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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맛 -햄스터 기르기- /목필균
2003-10-02 13:36:37 read : 1055
"선생님, 햄스터가 새끼 낳고 있어요."
수업시간에 창가에 앉아 있던 재민이가 소리친다.
'뭐, 햄스터가!"
수업하다 말고, 햄스터 사육장으로 가보니 햄스터가 빨간 땅콩만한 새끼를 낳고는 정신없이 핥아주고 있었다. 새 생명체에 대한 신기함보다 아이들이 몰려들고 소리치면 햄스터가 놀라서 제 새끼를 잡아먹을까 봐 걱정되었다. 얼른 검은 비닐 봉지를 가위로 한 쪽을 잘라서 햄스터 집을 씌워주고는
"너희들이 소리치거나 손가락을 넣어서 만져보거나 하면 햄스터는 새끼들을 물어 죽
인단다." 하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은 햄스터가 새끼를 죽일 것이란 엄포에 놀라 가까이 가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술렁거렸다.
햄스터 먹이와 물을 넉넉히 주고는 교실 한쪽으로 옮겨 주었다. 어디 한군데 가릴 곳이 없는 사육장 안에서 대낮에 새끼를 낳은 햄스터가 어쩐지 안쓰럽기도 했다.
지난 5월 달이었다. 집에서 햄스터를 기르는 옆 반 선생님이 너무 번식력이 강해서 또 새끼를 여덟 마리나 낳았다고 귀찮아했다.
그러면 우리 반 아이들과 길러보겠다고 한 쌍만 분양해 달라고 하니까
"선생님, 따로 기르세요. 어찌나 번식력이 좋은지, 새끼 낳고 한 달도 안되어서 또 배가 불러서 기가 막혀요." 하는 것이다.
" 한 마리씩 사육장에 넣으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 그러면 불쌍하고, 빨리 죽을 것 같네."
햄스터를 길러 본 적이 없는 나는 한 마리씩 기르는 것은 어쩐지 자연 섭리를 거슬리는 잔인한 처사인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어쩌랴 길러 본 사람이 권하는데…….
그래서 아이들에게 작은 사육장 두 개를 준비시키고, 옆 반 선생님께 암컷 한 마리, 수컷 한 마리를 분양 받았다. 그리고 몇 달을 아이들의 관심 속에 햄스터는 잘 자랐다.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사육장을 사온 아이들에게 방학 동안 잘 길러 오라고 집으로 보냈다.
개학이 되어 아이들 집에서 돌아온 햄스터를 보니 정말 많이 자란 것이었다.
통통 살이 오른 수컷과 암컷을 따로 보면서 이제 한번 합사해도 될 것 같았다.그래서 약20일 전에 아이들이 다 하교한 조용한 교실에서 합사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찍찍거리며 경계를 하던 햄스터들이 진정하고 먹이를 먹는 것을 보고 퇴근하였다. 다음 날 아침 걱정되어서 일찍 와보니 두 마리가 아주 다정히 먹이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에고, 번식력이 강하다는데 새끼를 낳으면 어쩌지. 난 길러 본 경험도 없는데 감당하기 어려울거야.'
하면서 얼른 다시 따로따로 떼어놓고는 무심히 지내왔다. 그런데 그 동안 암컷이 두리두리 배가 부르더니 새끼를 가졌었나 보다.
모두 여섯 마리의 땅콩 만한 새끼들이 바둥거리며 어미를 찾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동물들이 보여주는 원초적 본능은 가끔씩 허울만 잔뜩 둘러쓴 인간의 심금을 흔든다.
이틀이 지나자 반 아이들은 언제면 새끼들을 볼 수 있냐고 보챈다. 거슬릴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생존의 조건이 불리한 환경이면 살릴 수 있는 개체만 남기고 흔적없이 잡아먹는다는 햄스터. 오늘까지 여섯 마리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다.
햄스터 어미를 위해 신선한 우유를 물통에 넣어주며 그 꼬물대는 어린것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약육강식의 비정한 자연 이치와 생명의 존엄성을 동시에 느낀다.
살면서 미물에 가까운 고 작은 것들에게 눈길을 주며 사람과 다를바 없는 어미의 모성애에 작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사람 사는 맛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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