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자연대학은 지난 10년간 해고된 교수가 하나도 없네요… 세계 일류 대학이 되려면 최고 교수진 구성이 필수인데 이래서 되겠어요.”
지난달 서울대 물리학부 경쟁력 평가를 위해 방한했던 미국 스탠퍼드대 맬컴 비즐리 교수 등 해외 석학들은 서울대 물리학부가 ‘세계적 수준(World Class)’이지만 ‘세계 일류 수준(World Leading Class)’은 되지 못한다고 결론지은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이들은 서울대가 세계 일류 수준으로 도약하기에 ‘부족한 2%’로 한국 교수사회 특유의 ‘철밥통’ 풍토를 꼬집어냈다.
비즐리 교수와 미 과학한림원 짐 랭어 부총재,미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짐 시그리스트 연구단장 등 3명의 평가단은 지난달 20∼23일 서울대를 방문해 실사를 벌였다. 서울대 자연대는 지난 6월 수리과학부를 시작으로 해외 석학들을 잇따라 초빙해 자연대 산하 학부들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고 있다. 평가단은 각 학부의 연구실적,교육과정,교수진 구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세계 유수 대학과 비교하며 문제점을 지적한다.
서울대 자연대에 따르면 물리학부 평가단장인 비즐리 교수는 실사작업이 끝난 뒤 자연대 오세정 학장을 만나 “교수임용기록을 보니 지난 10년간 자연대 전임강사 전원이 부·정교수로 임용됐고,쫓겨난 교수는 단 한 명도 없다”며 “한국에선 임용심사 탈락자를 다른 대학들이 기피하는 풍토 때문에 대부분 채용한다던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에선 전임강사 중 보통 절반 정도만 교수로 채용되고 나머지는 탈락한다”며 “서울대의 이런 온정주의는 교수의 질을 저하시키고 세계 일류 도약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식 교수임용시스템을 도입하고도 최고의 교수진을 갖추려는 미국 대학의 노력은 외면해 경쟁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비즐리 교수는 “서울대의 예산과 자금 규모를 고려하면 모든 학부를 세계 최고로 키우기란 불가능하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버릴 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오 학장은 “비즐리 교수가 선택과 집중을 주문하면서도 ‘서울대는 학제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학문간 평등주의 풍토가 심해 과연 (선택과 집중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던졌다”고 전했다.
평가단은 ‘세계 일류 수준’을 특정 연구분야에서 다른 대학들이 그 대학의 연구에 관심을 보이고 따라하는 수준이라고 규정하며, 서울대 물리학부는 아직 이에 못 미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60년이란 단기간에 ‘세계적 수준’으로 접어든 점은 “경이적인 발전 속도”라며 높이 평가했다. 오 학장은 “비즐리 교수 지적이 맞는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특성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며 “최선의 개선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