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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통해 알게 하신 연단의 비밀
2007-01-19 14:19:12   read : 2164













유학을 통해 알게 하신 연단의 비밀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훈련 받았습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라는 욥기서의 말씀처럼, 모세는 광야기에서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늘 생각합니다. 우리의 광야기는 어디일까. 언제까지 일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영어를 좋아하던 중학교 시절부터 유학을 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땅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른 언어를 가지고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는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크면서 알게 되었지만, 언어를 통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생각을 교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그 시절, 사촌들이 하나씩 유학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남매처럼 지내던 사촌이 중3 때 조기 유학을 떠났고, 뒤를 이어 한 해 후에 그의 동생이 또 유학을 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친척 사이에서의 유학은 점점 퍼져 나갔습니다. 사촌 언니도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단순 어학연수뿐만 아니라 아예 외국에서 학위를 따기 위해 장기적으로 나가 있는 친척들도 생겨났습니다. 친척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하나 둘씩 외국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조기유학을 비롯해서 유학과 어학연수 등이 붐을 타기 시작했던 시절이었기도 했습니다.


저는 4남매의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밥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는, 그저 평범한 집안의 자녀였지만, 그렇게도 원하던 유학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4명의 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낸다는 것은 부모님으로서도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큰아이의 욕구와 희망을 알고 계셨던 부모님이었지만, 하고 싶다는 것은 뭐든 어떻게 해서든 시켜주고 싶었던 부모님이었지만, 유학만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시며, 늘 미안해 하셨습니다. 한참 유학이 붐을 이루던 시절, 신문에서 누구는 비행기 값만 가지고 단신으로 어느 나라에 가서 학교를 마쳤다느니, 장학생으로 학교에 입학했다느니, 끝도 없이 기사가 쏟아졌지만, 어떻게 하면 유학이라는 것을 갈 수 있는지 대체 감이 안 잡히던 저에겐 그야말로 남의 이야기였습니다.
당장 비행기 값이라도 있어야 외국에 나갈 것이고, 나간다고 해도 당장의 생활비는 손에 쥐고 나가야 할 것이며, 워낙 철저하신 부모님이 무작정 저를 외국에 보내 주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겁 많은 제가 아무 것도 모른 채 혼자 외국에 나가 그곳에서 삶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유학이 가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막연했습니다. 그렇게 막연하게 나가면 모두들 힘들다고, 어느 정도의 계획은 세우고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만류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우스개 소리로 유학 가는 사람 만나 결혼하라고 했고, 어떤 친구는 워킹 홀리데이라도 나갔다 오는 것이 어떠냐 했고, 어떤 친구는 이제 그만 유학의 꿈을 접고 착실히 돈이나 벌라고 따끔하게 충고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시도에 시도를 거듭하다가 결국 직장에 갔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미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대학에서는 맛보는 사회와 진정한 사회의 현실은 엄연히 달랐습니다. 몇 년간의 직장 생활에 회의가 들었고, 특히 술과 담배, 회식 문화 등은 더욱 더 저를 지치게 했습니다. 결국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며, 그렇게 원하던 유학도 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훈련 받았습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라는 욥기서의 말씀처럼, 모세는 광야기에서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늘 생각합니다. 우리의 광야기는 어디일까. 언제까지 일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모세의 40년을 생각한다면 나는 아직도 먼 여정 속에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죽는 그 순간까지, 천국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광야일 것입니다. 그 광야 속에서 세찬 바람과 강렬한 태양, 그리고 여러가지 경제적 어려움, 정신적 고통과 외로움을 거치면서 우리는 더욱 강하고 의연한 그 분의 자녀로 자라날 것입니다.

한창 사춘기를 겪을 시절부터,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면, 좀 더 인생을 편하게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늘 같은 것 같습니다. 공부할 때는 공부할 때의 어려움과 괴로움이 있고, 직장에 다니면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있고, 결혼을 하면 관계에서의 부족한 모습들에 대해 힘들어하고, 항상 모든 위치에서의 곤고함이란 있는 듯 합니다.


어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열망도 물론 있었지만, 남들은 다 가는 듯한 유학, 나도 한 번 가 보고 싶다, 라는 욕심과 시기 어린 질투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세 끼 밥 먹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나도 다른 사람처럼 여유 있게 더 누리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나고 있었던 걸 깨닫습니다.

다시 대학에 가고, 유학을 다녀오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친척을 설득해야 했으며, 공부하면서 일해야 했고, 이 길이 바른 길인가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습니다. 그렇게 광야 한 복판을 지나며 제가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일하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온전한 육체와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 큰 자녀의 또 다른 방황을 기도로 함께 해 주신 부모님과 동생들이 고마웠습니다. 부모님 걱정 덜 수 있도록 교환학생이라는 제도를 통해 학교의 배려로 안전하게 다녀 올 수 있는 길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 놀라웠습니다. 쉽게 유학 갔으면 그와 더불어 쉽게 살았을 제 인생을 오랜 시련 끝에 더욱 견고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매 순간 느껴졌습니다. 오랫동안 이루지 못한 꿈에 인내를 가지고 더더욱 노력하는 모습으로 제가 변해갔습니다. 부유해서 외국에서 유학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힘들게 하루하루 일하며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직접 보고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일본인들을 보며, 소수이지만 그들이 일본 땅을 바꿀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원하고 원하던 공부를 하고 돌아왔지만, 저는 아직도 광야기에 있습니다. 다시 취업이라는 문제와 싸워야 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은 직장 풍토 속에서 또 견뎌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광야가 더 이상 무섭고 두렵지 않음은 그 속에 저를 향한 하나님의 세밀하신 계획과 사랑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더욱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가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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