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아프리카의 관문인 케냐 나이로비에서 북부 유목민들이 사는 마사빗까지는 600㎞. 도로 사정이 나빠 자동차라면 거의 이틀을 잡아야 하는 거리를 아프리카내륙선교회(AIM)의 12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2시간 만에 도착한 것은 행운이었다.
AIM은 아프리카 서방 선교사의 선교활동을 지원하는 선교단체다. 선교사들이 살 집과 사무실도 지어준다. 13대의 크고 작은 비행기로 아프리카 오지에 물자와 선교사들을 실어나르는 모습은 한국엔 부족한 ‘선교 인프라’의 중요성을 느끼게 했다.
탄자니아에서 4년간 선교사로도 활동했다는 조종사 앤드루 켈러(56)는 “요즘 한국인 선교사들과 방문자들이 이 비행기를 많이 이용한다. 뜻 깊은 일정이 되길 바란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시아인으로는 제일 처음 마사빗에 들어와 5년째 사역하는 최인호(37) 선교사는 검게 그을리고 터프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깨뜨렸다. 조용조용한 말투에 겸손이 밴, 대도시의 모범 전도사 같은 그가 국제 기아대책 기구의 어린이개발사업(CDP)을 중심으로 수자원 개발사업, 교회 개발사역, 식량지원 등을 맡아 바쁘게 뛰고 있다니 언뜻 믿기지 않았다.
“대학졸업 후 어린 시절부터 꿈꾸었던 선교사로서 일하고 싶다고 기도했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어요.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3년, 기아대책 기아봉사단으로 아프리카에 파송됐습니다.”
사막과 초원 지대인 마사빗은 남한의 절반 크기로 에티오피아와 접경지역에 있다. 사역지 중의 하나인 렌딜레족이 사는 코어 지역 캄보에 마을을 찾았다. 원주민들의 삶은 그들의 행색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바람에 날아갈지 몰라 끈으로 묶어낸 움막에서 살며 거의가 하루 한끼만 먹으며 살고 있다. 원조용으로 받은 옷은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다 해져 너덜너덜했다. 주민들이 물 한 통 얻기 위해 2∼3㎞를 땡볕에 먼지를 일으키며 걷고 있었다. 물통을 이고 동생까지 업은 열서너살 된 한 여자애의 지친 표정은 애처롭다못해 분노까지 느껴졌다.
“케냐에서 가장 황량한 땅인 이곳은 연평균 강수량이 100㎜ 미만입니다. 척박한 땅과 더위 때문에 과일이나 야채가 전혀 나지 않아 옥수숫가루에 우유를 섞어 마시는 것이 최고의 식사지요. 기근과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선교사들의 지원이 있고 없고는 그들의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일입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하는 최 선교사는 마사빗 인근 이시올로에서도 어린이 개발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현지 어린이와 1대1 결연해 매달 2만원을 지원, 학용품과 생필품을 주고 급식을 통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후원 아동들이 학교에 와서 먹는 한 끼가 이들에겐 유일한 하루 식사다. 기아대책은 케냐에서만 850명의 아동을 이렇게 후원하고 있다.
마사빗 지역은 인근 에티오피아의 영향을 받아 주민 50%가 무슬림이다. 최 선교사는 2005년 에바다선교회와 함께 마사빗신학교를 설립했다. 2년제 신학 과정과 1년제 교회지도자 과정으로 기숙사까지 갖춰놓자 지원자가 줄을 잇고 있다.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와 음악학교도 개설했다. 지난해 음악발표회는 온 동네 축제가 됐다.
2005년 7월, 우물 사용 때문에 부족간 유혈충돌이 일어났다. 최 선교사 가족은 생명의 위협 때문에 영국 BBC사의 취재 헬리콥터를 얻어타고 급히 대피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3년6개월간 이곳 마사빗에서 생활하던 최 선교사는 지난해 8월 숙소를 나이로비로 옮겼다. 아내와 두 자녀를 위해 환경을 바꿔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위의 끈질긴 권고에 일단 마사빗을 떠난 것. 그러나 언제고 다시 들어갈 마음의 준비는 돼 있다.
“현재 나이로비에서는 음악을 전공한 아내(한지선 선교사)를 내세워 음악학교를 열었습니다. 음악 교육을 통해 선교활동도 하는 거지요. 저는 마사빗을 정기적으로 다니며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어린이 후원과 교육사역에 집중하고 있지요.”
최 선교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쓰임받아 감사하며 내게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길 항상 다짐한다”며 “아무런 이유 없이 고통받고 또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위해 한국 교회가 기도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마사빗(케냐)=김무정 기자 / 2007.10.16 / 국민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