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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한 사람이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할 수 있는가?
2007-04-18 13:55:33   read : 2171

어떻게 한 사람이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할 수 있는가?

[신성종 목사의 평신도신학(72)] 어떻게 한 사람이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할 수 있는가?



먼저 그리스도는 결백한 희생자인가에 대해서부터 살펴보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위해 죽게 허락하신 것은 공의가 아니라 불의의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부도덕이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예수님께서 억지로 희생 제물이 되셨다면 그렇게 비판할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십자가의 영광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자발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와 아버지가 하나라는 것을 아는 데 있다. 빌립보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이중연결에 있다. 그리스도의 이중고리란 하나님과 예수님의 하나 됨과 예수님과 죄인들의 하나 됨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의 하나 됨은 보지 않고 예수님과 죄인들의 하나 됨만을 본다면 하나님의 방법은 잘못된 것이며 주님의 돌아가심은 결백한 희생자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대속의 교리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물론 대속의 교리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어떻게 한 사람이 전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을 수 있는가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면 그것은 말이 되지만 어떻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가?

솔직히 세상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돌아가신 분이 누구인가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의 효능성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요 완전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고후 5:19).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의 생명과는 달리 무한한 가치가 있으며 또한 그의 돌아가심도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구원한 모든 생명의 가치를 다 합친다 해도 그리스도 한 분의 신적 생명의 가치를 따라가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을 우리의 죽음과 같이 보아서는 안된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돌아가심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 효력을 가지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소 한 마리가 돼지 열 마리를 보상하고도 남듯이 그리스도 한 분의 돌아가심은 온 인류의 죄값을 보상하고도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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