야곱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가 돌로 베개를 삼아야 하는 고통과, 하나님의 약속을 따른 믿음의 길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2. 돌베개와 벧엘
1) 야곱이 에서의 미움을 사 외삼촌이 사는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하게 되었다. 어두운 밤 낯선 타향에서 땅 위에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잔다는 것은 고독하고 쓸쓸한 일이었다. 야곱이 스스로 잘못을 저지른 결과였지만 인간으로서의 절망감에 빠졌을 것이다.
2) 그러나 이곳은 또한 야곱에게 있어서 "벧엘"이 되기도 했다. 인간으로서 완전히 고독과 절망에 빠져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다가온 것이다. 어떤 곳에나 어떤 환경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되었다(창28:13-15).
3.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됨
1) 야곱의 좋지 않은 성격이 하나님께 붙잡힌 바 되어 쓰임받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단련을 쌓지 않으면 완성될 수가 없었다. 야곱은 하란에서 20년간 봉사생활을 하였는데 자기의 교활한 모습과 비슷한 외삼촌 라반을 상대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벧엘에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란에서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2) 야곱이 하란의 생활을 마치고 고향을 향해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큰 근심이 여전히 남게 되었는 데 그것은 다름아닌 형 에서에 관한 문제였다. 야곱은 이를 인간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32:20).
3) 얍복강가에서 천사와의 씨름은 그의 생애를 다시금 바꾸어 놓는 사건이 되었다.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어진 것이다. 교활하고 속이고 빼앗고 하던 야곱이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복종의 삶으로, 신앙의 승리자로 변했다.
4) 이러한 체험은 야곱으로 하여금 에서와 화해를 한 것만이 아니라 벧엘로 돌아와 제단을 쌓고 감격에 넘치는 회개의 예배를 드리고 신앙의 사람으로 살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10. 꿈꾸는 사람, 요셉
본문 : 창39 : 1-6
1. 꿈꾸는 소년
1)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요셉을 가장 사랑하였다. 그것은 요셉이 라헬의 아들이었고, '늙어서 얻은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2)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많이 받았다.
(1) 야곱의 특별한 사랑 때문이었다.
(2) 요셉이 두 번에 걸쳐서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들에서 곡식 단을 묶는데 형들의 단이 요셉의 단에게 절을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하는 꿈이었다. 이런 꿈 얘기를 들은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죽이기로 하였다.
3) 어느날 요셉을 없애버릴 기회가 왔는데 큰 아들 르우벤의 반대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에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가게 되었다.
2.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1) 애굽에서 요셉은 왕의 신하인 경호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팔렸다. 여기서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살아왔으나 풍속과 관습이 다르고 아는 사람이 없는 이방 땅에서 종의 신분으로 살아야만 했다.
2) 요셉은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39:2,3,21,23). 요셉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을 가졌다.
3) 그 결과 요셉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잘 되었다. 주인은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주인은 점점 더 중요한 일을 맡겼고,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주인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다.
4) 이러한 요셉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쳐왔다. 그것은 주인의 아내가 유혹을 한 것이었다. 요셉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이를 물리쳤다. 그래서 찾아온 결과가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3.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1) 하나님은 믿음의 요셉을 그대로 두시지 않고 오히려 감옥에서 잘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애굽 왕의 신하를 만나게 하시고 이를 통해 왕 앞에까지 나갈 수 있게 되었다.
2)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크신 은혜와 지혜를 주셔서 꿈을 잘 풀이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3) 당시 애굽을 비롯한 인근 지역은 하나님께서 애굽 왕을 통해 꿈을 꾸게 하시고 요셉을 통해 이를 가르쳐 주신대로 7년 풍년과 7년 흉년이 시작되었다.
4. 용서하는 요셉
1) 7년간의 대기근이 닥쳐왔다. 애굽에서는 요셉 의 정책으로 기근에 대비하여 식량이 충분했다. 그러나 이웃 나라들은 기근을 견디지 못하여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러 오는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그 가운데는 가나안에 사는 요셉의 형들이 있었다.
2)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지난날 꾼 꿈대로 요셉에게 절을 했다.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하나님의 크신 뜻을 가르쳐 주고(45:5-8), 용서를 해 준다. 요셉은 모든 역사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시며(50:19-21),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때마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쓰임 받을 뿐임을 믿음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11.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 모세
본문 : 출3 : 1-12
모세는 구약성서에 기록된 인물 가운데 최대의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며, 예언자였고, 이스라엘의 건국자며, 하나님과 민족을 섬기는 일꾼이었다. 120년의 모세의 일생을 구분하면 애굽의 40년은 배우는 시기였고, 미디안의 40년은 훈련의 시기였으며, 광야의 40년은 하나님과 민족을 위하여 충성한 시기였다.
1. 애굽에서 배우는 시기
1) 모세가 세상에 태어날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는 가장 힘든 시대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애굽 나라의 무서운 박해가 있었는데 새로 출생하는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도록 한 것이었다.
2) 모세는 부모의 안타까움 속에서 3개월 동안 키워지다가 할 수 없이 나일강 가에 버림을 받았다. 때마침 애굽왕의 딸이 모세를 발견하여 양자로 삼고 모세의 친 어머니를 유모로 삼게 되었다.
3) 모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로 다시 어머니 품으로 돌아와 신앙심 두터운 양친에 의해 장래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필요한 신앙교육을 받았다.
4) 그뿐 아니라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 궁중에서 천문. 지리. 수학. 군사. 율법. 정치 등. 당시의 최고 학문을 배우게 되었다.
2. 미디안에서의 훈련의 시기
1) 애굽 궁중에서 살던 모세에게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 모세의 마음에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는 동포들을 구원해 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기의 학문과 완력을 동원했고 결국 이러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모세는 미디안으로 도망을 하게 되었다.
2) 미디안에서 이드로를 만나고 사위가 되어 그의 양떼를 치는 사람이 된 모세는 이때부터 훈련을 받게 된다.
3) 4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기운차던 청춘은 간데없고, 힘도 사라지고, 배운 학문도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린 모세를 하나님은 이제야 쓰시겠다고 하신다.
4) 하나님은 가시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만나시고 애굽으로 보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맡기신 것이다.
3. 광야에서 충성한 시기
1)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나갔다. 이제는 자기의 뜻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시고 모세는 여기에 순종하며 나가는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
2)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기 위하여 열 가지 재앙을 배푸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므로 구원받은 백성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하여 가도록 하셨다.
4)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한 길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과 연단을 받으면서 가야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는 감사하고 기뻤지만 하나님의 품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불순종의 모습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5) 그럴때마다 모세는 연약한 백성들을 감싸면서 하루같이 충성을 다했다(출32:32).
6) 모세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온유한 사람이었고 충성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대면하여 살던 사람이었다(민12:3, 7, 8).
12. 짐승만도 못한 발람
본문 : 민22 : 21-35
1. 발람과 발락
1) 발람은 예언자였고 발락은 모압 왕이었다. 발락은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하기 위하여 초청을 한다.
2) 발람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며 뜻을 여쭙던 사람이었다. 발락이 보낸 사람이 왔을 때 발람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22:15-18).
3) 발락 앞에 갔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밖에 할말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당당하게 행했다(22:38).
2. 나귀에게 책망 받은 발람
1) 발락의 두 번째 초청을 받은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나귀를 타고 가다가 칼을 빼든 천사에게 저지를 당한다.
2) 나귀는 천사를 보았지만 발람은 영의 눈이 어두워 보지를 못하고 계속 앞으로만 가려고 했다. 사람이 영이 어두워지면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1장 3절에서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고 하였다.
3) 하나님은 나귀에게 천사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모르면서 잘못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는 발람을 향하여 꾸지람을 하게 하셨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28)
4) 그제서야 하나님은 발람의 눈을 밝히시고 천사가 길에 칼을 빼들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34)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깨우쳐 주시나 우리가 영이 어두워 깨닫지 못하면 계속 범죄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3. 이스라엘을 범죄케 한 발람
1) 발람은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35)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발락에게로 갔다. 세 번씩이나 장소를 옮겨 가면서 저주하도록 요구하지만 발람은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2) 발람은 외부로부터 저주할 수는 없었으나 내부로부터 부패시킬 수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발람은 발락에게 이스라엘 자손 앞에 올무를 놓게 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음란한 일을 하게 하였다.
3) 역대로 교회가 외부로부터 고난이 올때는 믿음으로 승리 하였으나 내부로부터 부패하게 될 때는 항상 넘어졌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외부로부터 오는 고난을 위하여 많은 기도가 필요하지만 내부로부터 영이 썩는 것은 가장 무서운 적이다.
4)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 수만명이 죽게 되었고 그때 발람도 그 칼날에 죽고 말았다. 발람이 타락하게 된 것은 그 마음이 깨끗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은 있었지만 명예와 재물을 탐하는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악한 자로 일생을 마쳤다.
5) 뿐만 아니라 이러한 발람의 잘못된 교훈은 두고 두고 비슷한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경고로 주어지는 말씀이 되었다(수24:9, 미6:5, 계2:14,)
13. 강하고 담대한 여호수아
본문 : 수1 : 1-11
아브라함은 신앙으로 가나안 복지를 허락받았고, 모세는 신앙으로 가나안 복지를 향해 출발하였으며, 여호수아는 신앙으로 가나안 복지를 얻었다.
1.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1) 여호수아는 처음부터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동안 훈련을 받고 지도자가 되었다. 모세는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40년간 지도자에게 필요한 교육을 했다. 모세의 업적은 여호수아가 후계자로 일을 잘 마쳐 주므로 완성되었다.
2) 여호수아가 모세로부터 훈련받은 후계자 수업
(1)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출17:8).
(2)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을 때에 여호수아를 데리고 올라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비의 경험을 하게 함(출24:13).
(3)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에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부르짖을 때 전쟁의 소리인지 노래소리인지를 분별하는 총명을 배움(출32:17-18).
(4) 엘닷과 메닷이 모세와 같이 예언할 때 여호수아는 이를 금하려고 하였으나 모세는 금하지 말라 하므로 용서와 관용의 마음을 배움(민11:28-29)
3) 이러한 교육과 훈련이 있은 후에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위임을 받았다(민27:15-23).
2. 하나님의 택함받은 여호수아
1)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받은 후계자 교육은 필요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여 세우심이 필요했다.
2)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1:5절).
3)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1)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5절).
(2)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6절).
(3) 하나님의 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7-8절).
(4)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기 때문이며, 함께 하셔서 뜻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하시기 때문이다(9절).
4) 강하고 담대한 지도자 여호수아의 발 아래서는 요단강도 끊어지고, 강하고 담대한 이스라엘의 나팔소리에는 여리고성도 무너졌으며, 강하고 담대한 여호수아의 군대는 가나안의 대적을 섬멸하였다.
3. 유언을 남긴 여호수아
1)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보았으니 그 사실을 명심하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셔서 고비고비마다 은총을 받았으니 이것을 잊으면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하였다(23:15)
2) 여호수아는 최선을 다했으나 마무리짓지 못한 일이 있다고 하였다. 그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23:11).
3)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라고 하였다. 우상을 섬기지 말고 여호와만 섬기라(24:14)고 하였으니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라는 말이다.
4) 이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심을 촉구하였다(15절).
위대한 민족이 되려면 지상목표를 물질적 번영이 아닌 정신적 자세와 순수한 인간성에 두어야 한다.
14. 주님의 조상이 된 기생 라합
본문 : 수2 : 1-21
가나안 땅 정복 사건 가운데서 여리고성의 함락은 큰 의미가 있다. 가나안의 관문이고 고대도시인 여리고성의 점령은 이스라엘의 사기를 높여 주는데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그 여세를 몰아 가나안을 모조리 점령하여 이스라엘의 승리를 가져왔다.
1. 라합과 정탐군
1) 모세가 죽은 후 가나안 정복을 위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탐지하게 하기 위하여 정탐군을 보냈다(1절).
2) 정탐군들은 무사히 여리고성에 잠입하였고 누구나 출입하기 쉬운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가는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본래 기생의 집은 죄를 유발시키는 장소였다. 라합은 두명의 생소한 사람들을 본 후에 예사 사람들이 아님을 알았다.
3) 라합은 기생이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탐군을 숨겨주고 도망을 보내면서 유명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1) 하나님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을 알고 있었다(9절). (2)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겪어 오면서 경험한 일에 대해서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10). (3) 그리고 이러한 일들 때문에 지금 여리고 사람들은 간담이 녹고 정신을 잃고 있다는 것이었다(11절). (4) 그 결과는 무엇인가? "너희가 믿는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라"(11절).
2. 기생 라합
1) 라합은 비록 육신으로는 기생이었기에 죄인이었으나 이름대로(히브리어로 '넓은 광장'), 도량이 넓은 여자였고, 현명한 판단력과 종교성이 뛰어난 아름다운 영성의 소유자였다.
2) 광야 40년간의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본 이스라엘은 그들의 불신앙으로 거의 광야에서 죽었는데 여리고성의 이방 민족인 기생 라합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간접적으로 들으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3) 이러한 라합의 바른 신앙이 자기는 물론 자기의 가족까지 구원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서 예수님의 조상을 기록한 족보에까지 그 이름이 기록되게 되었다(마1:5).
4) 이스라엘 민족은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애굽 탈출 후 광야 길에서 여러 부족이 합세를 하였고, 여리고성에서는 라합 가정이 선민 이스라엘 민족으로 합세한 것이다.
5) 여리고 편에서 볼 때 라합은 배신자요 반역자였다. 그러나 라합은 여리고성의 거짓되고 부패한 종교를 보고 종말이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라합은 두 정탐군의 사람 됨됨과 신념에 찬 용기를 보고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생명을 내걸고 승리를 하였다.
6) 이러한 용기있는 신앙결단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필요하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부패하고 멸망할 사건들 가운데 빠져 들지 않고 바른 판단과 용기있는 결단으로 하나님께 생명을 드리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7) 이처럼 기생 라합의 구원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인간의 혈통으로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으며(요1:13),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직접 경험하든, 라합처럼 들어서 알든 믿고 순종할 때 승리자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15.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갈렙
본문 : 수14 : 6-15
1. 정탐꾼의 한 사람
1)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에 정탐꾼을 파견하게 되었는데 12명의 정탐꾼 중에 갈렙은 유다지파의 대표로 선발되어 40일간 약속의 땅을 정찰하였다.
2) 정탐꾼들 중 열명은 보고하기를 땅은 비옥하고 살기가 좋으나 견고한 성읍과 크고 힘이 센 백성이 살고 있어서 점령하기가 곤란하다고 하였다(민13: 31-33).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동요하였고 하나님의 약속을 거절하였다.
3) 갈렙은 백성들을 격려하여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민13:8).
4) 백성들은 홍해에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어느새 잊어버리고 비겁한 정탐꾼의 말에 동요되어 의욕을 상실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믿음없는 행동만을 했다.
5) 그 결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확신에 차 있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백성들은 불신앙 때문에 광야에서 40년간을 방황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6)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백성들은 의심과 불신으로 모세에게 자주 불평을 하였으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고 살면서 광야의 연단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2. 갈렙과 여호수아
1) 모세가 아론의 협력으로 큰 일을 하였듯이 여호수아는 갈렙의 도움으로 지도자로서의 중임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애굽을 떠나온 사람 중에서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갈렙과 여호수아 뿐이었다.
2) 이 두 사람 중에 여호수아는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에 서서 진두 지휘를 하면서 가나안 땅을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갈렙은 특별하게 직책을 맡은 일이 없다. 가나안 땅을 점령해 나가는 동안에도 갈렙이 특별히 쓰임받은 사실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3)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갈렙은 여호수아가 앞장서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나가는데 있어서 한결같이 협조하고 앞으로 나서지도 않으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잘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3. 약속의 땅에서의 갈렙
1) 오늘 말씀에 보면 갈렙은 이미 나이가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갈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서서 가나안 정복을 이루어가는 일을 감당했다.
2) 갈렙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만 차지하면 그만이었으나 앞장서서 싸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은 끝까지 충성한 사람이었다.
3) 갈렙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였으므로 여호수아는 갈렙에게 복을 빌어 주고 헤브론을 유산으로 주었다(수14:13).
4) 12절의 말씀을 보면 갈렙은 처음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들어갔을 때와 매 한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변치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5) 이토록 변치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갈렙에게서 배워 우리들도 끝까지 승리하는 신앙, 변치 않는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하겠다.
16.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
본문 : 삿4 : 1-10
1. 여자 사사 드보라
1) 드보라는 사사였다. 사사는 단순한 재판관이 아니고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나라를 다스리던 사람을 말한다. 전쟁때는 사령관과 같았다. 이러한 사사가 이스라엘에 14명이 있었는데 드보라는 유일의 여자 사사였다.
2)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울때까지 450년 간이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일곱 번 배반하였고, 일곱 번 환난을 당하였으며, 일곱 번 다 구원을 받았다. 인간은 일곱 번 범죄하였으나 하나님은 일곱 번 용서하셨다.
3) 그 중에 한 번이 드보라가 살던 시대였다. 이때도 백성들은 바알 신을 우상으로 숭배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므로 가나안왕 야빈으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받았다.
4) 드보라는 이러한 때에 사사가 되어 백성들을 훈계하고 그들의 재난을 수습해 주는 일을 잘 감당하였다. 드보라는 신앙과 지혜와 용기와 애국심을 겸비한 여인이므로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존경을 받았다(7절).
2. 믿음의 여인
1) 드보라가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잘 다스리고 있던 어느 날에 하나님은 드보라에게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를 바락의 손에 붙이실 것임을 말씀하셨고 드보라는 이것을 바락에게 알려 주었다.
2) 당시의 야빈의 군사력은 최강이었다. 특히 900승의 철병거 부대는 보기에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특수부대와 맞설 수 있는 적수는 가나안 땅에는 아무도 없었다.
3) 이러한 야빈의 군대와 싸움을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안 바락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지 못했다. 이에 비하여 이스라엘에는 무기다운 무기가 별로 없었다(5:8절). 경험과 무기 면에서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야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4)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야빈의 군대를 "네 손에 붙이리라"(7절)고 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야빈의 군대와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야빈과의 전쟁이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날 것이었다. 그럼에도 바락은 믿음이 부족해서 드보라가 함께 가 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다(8절).
5) 이에 드보라는 함께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는 바락에게 가지 않고 다른 한 여인이 얻을 것임을 알려 주었다. 믿음없는 행동은 이렇한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여자로서의 드보라
1) 하나님은 한 부인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끄셨다. 하나님은 여성의 연약성을 이용하여 하나님으로서의 전능하심을 드러내셨다. 드보라가 사사가 되기 전에는 한 연약한 여인에 불과하였으나 하나님께 붙잡힌바가 되어 쓰임받을 때에는 지혜와 총명과 용기를 주셨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쓰셔서 세상의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다(고전1:27).
2) 하나님 앞에 붙잡혀서 사용되어지는 사람은 남녀노소, 인종, 학식, 경험이 아니라 믿음과 신실하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은 오늘도 찾으시고 사용하신다. 특히 여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많은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사건이다.
17. 기드온의 순종과 겸손
본문 : 삿7 : 1-8
1. 부름받은 기드온
1)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다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 때 미디안의 압제가 시작되었다. 미디안 족속의 약탈로 이스라엘은 극도로 황폐해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2) 하나님은 므낫세 지파 중에 가난한 농부였던 기드온을 세워 이스라엘의 제5대 사사를 삼으셨다.
3) 기드온은 하나님이 자신을 세우신 것에 대한 확실한 표징을 구했고 하나님은 반석에서 불이 나와 제물을 사르는 징조를 보여 주셨다(6:17-21). 기드온은 다시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지기 원했고 하나님은 이에 응하여 한번은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게 하셨고, 또 한번은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지 않게 하셨다.
4) 이토록 기드온은 믿음에서 여러가지가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미디안 군대를 능히 상대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고 기드온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였다.
2. 기드온과 3백명 군사
1) 미디안 사람들의 압제가 심하여 위험에 직면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의 부름을 듣고 달려 나왔는데 처음에는 3만 2천명이었다. 전쟁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을 보내고 난 후에 다시 조심성을 가진 사람들만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3백명이 남게 되었다.
2) 당시의 미디안 군대가 13만명(8:10) 정도인데 비하면 너무나 적은 수였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었는가? 7:2에 그 답이 있다.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승리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겸손한 생각과 소수라도 단합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가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4) 이들이 가지고 간 것은 무엇인가? 무기가 아니었다. 나팔과 횃불 그리고 횃불을 감추기 위한 항아리 뿐이었다. 우리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복음의 나팔을 불고 항아리같은 육체를 깨뜨리고 성령의 불이 나타나야만 한다.
3. 승리후의 기드온
1) 전쟁에서 승리한 기드온은 내부에서 일어난 불협화음을 해결해야만 했다. 외적의 침략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부의 부조화이다. 그것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자기들을 싸움에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드온은 겸손했고(8:1-3) 화해가 되었다.
2) 전쟁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과 그의 자손들이 나라를 다스려 줄것을 요청했으나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고 계심을 깨우쳐 주기도하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사람이었다(8:22-3).
3) 그러나 기드온은 탈취한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 고향 오브라에다 두므로 이스라엘이 음란하게 섬김으로 기드온 집의 올무가 되었다(8:27).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 아들이 칠십명이었는데 첩의 아들이 나머지 아들을 모두 죽이는 불상사가 생겼다. 기드온이 죽은 후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집을 후대하지 않았다(33-35).
4) 사람은 성공한 후에 더 조심해야 한다. 마지막에 잘못된 결과는 전에 행한 모든 것을 다 무효로 돌리고 만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그렇다.
18. 나실인 삼손
본문 : 삿13 : 1-7
1. 나실인
1) 이스라엘에 단 지파의 한 사람인 마노아의 아내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는데 주의 천사가 나타나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2) 그런데 그 아이는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라는 것이다(5절). 그러면 나실인은 누구인가?
(1) 그 뜻은 "거룩히 구별되어서 세속의 모든 것에서 분리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다.
(2) 그 증거로 머리를 기르고,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하며,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야 했다.
(3) 왜 그렇게 했는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나실인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증거한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은 자신을 절제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깨끗하고 순졀한 헌신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말씀은 민수기 6:1-21에 있다.
2. 나실인으로서의 삼손
1) 삼손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삼손에게 힘을 허락하셨다.
2) 청년이 된 삼손은 긴 머리만 간직했을 뿐 나실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다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 한가지로 삼손은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억지로 딤나에 사는 불레셋 여성과 결혼하였다.
3) 이때부터 삼손은 서서히 올무에 걸려들게 되었고 결국은 들릴라라는 여자를 만나 자신에게 있는 힘의 비밀을 토로하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다.
3. 힘이 센 삼손
1) 삼손에게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는데 그것은 힘이 강한 사람이었다. 삼손은 사자를 염소새끼를 찢듯이 찢었고(14:6), 삼줄로 묶었으나 쉽게 끊어버렸으며, 나귀의 턱뼈 하나로 일천 명을 때려 죽였다(15:14-15).
2) 그러나 이러한 삼손도 여인에게는 약하였다. 들릴라는 삼손을 졸라대고 여기에 못이긴 삼손은 몇번을 속인끝에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게 되었다. 3) 머리를 깍인 삼손은 붙잡혀 장님이 되고 연자맺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다. 삼손은 육체의 힘은 강하였으나 영적인 힘이 약하여 실패한 사람이었다.
4) 삼손은 마지막으로 불레셋 사람들의 잔치 자리에 불리워 갔다가 신전 두 기둥을 붙들고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소서"하고 기도하였고, 다시 힘이 강해진 삼손은 신전을 무너뜨려 수많은 불레셋 사람을 죽이고 자신도 함께 죽었다.
4. 이 사건에서 얻는 영적 교훈
1)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은 성령께서 주시는 내적인 힘을 가지고 끝까지 살아야 한다. 어떤 유혹이 있어도 이를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2) 삼손에게 있어서 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때에 나온 것이었다(14:6, 15:14). 그러나 삼손이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고 하나님을 배신하였을 때는 힘이 사라졌다.
3) 사람은 누구나 강한 때도 있고 약한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힘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신약성경에는 육체적 힘이 강한 사람은 없었으나 영적 힘이 강한 사람은 많았다. 성령님은 내적 힘을 공급하는 원천이시다.
19. 효부 룻
본문 : 룻1 : 6-18
룻기는 사사시대 말기 이스라엘 백성의 가정기사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중에 한 사람도 악하고 잔인하고 배신하며 방종하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이 짧은 내용 속에는 교리, 신학, 율법, 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며 고난 속에서 서로 돕고 살아가는 고부(姑婦)간의 인정담으로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뜨겁게 적셔준다.
1. 시어머니 나오미
1) 유다 땅에서도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베들레헴이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있는 토지를 처분하고 먹고 살기 위해 두 아들을 데리고 사해 동쪽 모압땅으로 피난을 떠났다.
2) 처음부터 이 피난길이 잘못이었다. 유목민의 나라이며 이방신이 들끓고 있는 모압땅으로 피난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오미는 역사상 불행한 여인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남편을 잃고 얼마 안가서 결혼한 두 아들이 자손이 없이 모두 죽고 말았다.
3)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세상화하면 재난을 당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애굽에 갔다가 모두 실패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어울리면 어려움을 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4) 그러던 차에 고향 베들레헴에 양식이 풍부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의 세월을 보내던 중 나오미는 귀국을 결심하였다.
2. 며느리 룻
1) 요단계곡 국경에 이르자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각기 어미 집으로 돌아가라"(1:8절)고 타일렀다. 나오미의 간곡한 요청에 오르바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에게로 돌아갔다(1:15절). 그러나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신분을 놓치고 말았다.
2) 효성이 지극한 룻은 늙은 어머니를 떠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음을 눈물로 호소하며 함께 가기를 간청했다(1:16- 17절)
3) 룻은 나오미의 신앙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자신이 본래 섬겼던 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룻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오미의 일가를 모압으로 보내신 것은 아닐까?
3. 복받은 룻
1) 나오미는 룻과 함께 고향에 돌아왔으나 살길이 막연하였다. 그러나 룻은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마침 추수하는 때라 룻은 밭에 나가 이삭을 주워다가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
2) 이러한 룻의 아름다운 행동이 그 지방의 유력한 부자 보아스를 만나게 하였고 전혀 소망이 없어 보이던 가정에 소망의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다. 보아스는 룻이 자기 집안 사람의 며느리이며, 그녀의 현숙한 태도와, 나오미에 대한 효성, 그리고 좋은 평판도 들었다.
3) 나오미는 이러한 룻을 위해 보아스와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썼고 보아스는 당시의 사회 관습에 따라 순서를 밟아 결국 룻과 결혼을 하였다.
4) 룻은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오벳은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되었다(4:17). 이방 여인이요 과부인 룻은 예수님의 조상이 된 것이다.
5) 우리는 룻기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겸손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하는 자를 일으키시고 그 영광을 들어내는가를 깨닫게 된다.
20. 자녀 교육에 실패한 엘리
본문 : 삼상2 : 12-17, 22-25
엘리는 사사시대 말기의 사사 중의 한 사람으로 제사장을 겸했다. 40년 동안 사사 일을 보았으나 좋은 정치를 하지 못하였고, 98세를 살았으나 영적 감각이 무뎌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 사람이 되었다.
1. 불량자 아들을 둔 엘리
1) 제사장의 가문에서 자란 엘리의 아들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않았다. 알지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를 않았다는 말씀이다(12절).
2) 그들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를 멸시했다(17절). 제사용으로 동물을 잡은 후 피와 기름을 제단에서 태우기 전에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였고, 제사용의 고기는 불에 삶아야 하는데 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일은 백성의 신앙심과 제사에 대한 경건심을 추락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3) 엘리는 아버지로서 아들들이 여러 가지 악한 일을 행하는 것과 간음한 일을 듣고 훈계를 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개인 사이의 분쟁은 하나님이 대리자를 통해 판결하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건은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경고도 무시했다.
4) 하나님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선지자를 보내셔서 심판을 말씀하셨다(2:27-36).
(1) 이것은 신앙으로 자녀를 교육하지 못해서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태도를 갖도록 했기 때문이다.
(2) 아들을 하나님보다 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3) 악한 자식을 제사직에 그대로 두어서이다.
자녀를 바르게 교육하지 못한 엘리에게 하나님은 엄하게 저주하셨으니 '엘리의 집이 망하리라'는 것이다(3:13). 제물과 예물로도 그 죄를 속함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3:14).
2. 목이 부러져 죽은 엘리
1) 이스라엘과 불레셋이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졌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리라고 믿고 있었지만 법궤를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은 전쟁에서 죽었다.
2)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여야 한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지도 않았고, 신앙도 없이 법궤만 들고 간다고 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3) 엘리의 죽음은 비참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하였고,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었고, 벱궤도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98년의 생애동안 신앙 생활에 부족한 제사장은 자녀를 엄하게 교육하지 못해 패가망신하였고, 백성들을 바르게 지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라는 망하고 종교는 부패하게 되었다.
3.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다)
1) 엘리가 죽었을 때 또 한 사람 비느하스의 아내는 그 소식에 놀라 해산하다가 죽었다. 그때 낳은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다"는 말이다.
2) 왜 그렇게 되었는가? 믿음이 잘못되어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제사장(엘리와 그의 아들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우습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완악한 불효의 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21. 새 시대의 길을 연 사무엘
본문 : 삼상3 : 19-21
1. 어릴 때의 사무엘
1) 사무엘은 신앙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로 낳은 아들이었다. 사무엘은 젖을 떼기까지 어머니의 품에서 신앙과 기도로 양육을 받고 그 후에는 어려서부터 성막에서 자랐다.
2)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짓고 있는 동안에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고 자랐다(2:26). 이러한 결과는 어머니 한나의 신앙과 인격을 그대로 받고 자란데서 오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어느 적정한 시기에 사무엘을 찾아오셨고 그를 부르셔서 일을 맡기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진 암흑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셨던 것이다.
2.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시대의 사무엘
1)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가장 고통을 준 것은 불레셋 사람들이었다. 엘리 시대에도 불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번번이 패하였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언약궤"를 들고 나갔지만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셨고 전쟁에서 패배한 이스라엘은 "언약궤"마저 불레셋에게 빼앗기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되었다.
2) 그 결과로 엘리는 죽었고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실망하였다.
이러한 때에 이스라엘에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났는데 그가 사무엘이었다.
3) 사무엘이 먼저 한 일은 백성의 믿음을 깨우치는 일이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7:3).
4) 그 후에 사무엘은 미스바에 백성들을 모이게 하고 함께 회개하며 금식기도를 했다(7:6).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고, 불레셋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셨다(7:10).
3. 시대 전환기의 사무엘
1) 사무엘이 나이가 많아지자 두 아들이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런데 두 아들이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고 법대로 다스리지 못했다(8:3). 이것을 핑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였다.
2) 그 시기 주변 국가들은 모두 왕이 있어서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각 지파들이 연합하여 일을 처리해 나가는 조직이었다. 여기에서 왕은 당연히 하나님이셨다(8:7).
3)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왕의 제도를 허락하시게 되었고 사무엘은 백성들이 왕의 제도하에서 당할 고통을 경고하였으나(8:18), 이스라엘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제도만을 고집하였다(20).
4) 자신들의 신앙이 잘못되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한 것은 깨닫지 못하고 제도에 문제가 있어서 전쟁에서 패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이었다.
사무엘은 신앙운동을 일으키면서 기도하고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종교의 타락을 보고 소리쳐 종교개혁을 부르짖지도 않았고, 법궤를 빼앗겼다고 법궤 탈환운동을 하지도 않았다. 말없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기다린 선지자였다.
22. 최초의 왕 사울
본문 : 삼상11 : 6-15
1. 왕으로 선발된 사울
1) 사울은 베냐민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으로 최초의 왕을 물색하는 사무엘에게 발탁될 만큼 준수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무엘은 저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위를 약속하였다.
2)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사울로 하여금 왕이 되게 하신 것은 말할 것도 없다(9:17).
3) 사울에게는 왕이 될 수 있는 몇가지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1)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집에 돌아가서 왕위에 대하여 침묵으로 지켰다.
(2) 왕으로 선택되었을 때 반대자들의 멸시를 모르는 체하고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3) 암몬이 쳐들어 왔을 때는 밭갈던 소를 잡아 전국에 격문을 보내고 칼을 뽑아들고 나가 싸워 승리하는 용기와 기백이 넘쳤다.
(4) 사울의 반대자들을 죽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를 거절하는 아량도 있었다(12-13절).
(5) 사울을 왕으로 뽑으려 할때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숨은 사람이었다(10:22).
2. 실패하는 사울
1) 사울이 왕이 될 때는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행하려고 애를 쓴 사람이었다.
2) 그러나 왕이 된 후 그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사울이 왕이 된지 2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1) 사울이 왕이 된후 2년에 불레셋의 침공이 있었다. 적군의 공세는 급박하고 제사를 드릴 사무엘은 오지 않자 자기가 제사를 지냈다.
(2) 하나님께 제사들 지내는 것은 형식적으로 치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도와주심을 바라는 신앙의 태도이다.
(3)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 앞서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말았다.
3)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사울은 신앙의 지도자로서 부족함을 더욱 들어내고 말았다.
(1)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아말렉의 남녀노소와 가축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하셨지만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주고 소와 양도 좋은 것을 골라 남겼다.
(2) 하나님은 이러한 사울에게 사무엘을 보내셔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거역하는 것은 사슬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15:22-23)고 하셨다.
4)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결과는 하나님도 사울을 버리시게 되었다.
3. 최후가 비참한 사울
1)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은 악신에 걸려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18:10). 거인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만인에게 존경을 받아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18:7)라고 부르는 노래에 사울은 밤잠을 못자고 번민을 하였다.
2) 민심은 점점 다윗에게로 돌아가고 여기에 사울은 견딜 수 없이 초조하였다. 사울이 초조하면 할 수록 나라 일은 그릇되어가고 민심을 잃게 되었다.
3) 만인이 다 버려도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시면 용기백배하여 살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도 사울을 버리셨으니 고통의 나날만 더해가고 아무 죄도 없는 다윗만 쫓아다니며 죽이려고 하다가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아들 요나단과 함께 죽고 말았다.
23. 성군 다윗
본문 : 삼상16 : 6-13
1. 목동에서 왕으로 선택된 다윗
1)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사울왕을 버리고' 새 왕을 세우기 위하여 은밀히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찾아갔다.
2) 처음에 사무엘은 이새의 장남 엘리압을 보고 왕으로 선택될 자로 여겼으나 하나님은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시면서 다윗을 선택하셨다.
3)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행13: 22).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되도록 했는가?
(1) 그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시편은 모두 신앙의 노래로 그 중 다윗의 시가 가장 많은 것은 다윗이 신앙의 사람이란 증거이다. 특히 나이가 어린 가운데서도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운 신앙 때문이었다(삼상17:45-47).
(2) 그는 순종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다윗같이 순종"하기를 원하셨다.
(3) 그는 회개의 사람이었다. 다윗이 범죄하였을 때 나단의 충고를 듣고 눈물로 회개하였다.
2. 역경을 통해 성장한 다윗
1) 다윗의 역경이 시작된 것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부터이다. 이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고, 여러번 죽이려고까지 했다.
2) 그럼에도 다윗의 신앙과 용기는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우정과, 딸 미갈의 사랑, 아비가일의 도움 등이 있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그로 하여금 끊임없는 위기와 고난 속에서도 신앙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의 신앙을 대표한 시편 23편은 오늘까지 누구에게나 즐겨 암송하는 말씀이 되고 있다.
3) 기름부음을 받은 후 십여년의 고난을 극복한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왕이 되어 7년반을 지내고 그 후에 통일 왕국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40년을 다스리는 동안 국내정책으로 예루살렘을 예배의 중심지로 삼아 정교일치의 정치를 하였고, 대외정책으로는 적국을 물리치고 외교를 강화하여 나라의 기틀을 반석위에 세우는 성군이 되었다.
4) 다윗은 후세에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이 되었다. 이러므로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메시아'를 기다릴 때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과 같은 왕"으로 불려지게 되었다(사9:7, 겔34:23,24, 37:24 등).
3. 다윗의 인간성
1)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에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이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려 처리하시도록 하였다.
2) 다윗이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했을 때 이것을 지적한 나단의 충고를 받아들여 회개를 하였다.
3) 전쟁 준비를 위하여 인구조사를 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은 생각하지를 않고 사람의 수만 가지고 전쟁하려는 다윗은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았다.
4)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사울로부터 그토록 고난을 받았음에도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잘 보살펴 주므로 원수는 잊어버리고 은혜는 갚는 일을 했다.
5) 다윗은 신앙인으로, 정치가로, 시인으로, 군인으로 메시아의 조상으로 특출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