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해비타트 김기선 홍보실장
▲ 한국해비타트의 사랑의 집짓기 현장 © 한국해비타트
지금 이 순간에도 23분마다 한 채씩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택이 지어지고 있다? 개미집도 아니고 사람 사는 집인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그것도 일반 분양 아파트가 아니라 무주택 서민들만을 위한 사랑의 집이라면? 놀랍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이 놀라움의 중심엔 ‘사랑의 집짓기’로 유명한 ‘국제해비타트’가 있다.
1976년 미국에서 시작된 해비타트 운동은 지난해 한 해에만 전 세계 100여국에 2만5천세대의 집을 지었다. 지난 30년간 국제해비타트를 통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삶의 희망을 찾은 사람들의 수는 약 100만여명에 이른다.
이런 국제해비타트의 ‘놀라움’을 한국에서는 ‘한국해비타트’가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해비타트의 역사는 국제해비타트의 절반인 15년에 불과하지만, 국내 512세대ㆍ해외 520세대 등 1천세대 이상의 건축실적을 기록하며 아시아 지역 해비타트운동의 중심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국해비타트의 김기선 홍보실장을 만나 한국해비타트 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비전을 들어보았다.
‘지미 카터’가 한국해비타트의 ‘전환점’
▲ 한국해비타트 김기선 홍보실장©뉴스미션
“‘지미 카터 특별건축사업’(JCWP)이 한국해비타트의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소수의 기부자들과 몇몇 교회의 재정ㆍ인력만으로 어렵게 이끌어나가던 해비타트 운동이 이 사업을 계기로 일반인과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봉사운동’이 됐으니까요.”
출범 초기 해비타트는 정말로 ‘궁핍’했다. 1993년 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로 출범해 첫해 모금한 후원금의 액수는 말 그대로 ‘제로’. 1994년 몇몇 교회 성도들 300여명과 직접 기계로 흙벽돌을 찍어가며 장애인 가정을 위한 최초의 해비타트 주택 3세대를 ‘겨우’ 완성해냈을 뿐이었다.
1996년 4세대 건축, 1997년 6세대 건축…. 한국해비타트의 사정은 몇 해가 지나도록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2000년, 한국해비타트는 대전환을 위한 칼을 뽑아들었다.
“JCWP를 유치하기 위해 2000년, 광양에 총 32세대의 해비타트 마을을 지었습니다. 필요한 건축자재와 인력을 대부분 포스코 측에서 지원받았죠. 김대중 정부 시절 장관을 역임했던 정근모 이사장님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JCWP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한국해비타트가 일정 수준 이상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국제해비타트로부터 인증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한국해비타트는 과거 6년간 전국에 지은 해비타트 주택의 수와 맞먹는 주택을 성공적으로 건설해 냄으로써 그 능력을 국제해비타트에 입증해 낸 것이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후원금이 크게 늘어 2001년에는 100억원에 가까운 후원금 실적을 올렸지요. 1995년 후원금 총액이 7백만원이었던 것이 비추어보면 괄목할 만한 성장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수확은 일반인들이 ‘해비타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점입니다.”
뜻하지 않은 ‘종부세’에 정책 노선 변화
한국해비타트는 올해에도 전국 6개 지역에서 56세대의 해비타트 주택 건설사업을 펼치고 있다. 해비타트 건축 현장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기쁨의 땀방울을 나누고 있지만, 2007년을 절반 이상 넘긴 지금 한국해비타트의 마음은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다. 종합부동산세의 불똥이 한국해비타트로 튀었기 때문이다.
“한국해비타트는 일단 선정 지역의 토지를 해비타트 측에서 매입한 후, 그 위에 주택을 짓습니다. 그러다보니 전국 512세대 해비타트 마을의 부지가 서류상으로는 전부 한국해비타트의 소유로 돼 있죠. 그러다보니 엄청난 금액의 종합부동산세 고지서가 날아든 겁니다.”
올해 한국해비타트가 납부해야 할 종합부동산세는 약 1억여원. 기부금으로 재정을 꾸려가는 한국해비타트로서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액수다.
“기부금으로 세금을 내야 한다면 기부자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스러운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토지 소유 정책을 조금 변경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토지는 한국해비타트에서 직접 소유하며 입주자에게는 지대를 물게 하지 않았다. 이는 해비타트가 기독교 단체로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앞으로는 토지를 분양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20년간의 회전기금 납부가 끝난 가정에게 5년간 매매불가 조건으로 토지까지 양도하는 정책을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특히 토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아서 토지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잡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해외 다른 해비타트의 경우처럼 한국에도 토지를 좋은 뜻으로 기부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제는 ‘삶의 질’로… 해외 진출에 박차 가할 것
앞으로 한국해비타트의 목표는 단순한 ‘집 짓기’가 아닌,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일련의 복지 활동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국제해비타트의 방침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냥 집을 지어주는 것만으로는 무주택 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없다는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국해비타트도 앞으로 차츰 주택 건설 이외의 분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현재 국제해비타트는 몽골,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에 수세식 화장실을 건설해주는 사업을 진행중이다. 이는 해비타트가 단순한 하우징(Housing)에서 공공복리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는 상징적 신호탄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은 대부분의 가정에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돼 있기 때문에 국제해비타트의 사업을 그대로 따오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한국 특성에 맞게 고안해 낸 공공복리시설이 바로 ‘공부방’이다.
“해비타트 입주민의 대부분이 아무래도 저소득 서민층이다 보니 자녀 교육 문제에서 많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거든요. 공부방을 통해 자녀는 물론 부모의 안정도 도모하고,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기회도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김기선 실장은 “앞으로 한국해비타트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기관으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한다. 해외에 활발하게 진출해 한국해비타트의 이름으로 수많은 전 세계 무주택 주민에게 삶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데 앞장서고 싶다는 말이다.
“베트남, 인도 등 아시아권에 해비타트의 손길을 원하는 곳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 곳에 한국해비타트가 직접 달려가 ‘해비타트’와 ‘코리아’의 깃발을 함께 휘날린다면, 정말로 ‘그 분이 보시기에 좋은 일’이 아닐까요?”
이재영 기자 / 2007.08.07 / 뉴스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