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린도전서15:51)
1959년에 태어난 크바스토프의 다 자란 키가 1m32㎝, 손가락은 7개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팔과 다리마저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했습니다.
입덧을 없애기 위해 복용하던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으로 그의 엄마는 손과 발이 앞으로 제대로 뻗지 못하고 물개처럼 뒤로 꺾인 크바스토프를 낳았습니다. 홍역과 볼거리, 10차례가 넘는 감기로 갓 난 아이 때부터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했고, 의족을 한 채 운동장을 걷느라 학교 친구들의 조롱에 시달리기 일쑤였습니다.
18세 되던 해 그는 아버지와 함께 그가 소망하던 음대 입학을 위해 독일 하노버음대 학장실을 찾았지만 "독일의 교육법상 성악과에 입학하려면 최소한 한 가지 악기는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피아노라든지…." 하고 쌀쌀하게 거절했습니다. "아들의 손가락은 열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악기를 배울 수 없었다"고 변명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법대에 진학해야 했고, 은행 홍보실 직원, 라디오 방송 진행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고 싶었던 노래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스스로를 '노래하는 기계인간'이라고 자조하기도 했지만 1988년 ARD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1등상을 수상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래미상(賞)을 2차례 수상하였고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콜린 데이비스, 정명훈 등 세계적 지휘자들과 협연하고 있으며 2010년까지 공연 스케줄이 꽉 차있는 정상급 바리톤으로 성장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믿음이 없었다면 이 모든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행복한 삶을 꾸려가기만 한다면 부모님은 더 바랄 게 없다 하신다. 그러니 절대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장애인의 성공 사례도, 인생의 충고자도 아니다. 단지 장애인들의 신체적 결함이 심각한 핸디캡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티눈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20050903 동아일보, 중앙일보 참조]
크바스토프가 말한 장애인의 신체적 결함이 "보통사람들의 티눈" 정도로 받아드려졌으면 좋겠다는 말이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그 "티눈" 때문에 장애인들을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 못지않게 큰 능력과 위대한 비전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능력이 발휘되고 그들의 비전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며 급하다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