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교회사 개요
2006-09-02 12:44:16 read : 3986
중세교회사 개요
⊙중세 전기(750년∼1057년) 교회사 개요 - 프랑크 왕국이 로마를 지배하는 동안 가톨릭 교회는 계속 발전되었으며 교황령이 생겨났다. 그러나 교회가 국가의 보호와 혜택을 받으면서 황제가 교회를 간섭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교회가 세속화되고 교권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프랑크 왕국의 멸망과 더불어 가톨릭 교회도 암흑기를 맞이하여 교회가 로마 귀족들에 의해 지배되고(880년∼962년), 후에는 독일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내정간섭으로 자율권이 상실되기에 이르렀다. (962년∼1046년). 아울러 교리 논쟁으로 서방 라틴 교회와 동방 비잔틴 교회가 갈라지게 되어 오늘날까지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전례가 다르다. 1046년 두 교회는 완전히 결별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중세 후기(1057년∼1300년) 교회사 개요 -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등극으로 교회의 쇄신의 계기를 마련케 되었다. 세속권의 지배를 받던 교회가 자주권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는데 11세기에 시작한 십자군 운동 바로 그것이다. 한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의 각성으로 교회는 큰 힘을 갖게 되었는데 특히 많은 수도회가 창설되었으며, 그 가운데 기사 수도회는 십자군 운동의 기수 역할을 담당하였다. 십자군 운동의 목적은 이슬람 교도들이 탈취한 성지의 탈환이었는데 그 실행과정에서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접촉으로 학문 예술에 큰 발전이 있게 되었다. 또한 당시 보다 열심히 살아보고자 시작되었던 청빈 운동이 극으로 흘러 이단이 생기게 되고, 이를 지키기 위한 종교 재판까지 등장되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도 생겨났다.
⊙14세기, 15세기 교회사 개요 - 유럽은 지방 분권화가 이루어지면서 단일성을 점차 잃어갔으며 교회는 교황청의 아비뇽 천도와 대이교들의 출현으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일부 교황들은 문화적인 업적은 쌓았지만 교회 쇄신 차원에서는 부족하였으며, 많은 고위 성직자들도 그들의 영적인 사명을 망각하게 되면서 교회는 붕괴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적극적으로 신심활동을 하며 성당의 건립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신자들의 신심활동 중에도 많은 부분이 개인의 영달을 위함이었기에 미신적인 요소가 많았고, 물질 추구에 비중을 두어 교회 내에서는 비판과 개혁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었다.
⊙16세기 교회사 개요 - 1517년 10월 31일 독일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사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는 대사 남용에 항의하여 95개 조항의 신학 명제가 담긴 편지를 두루 보냈는데 이는 정통 신앙의 기저를 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이로써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분열되는 불행한 종교개혁 시대(1500년∼1650년)가 열렸으며, 이를 시작으로 스위스에서 츠빙글리와 칼뱅의 종교개혁, 재세례파의 급진적 종교개혁이 일어나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영국에서는 헨리 8세를 중심으로 한 성공회가 탄생되었다. 이렇게 되자 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개혁 바람, 쇄신 바람이 일어났는데 1545년∼1563년까지 트리엔트에서 전세계 주교들이 모여 퇴락한 교회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신앙교리의 혁신을 모색하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의 거센 반박을 받아 충격이 심했던 가톨릭 교회는 새 시대를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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