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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주실 복을 얻기 위하여
2007-03-02 13:27:15   read : 2219

                  테마설교            마침내 주실 복을 얻기 위하여

마 4:8-11
이갈렙 목사(J-hop미션 주임)


성경을 기뻐하고 항상 그 말씀을 따라 살고 계시는 귀하를 기뻐하는 갈렙 목사 주의 평안을 끼쳐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제 4장 8절부터 11절까지를 본문으로 하였습니다.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 드니라

저는 그동안 ‘마침내 받을 복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려왔습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이나 첫 번째 시간과 두 번째 시간 말씀한 것을 함께 되돌려 정리해가면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오늘 본문 8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절에 “가로되 만일 네가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하고 제의를 하였었는데요 ― 과연 그 천하만국이 마귀의 것이어서 마귀 제 마음대로 누구에게 주고 말고 할 수 있었을까요?
마귀는 이에 대하여 역시 같은 공관 복음인 누가복음 4장 6절 하반 절에 보면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즉 ‘줄 수 있노라’라고 ‘그 천하만국에 대한 권한이 자기에게 있다’라고 하는 당위성까지 곁들여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럼 과연 이 마귀가 언제 인수받았으며, 또 누구로부터 받았는가? ― 궁금하여 집니다.
본래는 이 천하와 그 만국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아시는 바와 같이 아담에게 정복하고 다스리게 했습니다. 아니 아담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이치가 되어버린 하나님 말씀 베드로후서 2장 19절을 보면 ‘진 자(者)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진 자(者)는 지기 전에 자기가 가졌던 모든 것 다 이긴 자의 것으로 내어놓아야 합니다. 이긴 자는 그 진 자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과 그 진 자(者)까지도 자기의 소유로 삼게 되는 그런 세상 이치라는 것이지요.
이 이치에 따라서 아담이 마귀에게 지면서 아니 바꾸어 말씀을 드리면 ‘마귀가 아담을 이기면서 그와 그리고 그가 가졌던 천하만국을 넘겨받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시기 전까지는 마귀의 말이 맞는 것인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도 이것을 인정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을 회복하도록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스라엘의 회복할 때가 언제냐고 자꾸 궁금해했던 것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인정하셔서 그 마귀의 신분에 대하여 이 세상 임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하신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을 가진 자’, ‘이 세상은 그의 것’ 이런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 요한복음 14장 30절에 예수님의 이런 표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요 14:30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비록 마귀의 “넘겨주리라” 한 이 말이 그렇다면 사실일수는 있으나, 성경대로 그를 이겨서 뺏어 가져야지 절하여서 얻는다면 지금은 자기 것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 조금 전에 소개 드린바 성경 베드로후서 2장 19절대로 라면 마귀에게 절하고서 마귀의 것을 받는다면 그것은 받아도 받은 것이 아니며, 지금은 당장 부요를 붙잡을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 마침내는 망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은 마귀의 것이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지금 받고 있는 이 시험 배경이, 이스라엘 광야 사십 년 그 기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당신께서 받고 계신 이 시험의 모델이었고, 그리고 또 그 시험은 신명기 8장을 전후한 그 기록된 상황들이 예수님의 이 받고 계신 광야 시험의 배경이었던 바, 신명기 8장 16절 하반 절에 기록된 “이러한 시험은(이 광야의 주림은)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니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이 자기를 시험하시는 의도를 잘 아셨기에 ―
예수님께서는 돌들로 당장의 떡을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사십 일이나 주려서 떡이 필요하지만 이 돌들로 당장의 떡 만들지 아니하였고 즉 마다하였고(비록 그에게 능력이 있었어도 말입니다),
또 매우 위험하고 매우 불안한 성전 꼭대기에 세워졌으나 지금의 당장의 해결이 아니라 마침내 복을 위한 하나님의 시험인줄을 잘 아셨기 때문에 (나중의 복을 위하여 지금 주린 예수님이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데, 성전 꼭대기에 서서 당장 뭔가 안정을 얻어 보고자 하는 이 상황을 주셨던 것도 이 당장에 뛰어내려 안착을 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느냐 아니하느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느냐 아니해주시느냐 그것이 시험하는 이의 요구하는 답이 아니라 ‘그 마침내 복을 받기 위하여 이 어려운 때를 어떻게 하는가?’라는 것을 보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기 때문에) 당장 뛰어내리지 않고 계속해서 두려워하며 떨고 서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약에 마귀가 제시한 말씀을 따라 시편 기자가 노래했던 것처럼 ‘이 말씀도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에 기록된 것이니 나에게도 그에게 하심 같이 해줄 것이라’라는 어떤 자세로서 믿음을 내어놓고 뛰어내렸더라면 마치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반석에 물을 내어주시고 만나를 주셨음 같이 그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붙들어 주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보였기 때문이고,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움직일 수 없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리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또 딴 데 기록된 대로 마치 이스라엘이 먹고 마셨으나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함이 되어(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했던 결과가 되어서) 당장은 어려움을 해결했어도 그 마침내는 복이 아니라 영원히 멸망당하였던 것을, 영원히 망하고 말았던 것을 살펴본다면 헤아려본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던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마귀가 제의한 이 천하만국 양도 양수 건도 비록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단호히 그 유혹을 물리치셨으니 그 시험 배경이 당장에 부요한 권세자 되는 것이 아니라, 당장에는 낮아지고 가난하여지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높아지고 부요해지는 그것을 원하셔서 이 시험을 만드셨던 것이니 ―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부요를 넘겨받을 수 있는 형편이 된다 할지라도 이 시험을 자기에게 치르고 계신 하나님이 바라시는 자기의 모습은 지금 당장 부자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어려움을 더 참고 견디고 그리고 하나님만 바라다가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마침내 복을 지금 당장 찾아오는 해결보다 더 크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드려야 했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셔야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시험 배경을 잘 알고 하나님 요구하시는 답된 말씀을 택하였다’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에게 제시한 모든 내용들을 보면 기록된 성경 속의 한 내용이기는 해도 지금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지금 이 예수님에게 필요한 것 위주로 말해주었던 것이고, 이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지경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물리쳤던 것은, 또 다른 데 있는 기록(역시 다른 데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 자신이 처하고 있는 당장의 형편을 복으로 바꿔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이 사건의 자기 상황에서 요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에게 보고자 하시는 지금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지금 뜻하는바 하나님의 생각은) 다른 데 기록된 말씀이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른 데 기록된 말씀을 더 붙잡았었다’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한 이유는 ‘마침내 복’, 신명기 8장 16절 하반 절에 기록되어있는 “이 마침내 복을 받게 되어있다”라고 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 이 주리고 있는, 그리고 성전 꼭대기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그리고 당장 천하만국을 얻을 수 있는 이 상황 이 시험 앞에 주께서 바라시는 것은 ‘이 당장이 아니라 마침내 받을 복’이었기 때문에 당장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지금 이 상황 속에 있는 자기로부터 받아내려고 하는 그 믿음과 그리고 그 결단의 말을 예수님께서는 찾아서 내어놓았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만일 당장이 다급하여, 아니 당장의 것이 너무 좋아서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었더라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 중 ‘나온 말씀’일수는 있었어도 오히려 ‘지금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은 어겼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대할 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중 전(前)에 나왔던 말씀, 또 앞으로 하나님께서 쓰실 말씀을 대할 수가 있어요. 미리 찾아 볼 수가 있어요. 들을 수가 있어요.
그러나 모든 말씀 중에 내게 필요하다고 하여 내게 유익한 말씀만 끌어내어서 그 말씀을 담보로 해서 “하나님 이 말씀하셨으니 내게 이 말씀대로 해주십쇼.”라고 공격적으로 기도하고 나간다면, 또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내어놓는다.”라고 했을 때 ― 그것이 또 다른 곳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는 말씀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 한꺼번에 챙겨서 ‘지금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당장 내게 필요한 말씀보다도 더 우선하여 붙들어야 된다.’라는 것이 주님께서 마침내의 성공을 위하여 가르쳐 주시는 선택의 방법인 것입니다.
또 불안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안착을 하였더라면(하나님께서 그 기록된 성경 시의 가사의 내용처럼 자기를 붙들어 주셔서 다치지 않게 해주실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내어놓고서 붙들어 주심을 받았더라면), 그것은 자기의 믿음을 따라 하나님께서 순식간에 계획에 없던 것이었지마는 공격적으로 내어놓는 그 믿음을 따라 해주었을 것입니다.

내 믿음을 따라 하나님은 지금 원하시는 것이 그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주셨다면 나의 그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따라 뛰어내린 나의 그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은 받아내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지금 말씀’이 아니라, 내가 정한 나의 때 나의 유익한 목표에 따라서 ‘하나님이 시험받으신 결과’를 낳았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종의 형체로 이 세상에 오사 아무것도 없이 주리실 대로 주리신 예수님 마귀에게 절 한 번 하면 천하만국을 얻어내겠는데, 그리고 마침내는 그 천하만국을 얻어내어 회복해 하나님께 돌려드리기 위해서 큰 사명을 가지고 오셨다했는데, 그 목적이 빨리 이루어지게 되었다라고 해서 마귀에게 절을 했다고 한다면 결국은 마태복음 6장 21절에 기록된 대로 ‘두 주인을 섬긴 꼴’이 되는데 ― 하나님께서는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가능치 않다”라고 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고 있는 사람을 원치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판단이었습니다.

더욱이 지금 광야에서 시험을 받고 있는 자기를 신명기 6장 ‘이스라엘의 광야 건’을 모델로 하여 자기를 시험하고 계신 것을 주님은 잘 알고 계셨는데 ― 이 광야 신명기 6장 혹은 8장 이때의 사건을 모델로 해서 시험을 받으신다면 그때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신명기 6장 15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신 즉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킬까 두려워하노라”라는 말씀이 바로 그때 이스라엘의 그 광야 시험에서 하나님 하셨던 말씀이시고, 그 하나님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당장에는 해결을 했지만 마침내 멸절되고 말았던 것을 주님께서는 다 알고 이 시험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광야에로 이끌려 가실 때부터 ‘나는 하나님의 하신 성경의 여러 사건들 중에 어느 모델에 들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사십 일을 아무것도 먹을 수 없게 하시며 밤낮으로 주리게 하시는 것을 보시고서는 ‘아! 하나님의 역사 속 이스라엘의 그 맛사에서 있었던 바로 그때의 일, 만나 사건이 있었던 바로 그때의 일, 바로 그 현장을 모델로 해서 나를 시험하고 계시는 구나’라는 것을 알고 들어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주리고, 아무리 성전 꼭대기에 올라서고, 아무리 만국 영광이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 시험 중에 내게 바라시는 나의 행동은 무엇인가, 내 입의 고백은 무엇인가?’라는 답을 미리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진리를 가지고서(이 아는 바 지식을 가지고서) 마귀를 간단하게 물리쳤고, 예수님께서는 기록된 여러 말씀 중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지금 자기에게 해당되는 말씀만을 선택하는 놀라운 지혜를 여기에서 발휘하심으로써 그의 마침내 복을 향한 출발을 성공으로 시험 치러 출발 할 수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잘 아셨을 뿐만 아니라, 그는 그 당장 보다는 '마침내'를 택하셨던 것이 그 마침내 천사들이 나와서 그를 수종들게 되며, 그때부터 ‘엄청난 마침내의 성공’을 위하여 한걸음, 한걸음 출발해 나가는데 그 이후로는 어려운 일을 당한 적도 없었습니다. 시험받고 유혹 받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마귀에게 대하여 이겨버리고 나니까(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버리고 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를 시험할 필요 없이 그때부터는 능력으로만 함께 해주시는 것 ―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그에게 하실 일로 하나님께서는 판단하셔서 함께해 주셨던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출발을 하면서 마침내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것은 ― 기록된 말씀 대하는 예수님의 자세 그 자세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지금 나오는 말씀’을 붙들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헤아려서 내게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더 우선’하여 선택하였고 ― 하였던 바로 이것이 바로 자기가 받고 있는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키(key)였음을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배우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에 처한 귀하의 광야 예수님 같은 그런 형편을 두고서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당장 어떻게 해결해보려고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마침내 주실 복을 위한 귀하께 대한 하나님의 예수님 받으셨던 것 같은 그런 시험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 같은 시험에 시험 들지 마시고, 시험자(試驗者)께서 요구하시는 그 요구 답을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아시었으니 이 시험을 잘 치러서 지금 당장의 해결보다는 마침내 주시는 그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명기 8장 16절 하반 절 “하나님이 너를 시험하사”라고 하는 말씀을 여러분께서는 여러 차례 듣게 되셨는데, 아마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한다.”라고 하시는 이 말씀을 상상치도 못하신 분들이 더러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 1장 12절을 그리고 13절까지를 살펴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나를 시험한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이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이 신약 야보고서 1장 12절, 13절에 있는 이 기록된 말씀 쪽만을 붙잡고 계신 분들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이스라엘을 시험하셨고, 이처럼 예수님을 시험하셨다’라고 하는 것, ‘이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하신 것처럼 우리도 시험하신다.’라고 하는 것을 도무지 받아드리려 하지 아니하시는 분들이 계실 꺼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편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성경의 한 부분만을(자기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한 부분만을) 끄집어내어 붙잡고 희망하고 믿음을 보였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끌어와서 견주어 보았던 것입니다.
내게 유익한 말씀보다는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내용이 기록된 어느 말씀인가?’를 찾아내어, ‘나의 유익 쪽보다는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뜻이 어느 기록된 말씀에 담겨있는가?’를 모든 말씀 중에서 챙겨내어 ― 하나님의 지금 하시는 말씀을 붙들었고, 그 말씀을 수용했다는 바로 그것이지요.

성경에는 문제의 답이 둘도 있고 셋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도를 두고 말한다면 ‘외쳐 합심하여 기도하라’는 말씀도 있고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히 조용하게 하라’는 기도 방법의 말씀도 기록으로 있습니다.
헌금에 대하여도 ‘그 이름을 일일이 대면서 그와 그 가족이 복을 받도록, 보상을 받도록 하라’고 하는 헌금자의 이름을 대라 한 기록의 말씀도 있고, ‘왼손이 한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는 그런 기록된 말씀도 있습니다.
금식에 대하여서도 ‘그저 재에 앉아 머리를 풀고 뒤집어쓰고 굶주리면서 불쌍히 보이도록 금식하라’는 기록된 말씀도 있고, ‘그런 모습을 내보이지 말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오히려 금식하면서도 금식하지 아니하는 것처럼 하라’는 기록된 말씀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말씀이 하나님의 기록된 성경에 다 함께 들어있는데 여기에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나의 유익을 위하여 내게 필요한 말씀만 붙잡고서, 또 다른 기록된 데를 택하는 사람들의 그 택함을 비방하고 비판하는 경우도 더러 볼 수 있는데 ― 마귀의 유혹은 그 사람의 유혹을 따라, 사람의 필요를 따라 택하여 주었습니다마는 예수님의 그 대응을 보면 자기의 당장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지금 하시는 말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 하나님의 뜻이 이 여러 말씀들 중에 어디에 가 있는가?’를 더 우선한 또 다른 기록된 말씀을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이 택하셨으니 ―

이 예수님의 지혜로운 선택을 여러분께서 마찬가지로 지혜롭게 하심으로써 여러분 앞에 놓여져 있는 생명과 사망 가운데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생명 택하시기를 바라고, 복과 화 가운데 하나님이 보장하실 수 있는 복을 택하여 그 마침내 연종의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마침내 받을 복을 이 말씀을 접하는 모든 귀한 이들로 받게 해 드리기 위하여 예수님의 마침내 복을 위한 당장의 희생을 모델로 제시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좇아 예수님처럼 기록된 여러 말씀들 가운데 당장의 내 유익을 해결하는 말씀보다는 하나님의 입으로 지금 나오는 말씀이 기록된 어느 말씀에 가있는 지를 모든 말씀 가운데서 택하되, 나의 쪽 보다는 하나님의 쪽을 택하여 당장 내가 고난을 더 겪어야 할지라도 그로서 마침내 유익을 주시려 하는 그 하나님의 복을 택하고, 그 복을 받아서 마침내 성공하였던 예수님처럼 마침내 복을 붙잡기를 원하는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주여 마침내 복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위하여 성령의 충만하심과 감동하심이 필요하오니 성령이여 임하셔서 예수님처럼 이끌어 주시옵시고, 예수님처럼 시험 받을 때 예수님처럼 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그리고 마침내 성령의 큰 권능으로 수종들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구하여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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