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보며 살겠느냐?
출 2:1-25
이달훈 목사(신도교회)
몇일 전에 저희 집에 벽과 장판을 다 갈았습니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한 15년 만에 가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도배하기 위해 제 방의 짐들을 꺼내면서 버릴 것들을 버렸는데요…
대청소 할 때마다 참 힘든 것이,
무언가를 버리는 거더라구요.
이걸 버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놔두었던 것들을,
이번에 또 똑같은 고민은 하다가 결국엔 다 갖다 버렸습니다.
1년에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것들인데,
왜 그리 버리기 힘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한 여인네가 뭔가를 버렸는데,
그게 딴 것도 아니고 바로 자기의 아들 새끼였습니다.
요게벳이라는 여인이,
아들인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서 나일 강에 버린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장에 나와 있듯이,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살시키려고 하기 때문이었죠.
책 하나,
수업 노트 하나 버리는데도 몇 년이 걸리는데,
이 요게벳이라는 여인은 자기 배로 나은 아들을 석 달 만에 버려야 했습니다.
책 하나 버리는데야… 청소 할 때만 잠깐 생각하면 되지만,
아들을 버려야 하는 그 상황에서의 3개월은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렇게 힘들어하며 고민을 했기에,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묘안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들을 숨겨 가면서 잘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아들을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을까에 대해 매일 생각했겠죠.
그러다 보니 숨겨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그러다 보니 죽이라고 어명이 떨어진 히브리 갓난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어야겠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나일강에서 애굽 왕실이 목욕을 한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을 겁니다.
나일강은 이집트에서 모든 풍요와 건강을 제공하는 성역으로 간주된 곳입니다.
특히 이 곳에서 목욕을 하는 왕실의 여인들은,
다산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종교 의식으로 목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5절에서 바로의 딸이 나일 강으로 목욕하러 왔다는 것은,
그냥 몸을 씻으러 온 것이 아니라,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의 제의를 드리려고 온 것이었죠.
그런 와중에 갓난 아이를 보게 되었으니,
그 아이로 인해 잘못하면 부정을 타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절묘한 작전으로,
모세가 바로의 딸에게 보일 수 있게 되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누이가 바로 뛰어나와서 갓난 아이의 양육에 대한,
현실적인 제안을 하나 합니다.
유모를 할 만한 히브리 여인을 하나 소개하겠다는 것이죠.
모세의 누이 역시 대담함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9절을 보면 모세가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젖을 뗄 나이인 3, 4살 때까지 요게벳과 함께 있었고,
결국 이스라엘 민족으로서의 중요한 성품인,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에 대해 어머님께 직접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어야 3, 4년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더욱 정성을 다해 모세를 양육했을 겁니다.
비록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성품과 신앙에 대해 잘 교육을 했었던 것이죠.
또한 비록 앞으로 이방신을 섬기는 애굽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더라도,
본래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백성이란 것을 잊지 않도록,
기도하며 가르쳤을 겁니다.
이렇게 모세가 어머니의 품에서 영유아기를 보냈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정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의 자녀 교육의 효과가 대단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거기엔 어머니의 역할이 특히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국제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을 경우,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어머니가 비유대인이면,
그 자녀를 유대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아버지가 비유대인이어도 어머니가 유대인일 경우엔,
그 자녀를 유대인으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교육에 있어서의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특별히 어머니와 3, 4세까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아이들 두뇌의 그릇이 만들어지는 시기입니다.
어머니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대로 두뇌 발달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저 젖만 먹여주는 어머니와,
아이의 두뇌와 신앙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껴안아 주는 어머니와는,
그 교육의 질이 같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이들을 껴안아주고 뭐고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힘든 노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을 잘 돌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오히려 위기가 기회로 찾아온 격이 된 것이죠.
어머니 요게벳은 유모로서의 활동비까지 받으며,
마음 편히 모세를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11절에서부터 볼 수 있는 모세의 민족관은,
바로 이러한 교육의 결과였을 겁니다.
11절에 보면 모세가 장성하였다고 나옵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이 때 모세의 나이가 40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이야기는 성격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별히 기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저 애굽의 왕실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았을 겁니다.
당시에도 40세의 나이는 적은 나이가 아니었을 겁니다.
이쯤 되면 왕실의 제반 국정에 관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따라서 모세 개인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시기였을 겁니다.
왕실 안에 있는 수많은 경쟁자들 중에서,
바로의 마음에 들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럴 때에 모세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어느날 모세는 왕궁을 떠나 민생을 둘러보러 나갑니다.
그런데 마침 자기 동족인 히브리 사람이 애굽 사람에게 맞는 것을 보게 됩니다.
순간 모세가 흥분한 것 같습니다.
자기 동족이 고된 노동을 하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매를 맞아가며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니 분이 났습니다.
마침 좌우를 살펴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서 시체를 은폐합니다.
비록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표출 방식이 도의에 맞지 않으면 일이 꼬이게 되어 있습니다.
바짝 엎드려서 복지부동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약삭빠르게 처신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지혜롭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모세는 요셉과 비교됩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있으면서 많은 일을 지혜롭게 처리했습니다.
비록 이 당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로 전락해버렸지만,
높은 지위에 있는 요셉으로 인해,
그 전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이 큰 도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모세도 왕실에 있으면서 높은 자리에서 그의 역할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행동 하나로 그런 기회가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모세는 비록 어머니의 품에서 신앙을 전수받았지만,
그의 성품은 급하고 다혈질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의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했고,
출애굽 하는 당시에도 급한 성격을 보여준 적이 종종 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절하고 있는 백성들을 보고는,
비록 화가 날 만한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돌판을 깨뜨려버린 일은,
신앙과 생활의 부조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결국엔 출애굽한 후에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물을 내어주라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명령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치고 나서,
화를 내며 물을 받아먹으로 말해버립니다.
그로 인해 결국 모세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징벌을 받게 됩니다.
모세는 좌우를 살펴보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좌우를 살펴보니 피할 만 했습니다.
좌우를 살펴보니 화를 낼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정작 중요한 위를 살피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의중이 무엇인지를 대변하는 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죠.
비록 정의롭고 마땅한 행동일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게 되면,
그 결과는 좋을 리가 없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모세는,
사실 사람 하나 죽였다고 해서 신분에 위협을 받을만한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왕실의 왕자였기 때문입니다.
애굽 사람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 사람들에게도 그는 오히려 당당한 마음을 가졌을 겁니다.
나름대로 살인의 명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결국 이 두 부류에게 모두 버림을 당합니다.
기껏 도와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에게 하는 말이라는 게,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이번에는 나를 죽일 것이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어쨌든 모세는 꽤나 큰 실의에 빠졌을 것입니다.
같은 민족이기에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을텐데,
이들은 민족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제앞가림만 하는 소인배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도 게속 반복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불평하고,
모세는 그들의 처신에 계속 화를 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하고 양육해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보살피며 양육했는데,
정말 어이없게도 나를 실망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지를 잘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내 자식이 그렇다면 한 대 쥐어 패기라도 하겠지만,
성도들간에 그럴 수는 없는 겁니다.
인내와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좌우를 살피지 말고 하나님을 살펴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들에게도 버림을 받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애굽의 왕 바로에게까지 이 일이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아까 말씀드렸듯이,
모세가 그깟 애굽 사람 하나 죽였다고 해서 처벌을 받을 만한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의 귀족이나 왕족의 권위는 백성 한 명의 목숨보다 더 컸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한 주석을 봤더니 당시 모세 주변에는 권력을 차지하려는 정권다툼이 심했다고 합니다.
모세는 그중 잘 나가는 편이었는데,
그런 모세를 제거하려는 또다른 왕자들이 주변에 있었다는 거죠.
그러던 차에 모세의 애굽인 살해 사건이 들리자,
이것을 민족적 감정으로 비화시켜서 정치 쟁점화함으로써 모세를 제거코자 했고,
이에 모세는 어쩔 수 없이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어쨌든 모세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잘 나가던 왕자의 신분도 잃었습니다.
심정적으로 의지가 되었던 민족도 잃었습니다.
결국 그는 광야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또다른 시작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미디안으로 도망간 모세는 또다시 한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급한 그의 성격이,
약한 여자들을 괴롭히는 목자들을 가만히 있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일로 인해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