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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세 가지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 세 가지 은혜를 오늘 본문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첫째,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은혜입니다.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비굴해지기도 하고 무력해지기도 하고, 연약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는 죽기를 무서워하는 우리들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히 2: 15).
베드로도 죽기를 무서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에도 열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 문을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요 20:19). 잡혀서 죽지 않기 위해서 그런 비굴한 일을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목적 중의 하나는 죽기를 무서워하는 우리들을 죽음의 공포에서 놓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죽음의 무서움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음의 위협과 협박을 받으면서도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죽음의 무서움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멋지고, 자유롭고, 여유로운 일은 없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사망을 향해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까? 바울의 외침의 근거는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무덤에서 의 부활을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느니라.”(고전 15:3-4).
이것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이 십자가의 주님과 부활의 주님을 직접 체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하고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내가 죽어야 할 죽음을 나 대신 죽으신 것을 믿기 때문이고, 내가 살아야 할 영원한 부활의 삶을 나 대신 먼저 사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사람은 죽어도 죽지 않고 다시 산다고 바울이 증거했습니다(고전 15:23).
바울은 주님이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의 몸도 죽은 다음 다시 영광의 몸으로 부활할 것을 분명하게 믿었습니다(고전 15:51-52).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죽음을 사모하기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은혜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무슨 일에 힘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다음부터 주의 일에 힘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살아 계시고, 자기에게 할 일을 맡기시고, 자기를 인도하시고, 자기와 함께하시고, 자기를 축복하시는 분이심을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안디옥에서 주님의 보내심을 받아 소아시아에 가서 선교했고, 드로아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게도냐에 가서 선교했고, 에베소와 두로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도 주님의 분부를 받아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했습니다. 바울은 한평생 주의 일에 힘쓰는 삶을 살았습니다(행 20:24).
이와 같은 바울의 삶의 비결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데 있었습니다. 바울은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 15:58) 여러분, 자기 일에 너무 힘쓰고 있습니까? 피곤해지고, 공허해지고 맙니다. 그러기에 주의 일에 더욱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삶은 보람과 기쁨과 감격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셋째, 하늘을 바라보는 은혜입니다. 바울은 전에는 땅을 바라보았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난다음부터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하늘에 계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이미 하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 스데반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6)
바울은 인생의 최후 결산이 하늘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판단이나 자기 자신의 판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마지막 날 주님이 하늘에서 자기를 향해 어떤 판단을 하실지를 항상 생각하며 살았습니다(고전 4:4-5). 이처럼, 바울은 하늘에서 주님이 상 주실 것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
하늘을 바라보면서 땅에서 주의 일에 힘쓰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땅을 바라보며 땅에 얽매어서 사십니까?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에서 주님이 상 주실 것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교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