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 1-9절 말씀을 보면 유명한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온다 . 여기에는 씨가 뿌려진 네 곳이 언급되어 있다. 길가, 돌밭, 가시 떨기, 좋은 땅 - 이렇게 네 곳이다. 왜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에 서는 제대로 결실이 되지 않는가? 왜 좋은 땅에서만 결실다운 결실 이 가능한 것일까? 결실치 못하는 세 장소와 옥토의 본질적인 차이 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 차이란 오직 한 가지뿐이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는 본래 있던 모습 그대로 있는 땅이지만, 옥토는 일구어진 땅이다. 다시 말해 옥토란 갈아지고 흙이 뒤집어엎어진 땅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곡괭이, 삽, 호미, 쟁기 등이 그 땅을 깨고, 부수고, 갈아엎는 과정을 거친 땅이라는 말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 땅에서 불필요한 것들은 다 제거되고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옥토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옥토라 불리는 땅은, 땅의 입장에서 보면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과 아품을 겪은 땅이다. 곡괭이로 찍을 때마다, 호미로 파헤칠 때마다, 쟁기로 갈아엎을 때마다 그 땅은 찢기고 으스러지고 가루가 되는 고난과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고난의 결과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수반하는 옥토가 된 것이다. 고난을 외면한 길가, 돌밭, 가시떨기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있을 뿐이다. 결실과는 전혀 무관한 채로 말이다. 오직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땅만이 결실을 맺는 좋은 땅이 된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여 삶의 열매로 결실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이 먼저 깨어지고 부수어지고 으깨어져야 한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과 아픔의 과정이다. 그러나 그 아픔이 없이는 절대로 마음이 옥토가 될 수 없고 결실 또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고난이 결코 고난일 수 없다. 그 고난은 확실한 결실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은총이요, 보증서다. -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이재철, 홍성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