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샘물교회 청년 23명이 무장한 집단에 의해 납치되어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사건이 보도되면서 우리사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빠져있다. 언론 매체에서는 연일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특히 선교에 대하여 남다른 열정을 가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번 사건으로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 기독교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무엇인가? 언론매체에서 제시된 다양한 주장들과 관점에 대하여 기독교는 어떤 답변을 주어야하는가? 필자는 선교를 전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사건에서 제기된 비판이나 질문들에 대하여 답변하는 형식으로 기독교 선교와 봉사에 대한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비판적인 견해는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왜 남의 나라에 가서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가? 두 번째, 분쟁지역과 같은 위험지역에 허락도 없이 들어가 활동하는가? 셋째, 한국교회의 무분별한 선교 열정이 이러한 화를 불러 일으켰다. 넷째, 다른 종교를 존중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독단이 이러한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비판과 질문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바른 관점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위에서 비판한 내용들은 모두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으며 한국교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체를 보지 못하고 대개 한편으로 치우친 시각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이나 인터넷에 제시되어 있는 다양한 입장과 견해들에 대하여 노출된 기독교 선교의 문제점들도 인정하고 개선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그 본질에 있어서 잃어버릴 수 없는 내용들이 무엇인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질문인, “왜 남의 나라에 함부로 가서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가?”라는 것은 지극히 국가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인류적 관점에서나 성서적 관점에서 틀린 입장임을 지적해야 하겠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한 민족이나 국가의 생존과 번영은 그 나라 내부적인 조건이나 상황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역사는 각 나라들이 서로 얽혀진 관계 속에서 발전되어 왔으며 더욱이 어렵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소위 우방 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 우리나라의 역사만 보더라도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나 6. 25의 동족상쟁을 해결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이 아니었다. 물론 혹자는 우리나라를 도운 것은 모두 그 나라들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반론할 것이다. 그 말이 맞다. 그럼에도 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한국사회의 모습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70-80년대 서슬이 퍼런 독재정권하에서 신음할 때 세계 여러 나라의 의식 있는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독재를 비판하며 민주화를 위한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응원하고 후원하였다.
오늘의 세계현실에서 인권존중이나 평등은 국가나 민족의 경계선을 넘어 전 세계 국가들이 함께 힘을 모아 지켜가야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오랜 기간 동안 인종차별정책을 시행하였을 때 유엔과 시민단체, 세계교회들은 그들을 압박하면서 잘못된 정책을 개선하도록 촉구하여 인종차별정책을 폐기하고 흑인정권이 탄생하는데 기여한바 있다. 어떤 민족이나 국가에서 발생하는 비극적인 사건은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며 인명의 살상은 모든 인류의 비극인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살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평안하다고 해서 남의 일처럼 팔을 놓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분쟁 이후에 많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보면서 한국 청년들은 개인적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찾아간 것이다. 그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결단으로 봉사활동을 지원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자기 가정의 안위와 번영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두 번째 비판은 현지 지도자에 의해 제기되었다. “왜 분쟁의 상처로 인해 찢겨진 나라에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왔는가?”라는 질문은 현지 상황에 의해 제기된 발언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내전 상태이며 다양한 부족들과 집단으로 복잡하게 구성된 국가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인해 갈등과 충돌을 겪고 있다. 그러나 내전 상황이라고 해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누구도 외면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심지어 전쟁 중이라도 부상자를 치료하는 적십자의 활동은 아군과 적군을 떠나서 인도적 행위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분쟁지역에 들어갈 때에는 그들의 허락이 필요하다. 또한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갈지라도 그곳의 문화와 전통, 풍습들과 충돌하면 선한의도와 실천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샘물교회 청년들은 그곳의 봉사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안내를 받았다. 안내자들이 현지 지도자나 권한을 가진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청년들은 순수한 봉사자들이었기 때문에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미 여러 번의 납치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인의 납치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이번 사건을 통하여 한국교회의 무분별한 선교열정에 대한 비판은 한국교회가 귀담아 들어야 한다. 물론 피랍된 청년들은 전통적인 선교를 하지 않았고 의료와 교육을 통한 봉사활동이 주활동 내용이었다. 이번 사건이 전통적 의미에서 수행하는 선교활동과 구분되는 의료 교육봉사활동이기 때문에 선교와 직접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계없이 한국교회는 최근에 방학을 활용하여 각 교회마다 단기선교를 진행하는 현상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여름방학 또는 겨울방학 기간에 동남아 지역은 교회 청년들로 비행기 좌석을 가득 매우고 있다. 선교는 교회가 해야 할 본질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비판할 수 없다. 문제는 선교의 동기와 방식이다.
필자는 단기선교활동이 주는 유익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단기간의 활동이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현지사회에 필요한 도움이 되며 참여한 사람들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유익함을 경험하게 한다. 오랫동안 단일 문화권에서 획일적인 교육을 받아 온 우리의 젊은이들이 방학을 이용하여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세계시민정신을 함양하는데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점점 증가하는 교회들의 단기 활동들이 현지의 필요성에 초점을 두지 않고 참여하는 교회 중심으로 활동하는 방식이다. 현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하는 자기중심적 활동은 오히려 현지 교회나 선교사들에게 어려움을 초래한다. 사실 한 두주의 짧은 기간에는 효과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송하는 교회는 비장한 선교열정을 가지고 준비하며 대단한 결과를 기대한다. 이러한 비현실적 동기와 욕구에 의해 진행되는 단기 활동들은 현지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여름방학 때 동남아, 중앙아시아 행 비행기를 타보면 절반 이상이 교회 팀이라는 것을 볼 때 마다 마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선교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소속 교회의 요구에 집중하며,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하는 마음을 훈련받지도 못하고 비장한 선교열정만으로 찾아가는 프로그램들은 이미 겉잡을 수 없는 역기능들을 초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종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활동이 독단적이라는 비판에도 주목해야 한다. 다른 종교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며 그들의 선한 요소조차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편협한 신앙관, 선교관은 자연히 선교를 공격적이며 정복적 관점에서 수행하게 한다. 기독교 진리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유행처럼 번지는 "땅 밟기, 영적 전쟁"과 같은 프로그램들은 선교활동을 천박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사랑 안에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함이 포함되어 있다. 위의 두 가지 요소가 빠진 사랑은 상대방에게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바울은 자신의 구원경험에 근거하여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였다”라고 고백한다.(롬5:8) 확실히 현재 한국교회의 선교열정은 올바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누구를 위한 선교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찾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선교인가 아니면 참여하는 우리 자신을 위한 선교인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선교는 자신의 이름을 내는 "선전"과는 다르다. 현재 한국교회의 선교활동은 선교라기보다는 선전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선교에 열심이 있는 사람일수록 다른 종교에 대하여 알려고도 하지 않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에도 매우 인색하다. 또한 상대방을 부정하는데서 우리의 선교열심을 찾곤 한다. 이것은 대부분 목회자들의 신앙관, 선교관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그들을 교육한 신학교의 신학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인간을 참고 기다려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믿음과 독선은 서로 다른 것이다. 믿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계에 기초하여 있다. 그러나 독단은 타자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 하나님은 피조물이며 죄인인 인간에 대해서도 존중하고 기다려주셨다.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참으시며 그 사람의 특성이나 성격을 존중하고 계신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모든 종교는 각각 믿고 있는 바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확신이 없다면 참된 종교가 아닐 것이다. 또한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에 대한 보편성을 믿는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히 전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 종교나 부족 종교가 아닌 진리의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는 세계종교들은 모두 선교하는 종교들이다. 진리는 진리 자체가 설득력을 갖고 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증거하는 말씀 자체이지 우리 자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선교활동을 할지라도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오늘의 사회는 다양한 종교인들이 함께 더불어 살고 있는 다종교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이나 19세기 식민주의 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기독교가 존재하거나 선교할 수 없다. 당시의 방법도 복음의 빛에 비추어보면 잘못된 것이었다. 종교는 강압이나 강요로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을 구원할 진리란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서의 자발적 깨달음을 불러일으킨다. 기독교인은 자신들이 믿는 진리에 대하여 단지 증인이 될 뿐이지 다른 종교인들에 대하여 판단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선교에 과도한 열정을 갖고 있으며 자기중심적이며 무분별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 경쟁적인 선교활동은 다른 종교인들에게는 물론,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종교를 떠나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선한 의도를 가진 청년들을 납치하고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행동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정치, 이념, 종교를 떠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적절한 도움을 받아야 하며 또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봉사가 평화로운 곳에서만 수행되어야 한다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분쟁지역이나 위험한 지역에 처한 사람들은 누구를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유엔기구나 NGO, 그리고 종교단체와 같은 국가와 민족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사람들이 세계를 위한 봉사의 책임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인권을 존중하며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세계 모든 국가들은 이러한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더구나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인간을 향한 우리의 마음과 사랑은 어떤 조건이나 요인들로 인해 차별성을 두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전 세계를 품고 계시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그분과 함께 전 세계를 품고 나아가야 한다. 다만 우리는 이 청년들처럼 믿음과 용기가 부족하고 우리 자신의 일에 너무 매여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무분별한 열정에서 비롯된 활동들은 분명히 지양되어야 하지만 올바른 동기에서 수행하는 봉사는 지속되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봉사자들을 파송하고 있는 기관에서 보다 안전한 대책을 위해 철저한 준비하는 것이다. 현지에서 장기 체류하면서 현지의 문화, 전통, 풍습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제 막 시작한 전 세계 지역에서의 한국인의 봉사활동이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 불과 30여 년 전의 보릿고개를 넘어서고 이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자 전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 성숙함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진정한 선진국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양식의 풍족함을 가진 사람들이 나누어야 하며, 전쟁과 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을 평화로운 지역의 사람들이 여러 형태로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피랍된 청년들은 우리가 우려하는 편협한 방식으로 무분별하게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전의 위험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짧은 휴가를 봉사활동을 위해 바친 사람들이다. 이번 사건을 청년들의 무모하고 무분별한 행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전쟁과 기근으로 간절한 도움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상황이 어렵거나 위험하다고 외면할 수 없다. 다만 현지 상황을 잘 이해하고 참여하는 봉사자들의 안전 대책을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선교나 봉사활동은 우리 중심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필요에 맞추어 진행되어야 하며, 그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일(韓國一) 교수 (Kuk-Il Han)
- 선교학, Dr.theol.
- Associate Professor of Missiology
-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B.A.)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Th.M.)
- 독일 Heidelberg 대학교(Dr.theol.)
- hankjy@pct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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