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가리켜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IT) 시대라고 말합니다. 흔히들 IT 시대라고 말합니다. 우선 이 말에 대한 의미를 말씀해 주시면 합니다.
<답변1> IT 세계에서 한국이 좁은 땅에 인구 밀도가 높아 인터넷 문화의 형성에 급진전을 하여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IT 시대를구가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말은 Information Technology의 약자로서 정보기술로 번역되어 사용중에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인터넷을 지칭한 말은 아닙니다. 원래 이 말은 많은 정보 가운데에서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수집, 선택하기 위한 정보의 체계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론과 기법을 가리킨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디지털 문화의 보급과 더불어 인터넷이나 기타의 모든 전자 기기들의 개발과 함께 첨단을 달리는 시대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여기서 하나 유의해 주셔야 할 것은 이러한 IT 시대의 바탕이 되는 언어와 이론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먼저 커뮤니케이션의 이론적인 이해가 이룩되어야 IT 시대의 의미와 그 실용성을 좀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언어를 주된 방편으로 사용하는 설교자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것이커뮤니케이션의 세계입니다.
<질문2> 저는 설교자의 한 사람으로 시급히 알고 싶은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이론입니다. 교회 안팎에서 일찍부터 사용해 온 용어이지만 막상 간결한 설명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선 communication 의 정의를 듣고 싶습니다.
<답변2> 매우 유용한 질문을 하시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용어는 많이 사용하면서도 그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들이 매우 부족함을 많이 보게 됩니다. 원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어원은‘공통’(Commonness)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 라틴어의‘코뮤니스’(Communis)란 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지식. 경험. 정보. 사상. 신앙 등을 함께 공유(共有-sharing)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하게 나의 생각하는 바를 상대에게 들려주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나와 상대가 함께 소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의 단어들을 보시면 그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공동체(Community), 공산주의 (Communism), 상식(commonsense) 등의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자세히 보십시오. 거기에는 한 사람이 무엇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의미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기독교신앙의 개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공통의 신앙을 소유하기를 바라고 또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관계로 함께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말하면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을 넘겨주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상대와 더불어 소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질문3> 그러면 언어를 구사하면서 그 언어를 들어줄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해야 커뮤니케이션은 이룩된다고 보아야 하는지요? 언어라는 매개체가 없이는 커뮤니케이션의 의미가 돋보이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것처럼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글을 통해서도 커뮤니케이션은 이룩될 수 없는지요?
<답변3> 아시는대로 언어는 음성언어와 문자언어가 있습니다. 인간사회에서는 이러한 도구가 가장 기본적인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은 나와 다른 사람과의 1:1의 관계에서만 이룩된 것은 아닙니다. 자신과의 관계를 비롯하여 자연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커뮤니케이션의 범위는 실로 넓습니다. 다음의 예를 보시지요. 어느 설교자에게 있었던 며칠 동안의 삶의 내용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머리 숙여 기도합니다. 내용은 무슨 말씀을 오는 주일에 무슨 메시지를 주실 것인지를 묻고 그 답을 얻고자 하는 순간입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시간입니다. 기도 끝에 본문을 확정하고 그 말씀의 석의작업에 들어가서 많은 책들을 봅니다. 이시간은 인쇄매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시간입니다. 메시지가 작성된 다음에 자신이 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정결한 몸인지를 심각하게 점검합니다. 이 시간은 자신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시간입니다. 설교준비가 다 끝난 토요일 오후 가족들과 공원을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눕니다. 이것은 가족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시간입니다. 주일 예배에 드디어 말씀을 회중들에게 선포합니다. 이 시간은 메시지를 가지고 회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시간입니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이란 어느 특정한 매체나 환경이나 수단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의 무대 위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것도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신비의 메시지를 공유하게 되는 귀한 커뮤니케이션의 한 장면입니다. 사실 인간이란 삶 그 자체가 모두 커뮤니케이션의 사고와 행위를 지속하면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질문4> 교수님께서는 그리스도교의 커뮤니케이션을 다룬 책을 번역하시고 그 이론을 강의 하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책을 다시 한번 소개해 주시고. 그 책에서 주장한 그리스도교의 커뮤니케이션 신학이라 할만한 이론적 바탕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답변4> 그렇습니다. 설교학교수로서 한국교회에 시급히 소개해야 할 책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설교자들이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으로서 1985년에 웨버(Robert Webber) 교수의 [그리스도교 커뮤니케이션]을 번역한바 있습니다. 그 책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교 커뮤니케이션의 신학적 접근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커뮤니케이션이란 인간의 효과적인 의사전달을 위한 기술적인 개발의 산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의 근본 원리는 인간이 창안한 이론의 결실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삼위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와 그 계시의 과정에서 일찍이 사용되어진 방편(Means)이었고 이 방편은 오늘도 그의 나라와 의를 펼치는 도구로서 소중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웨버의 주장대로 하나님은 커뮤니케이션의 궁극적인 기초(The Ultimate Basis for Communication)임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위격들이 서로 함께 하면서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방법으로 친밀한 사이를 유지하면서 공통적인 신적 성격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커뮤니케이션의 바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성서에서 표현되는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의 교류는 하나님은 관계의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그 본질상 커뮤니케이션에 의해서 특정지워지는 분이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이러한 분석은 오르(James Orr)의 표현대로하나님 자신이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서 창조와 구속의 역사가 바로 “성삼위 상호간의 완전한 교제 안에서 이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이 완전한 교제의 본성을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활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속성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그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서의 66권 전체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성에서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과 인간의 응답이 때로는 순조롭게, 때로는 역겨웁게 이어지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 그 피조물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이어지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 구체적인 실례로서인간의 타락과 에덴에서의 추방은 모두가 하나님과 그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에서 발생되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과의 어떠한 소통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공중권세를 펼치면서 파멸을 즐기는 사탄의 존재와 그 권세가 하나의실례로서 들 수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분명한 실례는 하나님과의 막혀진 담을 헐고 본래적인 소통의 관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을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처절한 희생의 제물이 되면서 까지, 자신의 뜻을 보여주신 구원의 사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깊은 사연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어 그 뜻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자신의 것으로 공유한 사람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진리가 커뮤니케이션 신학의 절정을 이룹니다.
<질문5> 저는 커뮤니케이션의 신학적 접근이 이토록 깊은 의미를 가지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모두가 하나님과 인간관의 사이에 막힌 커뮤니케이션의 담을 무너뜨린 거대한 사역이었음을 다시 이해하게 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오늘의 시점에서 이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활용하시기를 원하시며 그것은 오늘의 설교사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듣고 싶습니다.
<답변5> 성경의 모든 기록이 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여 인간에게 오늘도 선포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고 길과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깊은 주의를 요하는 것은 성경의 커뮤니케이션은 말하는 존재의 부상이 목적이 아니라 그 매체를 이용하는 메시지의 주체자의 뜻이 명백하게 전달되고 나타나야 한다는 특유한 요구를 접하게됩니다. 이러한 그 위대한 뜻의 성취를 위하여 하나님은 역사와 언어와 환상과 성육신의 형태를 통하여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방편을 과거의 것으로 거두지 아니하고, 오늘의 말씀의 사역자들인 설교자들에게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세상에서 그의 말씀이 전파되어지도록 명령하신다는 사실이설교자 모두에게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대화의 함축된 의미들
인간이 고등동물로서의 인정을 받은 것은 사고의 수준이 우월하다는 것과 그 사고는 언어를 비롯한 각종 매체를 통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데 있다. 특히 하나님은 인간과의 파괴된 커뮤니케이션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보내시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혔던 담을 십자가의 사건으로 허무시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위대한 역사를 진행하시고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 땅의 인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이룩하시기 원하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설교인들에게 중요한 역할이 주어지고 있다.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는 메시지를 설교자를 통하여 회중들이 공유해야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가 바로 설교의 성패를 가름하는 소중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 설교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전해지는 메시지가 회중의 가슴에 함께 공유되었을 때 거기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룩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