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목회신학의 동향김한옥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실천신학)

 목회에 관한 강연이나 세미나에서 “목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직도 대다수의 교회들이 과거의 틀 속에서 목회를 하고 있지만, 목회의 패러다임은 이미 많이 달라졌고 지금도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 목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해 가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을 든다면 개인의 가치에 대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현대목회와 목회신학에서 심해의 해류처럼 도도히 흐르면서 교회를 건강하게 하고 목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목회현장에서 이 새로운 가치는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대중을 상대로 하던 목회가 개인을 상대로 하는 목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 전에는 교역자가 대중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예배하고 설교하는 것이 목회의 주된 방법이었다. 불과 반세기 전의 목회학자인 투르나이젠(Eduard Thurneysen)만 해도 “목회는 교회 안에서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였다. 물론 목회에서 하나님 말씀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설교로 목회의 승부를 거는 일은 그다지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교인들은 이제 청중으로 취급받기를 싫어한다. 오늘날 교인들은 개별적으로 목회자를 만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조언을 듣고 기도를 받는 등 목회적인 서비스의 질적인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목회상담학이 현대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부담으로 다가오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둘째, 교역자 중심의 목회에서 전교인이 참여하는 목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오랫동안 목회학을 ‘포이메닉스’(Poimenics)라고 불렀다. 이는 목사를 의미하는 헬라어 ‘포이멘’을 영어로 옮긴 것이다. 포이메닉스 목회학은 목사의 인격과 소명과 사역의 기술을 가르친다. 그러니까 목회자 한 사람의 존재와 사역훈련이 지난 날 목회학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미 20여 년 전에 목회학은 목회자 한 사람의 영역을 다루는 포이메닉스를 넘어서 전교인이 동참하는 ‘미니스트리’(Ministry)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목회적인 차원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통칭하여 ‘사역’(Ministry)이라고 한다.

실제로 현대목회는 포이멘 목회자 한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수많은 사역자들에 의해서 수행된다. 그러다보니 목회자에 대한 명칭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 서구사회에서 동네 주민 대다수가 문맹자일 때 목사가 주민들의 관공서 관련 서류를 대필해 준 적이 있었다. 이때부터 목사를 ‘클러지’(Clergy)라고 불렀는데, 이는 관공서 ‘서기’(Cluck)에서 온 말이다. 그 당시 목회자의 역할에 걸맞는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목회자에게는 어떤 명칭이 가장 적합할까? 많은 목회학자들은 현대목회의 패러다임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목사는 ‘연출가’(Director)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목사는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목사는 모든 교인이 목회 사역의 무대에서 개개인의 은사(탤런트)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감독하고 지도하는 연출가가 되어야 한다.

셋째, 대그룹(교회)을 중심으로 하던 전통적인 목회에서 소그룹 중심의 셀 목회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전통적인 목회는 부흥집회, 성경공부, 제자훈련과 같은 프로그램 중심의 목회였다. 이러한 목회 자원들은 매우 가치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목회가 셀 목회로 전환되어 가고 있는 이유는 프로그램 중심의 목회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이다. 부흥집회를 통해 뜨거워진 가슴, 성경공부에서 얻은 성경지식, 제자훈련을 통해서 다듬은 세련됨을 유지하고, 생활에 적용시키며,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전통적인 목회는 이에 대한 대책이 미흡했다. 특히 전통적인 목회는 교인들의 자율적인 신앙생활을 가로막고 있다는 데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신앙과 삶의 이원화 현상이다.

소그룹 목회, 셀 목회는 이러한 단점들을 단번에 날려버린다. 지금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강하게 도전하는 셀 목회는 이미 삼십 여 년 전에 미국의 신학자이면서 목회자인 랄프 네이버(Ralph W. Neihbour)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당시 전통적인 목회의 한계를 보고 성경적인 목회로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셀 목회는 새신자 전도와 생활 속의 신앙 그리고 성도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셀 목회에서는 대중이 모이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목회의 비중은 셀 그룹에 있다. 네이버는 셀 목회는 ‘셀이 있는 목회가 아니라 셀 중심의 목회’라고 한다. 한국교회가 구역이라는 소그룹이 ‘있는’ 목회를 해왔다면, 셀 교회는 이 소그룹이 성경적인 원리대로 움직이도록 하는 목회를 지향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셀 목회의 개척자 네이버가 한국의 구역조직에서 힌트를 얻어 셀 교회를 시작하였다고 하니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우리의 것을 발전시키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사실 목회 패러다임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목회라는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한 그루의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야 한다. 하나의 새롭고 건전한 목회 스타일이 나오기까지는 반드시 신학적인 발판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소그룹 중심의 셀 목회를 탄생시킨 신학적인 기초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론과 평신도 신학이다.

실천신학의 이론적인 기초를 교회론으로 삼은 학자는 독일의 실천신학자 칼 임마누엘 니취(Karl Immanuel Nitsch, 1787-1868)이다. 그는 이미 19세기 중반에 기독교의 교역 실천의 주체가 개교인도 성직자도 아닌 교회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개신교회의 목회가 전체 교회 공동체의 과제라는 사실은 한 세기 훨씬 이전에 밝혀진 셈이다. 오늘날까지도 니취의 주장은 실천신학자들에게 요지부동의 철칙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니취의 명제가 목회 실천에서 구체적인 빛을 보기 위해서는 평신도 신학이 나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평신도 신학은 교회론을 좀더 실용적으로 만든 학문이다. 말하자면 평신도 신학은 교회론의 구체화이다. 네덜란드 신학자인 헨드릭 크래머(Hendrick Kraemer)의 『평신도 신학』(Theologie des Laienrums)은 성경적인 교회론을 근거로 해서 현재 교회를 비평적으로 바라본다. 놀라운 것은 크래머 이전에 프랑스의 신부 이브 콩가르(Yves Congar)가 방대한 분량의 평신도에 관한 책을 출판하였다는 것이다. 교회의 피라미드 구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가톨릭이 가장 하층구조에 있는 평신도를 ‘사제’라고 칭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톨릭은 1962-1965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평신도의 사도직과 평신도의 사제직을 문서화하였다. 그렇다고 가톨릭이 피라미드식 교회론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변화하는 세계에서 안수 받은 사제만으로는 사목의 사명을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없다는 인식을 하였다는 것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초교파적으로 교회론을 실천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국 평신도의 목회 참여를 한층 수월하게 만들었다. 실천신학의 기초를 교회론으로 정립하지 않았거나 평신도의 재발견이 없었던들 오늘날 소그룹 사역이나 셀 목회는 딛고 설 발판이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에 셀 목회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부지런한 목회자는 벌써 이 분야에 선구자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교회에 대한 목회자의 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그것 없이 시작하는 셀 목회는 구역 조직을 재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목회는 새로운 목회신학의 기초 위에서 날아야 높이 비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