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석기시대의 성격]
중석기시대란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이행되는 중간의 과도기단계를 말한다. 구석기가 끝남과 동시에 신석기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 중석기가 중요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중석기시대는 지질학적으로 홍적세 말기에서 충적세 초기에 걸친 시기로서 대체로 약 1만년 전의 시대이다. 이 시기를 과도기인 중석기로 보도 이때부터 인류는 동굴대신 해변, 하천, 호수가에서 떼를 지어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중석기시대는 구석기 시대의 채집경제 즉 수렵문화나 신석기시대의 농경문화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단계로 그 석기 또한 이전의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 즉, 뗀석기에서 신석기시대의 마제석기, 간석기로 가는 과도기에 위치하는 세석기시대, 즉 잔석기로 부르는 석기를 사용하는 시대이다.
석기의 제작방법은 뗀석기이긴 하지만 구석기 시대의 거칠고 투박한 뗀석기보다는 훨씬 정교하면서도 모양이 작은 세석기(잔석기)나 박편석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중석기 시대의 문화는 수렵문화이고 농경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시대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중석기문화에 대해서 미해결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중석기문화가 다음에 오는 신석기시대의 황하문명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에 대해 황하문명과의 관계성이 없다는 관점과 중석기의 수렵인이 바로 황하문명의 조상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이에 따라 중국의 중석기 시대에 대한 연구가 보다 진전되어 이들 중석기 시대의 수렵인이 신석기시대의 농경인으로 발전된 과정이라 밝혀지면 구석기시대인과 신석기시대인의 상호관계도 확실해지리라 예상하고 있다.
[중석기시대의 유적]
중석기시대의 존재에 대한 문제제기는 1930년대부터로 중석기시대의 유적은 구석기시대와 다르게 전국적인 범위를 가지지 못하였고 대부분 황하유역 몇곳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것이 특징이다. 이곳의 특징은 어로와 수렵경제가 주를 이루고 연장으로 타제석기를 위주로 간접타법으로 만든 전형적 세석기가 유행하였으며, 극소량의 마제석기도 있었지만 토기의 경우 제작되지 않았으며 대표적인 황하유역의 중석기유적으로는 사원과 영정의 문화유적이 있다.
사원문화의 유적은 섬서성조읍 대여 부근에 있는 사원이라는 모래언덕지대의 15개소에서 발견되었다. 여기에서 약 3천점이 넘는 석기가 발견되었는데 여러종류의 세석기(잔석기)와 대형의 박편석기로 분류되며, 신석기시대의 세석기유적과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토기와 마제석기가 없다는 점과 원시적인 형태인 박편석기가 다수 포함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함께 상당히 발달한 석촉이 나타나고 있다.
하남성 허창의 영정문화유적은 1965년에 발견되었는데 약 1500점이 발굴되었다. 여기의 석기는 주로 세석기, 석편석기, 역석석기로 분류되는데 석기의 제작방법은 직접타법을 통한 석편석기과 간접타법을 통한 세석기가 주가 되고 있다. 영정유적의 연대는 동물화석, 석기 등에 의해 후기 구석기 말기에서 중석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보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광서지역과 흑룡강 하얼빈, 내몽골, 산서성포현, 황하상류, 강소성 대현장 세석기유적 등에서도 중석기유적으로 보이는 석기들이 출토되고 있으나 이들 동북지역과 내몽골 신장 등 북방 초원지대는 세석기의 중요한 분포지구이기는 하나 이를 중석기유적으로 보는데는 문제점이 많으며 중석기시대의 세석기 문화가 발굴된 유적이 적기 때문에 중석기 시대의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뚜렷한 유적의 특징을 제시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