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역사학과 역사신학
2006-09-02 12:41:22 read : 3473
중세의 역사학과 역사신학
중세의 역사학과 역사신학의 관심은 주로 다음과 같은 두가지 계기에 쏠려 있었다. 즉 보편사의 시대구분을 해 보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도(일곱개의 세계적 시대의 원형으로서의 일곱개의 창조의 날)와,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구원희망은 역사의 고통속에서 그것이 반박되는 것을 보는것이 아니라 오히혀 그것의 시험(시련)을 찾는다는 것의 증명에 쏠려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누구보다도 오토 폰 프라이징(Otto von Freising)과 루페르트 폰 도이츠(Rupert von Deutz)가 지적될 수 있다.
그런데 신학적으로 흥미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요아힘 폰 피오리(Joachim von Fiori)인데 그는 자신의 당대에 "성령의 나라"의 도래를 기대하였다. 이 성령의 나라는 "세번째 나라"로서 (창조와 더불어 시작된)아버지의 나라와 예수에 의해 시작된 아들의 나라에 뒤따라 출현해야 한다. 삼위일체이론을 역사의 이해를 위한 열쇠로 이용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뒤에 독일 관념론에서 다시 재현된다. 이러한 신학적 역사해석의 철학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정신은 한 편으로는 신의 성령으로서 세계와 역사의 전체를 지배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인간에게 불어 넣어진 정신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자기규정을 가능토록 해 준다는 데에 근거 해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나라는, 거기에서는 필연성과 자유가 일치하고 따라서 그때까지는 많은 개개의 사람들을 하나의 전체적 질서에로 끌어 모으기 위해 필요하였던 모든 외적 권위와 폭력이 이제 불필요해 진다는 특징을 지닌다. 전체적 과정으로서의 역사는 그리하여 진리의 점진적인 계시일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또한 완전한 자유에로의 돌진이기도 하다. 물론 이 "제3의 나라"의 도래에 결부되어 있는 종말희망은 일체의 광신적인 당파주의와 결합될 수도 있다. 그것은 나치즘의 "제3제국"에 의한 오용의 결과, 그 근원(즉 성령의 다스림에 대한 신뢰와 일체의 폭력의 무용화에 대한 희망)과의 일체의 연관성을 상실하기에 이르기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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