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산에서 대형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53)씨는 지난 달 외식비로 무려 2000만원을 지출했다. 결제는 본인과 가족들 명의의 카드로,이용식당은 자신의 음식점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음식점 주인이 자신의 카드로 수천만원의 식비를 직접 지출하는 일이 발생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이른바 ‘카드깡’ 때문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본인 카드로 결제한 금액도 매출로 잡혀 3% 안팎의 수수료를 빼고 결제 2∼3일 후면 카드사로부터 현금이 나왔기 때문이다. 장사가 안돼 종업원 월급과 식자재값이 밀린 데다 대출금을 회수하겠다는 은행직원의 등쌀에 견디다 못해 ‘카드깡’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지난해 7월 처음 ‘카드깡’을 할 때는 월 500만원으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결제후 45일 정도면 날아드는 카드빚이 오히려 족쇄가 돼 월 2000만원을 ‘깡’해야될 정도로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이씨는 “월말이 다가오면 종업원들이 퇴근하기가 무섭게 카드를 긁는 게 일상생활이 됐다”면서 “겨우 겨우 버티고 있지만 연말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24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 2耙4분기 동안 ‘카드깡’을 하다가 적발돼 거래정지되거나 한도가 축소된 카드 가맹점은 모두 2만8257곳으로 최근 3분기만에 6배 이상 급증했다. 카드깡을 하다 제재를 받은 가맹점은 지난해 3·4분기 4175곳에서 4·4분기 1만3894곳,올 1·4분기 2만6584곳으로 급증추세에 있다.
또 ‘카드깡’으로 거래정지되거나 한도가 축소된 카드회원 수는 지난해 3·4분기 2만4251명,4·4분기 3만357명,올 1?4분기 2만5366명,2?4분기 2만9368명에 달했다.
최근 들어 ‘카드깡’이 다시 고개를 드는 가장 큰 원인은 서민들과 음식·숙박업 등 영세 자영업자들의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즉 은행들이 안정적인 자산운영이라는 이유로 서민대출을 기피하고 카드사들도 현금서비스 한도를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있는 탓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신용 하위등급인 7∼10등급의 시중은행 대출잔액은 지난해 3월 129조1800억원에서 12월말에는 114조100억원으로 12% 감소했고,4∼6등급은 221조4600억원에서 218조700억원으로 2% 줄었다. 반면에 같은 기간 1∼3등급인 우량고객의 대출잔액은 186조1500억원에서 220조1600억원으로 18% 증가했다.
경원대 경제학과 홍종학 교수는 “한때 수그러졌던 카드깡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서민경제가 그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서민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하면 정부의 경제살리기 정책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