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의 역사
서양음악사의 연대기 아래의 연대기는 하바드 음악사전(The NewHarvard Dictionary of Music)의 구분으로, 이것을 통해 볼때 보통 150년의 주기로 주목할만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으며, 300년의 주기로 새로운 음악이 나타난다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아우트라인이 서양 음악의 시대를 구분하는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850 다성음악 발생 전기 중세
1000 악보 발생 로마네스크
1150 생 마르샬 악파 등장 전기 고딕, 후기 중세
1300 신음악(Ars Nova) 후기 고딕 ... 새로운 음악의 등장
1450 플랑드로 악파 등장 르네상스
1600 신음악(Nuove Musiche) 바로크 ... 새로운 음악의 등장
1750 바흐의 사망 로코코,고전주의,낭만주의
1900 신음악(New Music) 20세기 음악 ... 새로운 음악의 등장
--중세 음악
서양 음악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그것은 다성(polyphony)음악의 발달사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서양 음악의 최초의 형태는 하나의 선율로 이루어진 단선율(Monophony)이었는데, 그 기존의 단선율이 두 개 이상의 복선율로 바뀌게 되는 과정을 서술한 것이다. 이렇게 단선률이 복선률로 바뀌게 된 첫 시기가 바로 9세기 중엽이다. 이렇게 단선율이 지배하던 시대를 로마네스크 시대라 한다. 단선율 음악에는 보통 다섯가지의 종류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한 동방교회의 설립 결과로 나왔다는 비잔틴 성가(Byzantine chant), 4세기경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형태를 갖춘 암브로지안 성가(Gallican chant), 서기 900년에 처음으로 나타나 스페인에서 성행한 모사라베 성가(Mozarabic chant), 그리고 이 시대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시되며 또한 오늘날까지 자주 사용되는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가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
그레고리오 성가는 순수한 음악임과 동시에 예배에 속하는 기능 음악이다. 이 시대의 예배에는 두 가지 기본적이 형식이 있다. 그것은 성무일과(Office)와 미사(Mass)인데 성무일과는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순서대로 예식으로 모두 8개가 있다. 성무일과를 위한 그레고리오 성가는 안티포날레(Antiphonale) 또는 안티포날(Antiphonal) 이라고 하는 의전 책에 수록되어 있다. 미사는 성무일과 보다는 늦게 발달했지만 카톨릭 교회의 기본적인 예배로 'MASS'라는 말은 '가시오 집회는 끝났소(Ite missa est)'라는 의식을 끝내는 구절에서 유래되었다.
다성음악의 발달
다성음악의 발달은 오르가눔(Oraganum)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서양음악 구조의 두가지 큰 법칙은 화성법과 대위법인데, 9세기 중엽 서양음악에서 최초의 대위법이 나타나게 된 것이며, 대위법의 기초가 바로 오르가놈에서 비롯되었다. 최초의 오르가눔은 기존 선율에 대해 5도위나 4도 아래로 중복되거나 옥타브로 한 번더 중복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것을 평행오르가눔이라고 불렀다(이런 현상을 기존 선율의 종적 확장이라고 한다.) 그 후 11세기경 기존 선율은 저성부에 놓이고 대위선율은 상성부에 놓이게 되는 자유 오르가눔과 12세기의 화려오르가눔이 탄생하게 된다.
--르네상스 음악
1450년부터 1600년대에 이르는 시기를 음악사적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이 말의 문자대로의 의미는 '재탄생'으로서, 고대 문화의 부흥을 뜻하는 말이었다. 미술등 문예의 경우에는 많은 부활을 보였지만 음악에서는 이와 같은 의미의 '재탄생'은 없었다. 음연이 현저히 넓어지고, 새로운 음공간이 개척된 것은 회화에 있어서 원근법과 비길 수 있으며, 악보 인쇄술의 발명과, 정량 기보법의 보급은 르네상스의 과학정신과 관련된다.
르네상스 기간에 있어서 음악의 성장에 가장 큰 공로 중 하나는 바로 음악 인쇄의 시작일 것이다. 또한 16세기 초에는 음악을 작곡하는 방법에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즉 지금까지는 한 성부씩 작곡하여 왔으나 여러 성부를 하나의 전체로서 동시에 생각해 내고 쓰기 시작하여 총보(SCORE)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세의 이상적인 음향은 3성부의 대조되는 음색으로 이루어진 반면, 르네상스의 이상적인 음향은 같은 종류의 비슷한 음색과 동등한 중요성을 갖는 넷 이상의 성부로 이루어진 무반주 성악 앙상블 즉, 아카펠라(ACAPELLA)이었다. 이 시대는 모방 기법의 체계적 고용으로 각 성부들은 모방 대위법의 짜임새 안에서 동등하게 음악적 동기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각 성부들은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음악은 가사에 더욱 밀착되어 가사의 의미를 음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음화(Tone painting) 즉,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라고 부르는 형식이 되거나, 가사에서 더욱 독립되어 기악 음악을 대두시켰다.
--바로크 음악
14세기 초엽의 최초의 신음악이라고 불리우는 아르스 노바의 탄생이후 두번째의 신음악이 탄생되었다. 그것이 바로크(Baroque) 음악이다. '바로크'라는 용어는 16세기 말경부터 18세기중엽까지의 보통 1600 ~ 1750년까지의 역사적 기간과, 그 시대의 음악 양식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바로크라는 말은 '불규칙적인 모형'을 뜻하는 포르투칼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말은 비정상적인, 기교만 과장된, 감각이 나쁜, 괴상한 등의 헐뜯는 뜻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음악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전 시대의 음악과 견주어 볼 때 새로운 양식이 그들에게 생소하게 보여졌을 것이라는 의미로 바로크를 이해해야 한다.
단선음악(Monody)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인 것이 무엇인가? 9세기에서 16세기까지 지배해 오던 음악적 통념은 대부분의 경우 다성음악이었다. 즉 몇 개의 성부가 얽혀서 이루는 복잡한 음악이었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오면서 음악은 여러 성부가 아닌 단성으로 이루어진 독창 양식을 창출한 것이다. 이것을 단선음악(Monody)이라 부르는데, 이상적인 그리이스의 모방은 반주를 없애고 독창 성부만 남기는 것이지만 이 단선음악은 독창과 반주의 선율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으며, 반주는 극히 축소되어 몇 개의 간단한 수직화음으로 압축되었다. 그리하여 이 단선 음악이 급기야는 오페라를 탄생시키게 되는 기초가 된 것이다.
바로크 음악은 이탈리아의 이념에 의해 지배되었다. 즉 17세기에는 플로렌스와 베니스가, 18세기에는 나폴리가 음악적으로 지도적인 도시였다. 또한 로마는 종교음악 분야에서 계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17세기 한동안은 오페라와 칸타타 분야에서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 모든 바로크 작곡가들에게 공통된 특징은 음악을 사용하여 이념과 감정을 표현 또는 재현시키려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특정 감정 표상법(Doctrine of affection)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르네상스의 무지카 레세르바타(Musica reservata)를 계승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음악은 '분명한 이념'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17세기 철학을 지배하였던 데카르트의 영향 때문이었다.
숫자 붙은 베이스(Figured Bass)
위에서 언급했듯이 르네상스가 이상으로 하였던 기본적인 음향은 독립된 여러 성부들이 이루는 다성음악이었다. 그러나 바로크의 이상적인 음악(SOUND IDEAL)은 튼튼한 베이스 위에 흐르는 선율이 붙은 것으로써, 이 베이스와 자연스러운 화성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렇게 베이스를 강조한 형태를 두고 통주 저음(Through bass), 또는 지속저음(Basso continuo)이라 불렀다. 또한 베이스 음표 아래나 위에 화성의 성격을 숫자나 기호로 지시하기 때문에 숫자 붙은 베이스(Figured Bass)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 지속 저음은 음악이 대위법에서 화성음악으로, 선적 선율구조에서 화성적 구조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고전주의 음악
이 시대의 커다란 업적은 화성 음악의 확립, 소나타 형식의 확립과 발전, 기악 음악의 확립과 발전 즉 교향곡, 근대적 협주곡, 현악 4중주, 피아노 3중주 등의 기악 형식과 연주 형식의 확립 등이다. 고전주의 시대는 보통 J.S. 바흐가 죽은 해인 1750년부터 1800년대의 중반으로 보고 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경계가 그렇게 쉽게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왜냐하면 낭만 음악의 거장인 슈만과 쇼팽이 1810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해를 시점으로 보자는 견해와 베토벤이 죽은 1827년까지를 고전주의 시대로 보자는 견해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고전주의 시대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이른바 '빈 악파'의 세 악성들이 활약한 화려한 시대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고전주의 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18세기 사상은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로 18세기는 범 세기적인 시대였다.
둘째로, 이 시대는 인본주의를 추구한 시대였다.
셋째는 중산층이 영향력 있는 위치로 발돋움하면서 예술과 학문의 대중화 과정을 보였다. 소수의 집단보다는 일반 대중을 의식하여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취향에 따라 음악은 간결한, 그리고 선명하면서도 솔직한 선율을 택하게 되었으며, 이것을 화성적인 반주로 뒷받침하는 단성음악(Homophony)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또한 규칙적인 형식미를 추구하게 되었는데 그 형식도 간결하고 솔직한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모든 형식이 어떤 일정한 주제를 설정하고 통일을 유지하는 범주에서 변화 발전시켜 가는 논리성을 갖게 되었다. 이것의 대표적인 형식이 바로 소나타 형식인 것이다.
--낭만주의 음악
낭만주의(Romanticism)는 일반적으로 19세기의 음악을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광의의 의미에서 낭만 예술이란 어떠한 시기의 현상이 아니고 여러 형태로 여러 시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19세기의 낭만주의 음악은 고전주의 음악 이상의 질서, 균형, 조절등에 대립하여 자유, 열정, 그리고 얻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를 즐겨한다. 음악의 기법에 있어서도 새로운 개혁을 갖게 되어 고전 음악 시대의 최고의 이상 형식이었던 소나타을 대담하게 변형 또는 포기하고, 그 대신 자유롭고 유동적인 형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율은 고전 음악 시대처럼 마디 수가 배수로 구성되는 규칙적인 것이 아니라, 불규칙적인 것이 많아지고 당김음이라든가 잇단 음표 등을 자주 사용해서 다채로운 변화와 표현의 폭을 넓히고, 그 음역도 확대하고 때로는 비성악음정도 서슴치 않고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복잡한 리듬, 불협화음, 새로운 음색 등을 추구하며 대대적인 관현악 편성으로 압도적인 음향을 추구하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파가니니의 자극으로 새로운 관능적인 음악이 나오고, 베를리오즈등에 의한 새로운 감각의 피아노 음악과 관현악이 나왔는가 하면 리스트에 의하여 고전적인 교향곡을 버리고 교향시가 새로이 등장하였다. 또한 바그너에 의하여 전통적인 오페라를 버리고 합리적인 악극이 창조 되었는데 철저한 반음계법을 추구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서서히 조성이 붕괴되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20세기 음악
20세기는 음악 역사상 세번째의 신음악(New Music)이 탄생되었다. 즉 14세기의 아르스 노바, 17세기의 바로크, 그리고 20세기에 바로 세 번째의 신음악이 생겨났는데, 보통 근대음악, 또는 현대음악이라 불리고 있다.
이 시기에 나타난 경향은 보다 개성화된 후기 낭만주의 성격의 것으로서, 순간적인 이상을 정묘한 음색(음화)에 고정시키려는 드뷔시의 인상주의(Impressianism), 원시적 생명력의 동경으로 나타난 스트라빈스키, 바르코크, 프로코피에프등의 원시주의(Primitivism) 그리고 예술감각과 종교체험의 일치를 꾀한 스크라빈의 신비주의(Mysticism), 제1차 세계 대전 전부터 대전 중까지에 걸쳐 유행했던 소음(타)악기로만 구성된 미래주의(Futurism)음악이 나타났다.
두번째의 시기는 1,2차 세계대전의 사이로서,1918년부터 1945년 까지를 가리킨다. 첫번째로 나타난 것은 낭만파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부조니, 힌데미트 등의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이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반음계주의(Cromaticism)의 증대로 점차 조성이파괴되어 무조음악(Atonal Music)이 나타났으며, 쇤베르크는 무조성을 지켜가면서 대규모의 악곡 구성을 가능케 하는 기법을 추구, 마침내(다만 상호관계에 형성되는) 12음에 의한 작곡기법을 창시하였고 베베른과 베르크는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후 바르토크는 수치관념을 철저히 하여 보다 다면적이고 독자적인 음악기법을 확립하였으며, 메시앙도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기의 독자적인 체계를 확립하였다. 소련에서는 당의 정치적 요청에 의하여 서구적인 모더니즘을 일체 불식해 버린다는 방침으로 신고전주의적 경향이 가장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나 19세기의 작곡기법으로서의 회귀를 보인다. 프로코피에프,쇼스타코비치, 하차두리안, 카발레프스키 등이 그들이다.
세번째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를 말한다. 쇤베르크가 이룩한 12음기법은 2차대전의 종료와 더불어 젊은 세대의 습작으로서 또는 후진국 작곡가들에 위해 채택되어진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쇤베르크가 취한 음높이뿐 아니라 리듬, 강약 음색등도 순열적인 사용에 의해 정밀한 음악 감각을 표현하는 음열주의가 대두된다. 그 외에 쇄이퍼(PierreSchaeffer)에 의해 고안된 구체음악(Concerete Music), 이것은 악기나 성대에서 제조되는 소리만을 음악의 재료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녹음기에 녹음이 된 다양한 소리를 음악의 재료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또한 전자기기의 발달로 전자음악(Electronic Music)이 2차대전이후부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즉 전자가기적 힘으로 소리를 제작, 변형, 녹음, 재생시켜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음악이 탄생된 배경은 새로운 음악적 사고와 그 사고에 맞는 음악적 재료를 자유롭게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1950년부터 서독 쾰른의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실험적으로 시작하여 1953년 창시자 아이메르트(H. Eimert)에 의하여 '음향습작 1,2'라는 곡이 되었다. 이것은 슈톡하우젠에 의하여 더욱 발전을 보게 되었다. 2차 대전 이후의 특징 중의하나는 불확정성 음악으로 연주 결과를 연주전에 예측할 수 없는 음악적 재료가 음악 속에 투입되어 있는 것으로써, 우연으로서의 음악(Chance Music)이라고도 불리우는 이것은 존 케이지를 선도로 하고 있다.
이렇게 20세기에는 음악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여러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러한 음악적 조류에 관하여는 아직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즉 이 논쟁은 20세기 현대 음악과 인간과의 관계인데, 반대적 입장은 현대음악이 인간의 지각적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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