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참으로 바쁘고도 은혜로운 한 달이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노회가 있었고, 교회적으로는 교육관 건축이 막바지에 이르러 신경이 많이 쓰이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쁘고 힘들었지만 고난주간과 부활주일로 인해 영적으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으니 참으로 은혜가 많은 한 달이었습니다.
이제 5월이 됩니다. 만물이 새싹을 피우고 푸르름으로 온 대지를 물들이는 실록의 계절이지요. 그래서 참으로 따뜻하고 소망이 넘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일년 열 두달 중 가정에 소홀히 해도 되는 달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이런 기간을 정해 놓은 뜻은, 삶에 바쁜 나머지 잊어버리고 있던 가정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한 배려일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어린이 주일>이 됩니다. 특별히 금년에는 온 교회 성도들이 정성을 모아 아름다운 교육관을 지어 어린이들에게 선물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 어린이 주일을 가리켜 <꽃주일>이라고도 부릅니다. 그야말로 어린이는 꽃과 같이 예쁘고 소망스러운 존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는 꽃과 같이 순결하고 맑고 아름답지만 벌레가 붙기 쉽고 상처가 쉽게 납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할 수 있으며, 평생 비뚤어진 삶을 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꽃과 같은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모든 통계가 그렇듯이, 범죄자의 대부분은 꽃피던 어린 시절에 문제가 있었다고 증거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어릴 때 너무 가난해서 이렇게 되고 말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것이 꽃을 상하게 하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남보다 더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을 것이고, 비뚤어진 생각을 갖게 할 수 도 있겠지요. 그러나 꼭 그런 것 만은 아닙니다.
며칠 전 감동적인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름답게 꽃을 가꿀 수가 있음을 일깨워 준 글이었습니다. 거리를 청소하며, 고물상을 운영하는 환경미화원 가정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아들이 고급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고 들어 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아들을 다그쳤습니다. "어디서 난 옷이냐? 사실대로 말해 봐라!" 며칠째 계속되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아들이 사실대로 털어놓았습니다. "죄송해요, 버스 정류장에서 손 지갑을 훔쳤어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내 아들이 남의 돈을 훔치다니...' 잠시 뒤 아버지가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환경이 어렵다고 잘못된 길로 빠져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경찰서로 데려가 자수를 시켰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아들의 범죄 사실이 하나 더 밝혀졌고, 결국 아들은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아들이 남의 돈을 훔친 것에 마음 아파하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재판이 있는 날 법정에서 어머니가 울먹였습니다. "남편의 뜻대로 아들이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엄한 벌을 내려 주세요." 아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가 저 때문에 돌아 가셨어요. 흐흐흑..." 이를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드디어 판결의 시간이 왔습니다. 재판관이 말했습니다. "기각 처분을 내립니다. 꽝!꽝!꽝!" 벌을 내리지 않은 뜻밖의 판결에 어리둥절해 하는 당사자와 주위 사람들에게 판사가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앞두고 꽃처럼 예쁜 우리 교회의 아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부모된 우리들의 모습과 함께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 22:6)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 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