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례의 기원

        오늘날 그리스도교에는 다양한 형태의 세례 의식이 있지만 그러한 형식상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세례받는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세례는 어디에서 기원하였을까, 신약성서는 세례에 관하여 어떻게 증언하고 있을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물을 사용한 종교적 제의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다른 고대 종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현상이었습니다. 물론 종교마다 제의 형식이나 거기에 부여했던 의미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몇 가지 공통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러한 공통점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세례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화, 신의 죽음 또는 생명에의 참여, 통과의례(입회의식)로서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물은 부정해진 사람들이나 제의를 행하였던 제사장들을 정화시키고 거룩하게 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레14:8 15장; 레16:4).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사용하는 치유와 정화의 물로 언급되기도 하였습니다 (겔36:25; 슥13:1). 또한 물은 바다나 홍수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고 비, 샘물, 강으로 형상화되어 생명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유대교에서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위하여 법적인 성격의 공식적인 의식으로서 세례의식을 시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종교적 순수와 정결을 강조하였던 쿰란공동체와 같은 집단들에서는 세례의식을 공동체의 중요한 의식으로 삼았습니다. 기원후 1세기 경에는 트랜스 요르단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세례 운동 그룹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세례를 언급하는데 사용된 동사 baptizo는 물에 담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명사 형태로는 baptismos, baptisis, baptisma가 사용되었는데, 특히 baptisma는 그리스도교 이전 문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세례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외에도 loutron, apolouein 등이 사용되었읍니다.     

        신약성서에 언급된 세례는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합니다. 신약의 네 복음서들은 요한의 세례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가1:4-8; 마태3:5-11; 누가3:3-17; 요한1:26, 31).
네 복음서들의 세례 요한 묘사는 상이한 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증언들을 통하여 요한의 세례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첫째 물을 사용하였습니다 (마가1:8; 마태3:11; 누가3:16; 요한1:26, 31, 33). 이것은 후에 성령으로 (마가1:8; 요한1:33) 혹은 불과 성령으로 (마태3:11; 누가3:16) 행해질 예수의 세례와 구분됩니다. 둘째, 개종하는 이방인들을 위한 유대교의 세례와는 달리,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를 대상으로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특별히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가1:5; 마태3:5; 누가3:7이하). 셋째, 요한의 세례는 개종의식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죄의 회개를 촉구하는 '회개의 세례'(마가1:4; 마태3:11; 누가3:3), 죄를 용서받는 정화의식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것은 요한의 세례의 종말론적 성격과 관련되는데, 죄를 용서받고 정결해져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피하고 하늘 나라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마태3:2; 누가3:6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과 관련). 이와 함께 요한의 세례는 오실 메시아,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것으로 언급됩니다 (마가1:3; 마태3:3; 누가3:4). 넷째,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함으로써 (마태3:8; 누가3:8) 그의 세례의 윤리적 성격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약성서의 증언 속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 갱신 운동의 하나였던 요한의 세례를 '메시아' 예수와 관련하여 종말론적으로 해석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예수의 세례

        마가복음서와 마태복음서는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전하고 있고 (마가1:9-11; 마태3:13-17), 누가복음서는 그것이 요한의 세례였는지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으나 예수께서 세례를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누가3:21). 요한복음서는 예수께서 요한에게 왔다고 할 뿐 (요한1:29), 그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거나, 아니면 단순히 '세례를 받았다'는 언급을 피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들 중에서 가장 먼저 쓰여진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마가복음서는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단순한 보도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3장 14-15절은 여기에 어떻게 해서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아마도 요한이 예수께 세례를 받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누가복음서는 세례 요한에 관하여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현저한 증언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받았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둘의 관계를 모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3:21-22). 이러한 현상은 요한복음서에서는 더욱 심화되어 예수께서 '요한에게'는 물론이려니와 '세례를 받으셨는지' 조차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단지 예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증언하기만 합니다 (요한1:29, 34, 33).

        다소 상이하게 소개되고 있는 예수의 세례 단락들에서 우리는 몇 가지 예수의 세례와 관련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에게 있어서 '물'과 관련되었던 세례가 예수에게 있어서는 '성령' (마가1:8; 요한1:33) 혹은 '성령과 불' (마태3:11; 누가3:16-17)과 연관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네 복음서는 모두 예수의 세례가 성령의 계시와 그의 하나님의 아들됨을 확인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마가1:10-11; 마태3:16-17; 누가3:22; 요한1:32, 34). 예수의 세례 시에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은 구약 시편 2편 7절의 말씀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사야 42장 1절의 '고난의 종'에 관한 언급을 상기시킵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예수의 세례는 그의 십자가 수난을 예시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의 죽음을 '세례'로 표현했던 것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가12:50 물론 이 구절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예수의 세례가 지닌 특징들에는 요한의 세례에 비하여 보다 그리스도교적인 내용들이 추가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는 이제 성령이나 예수의 정체성 자체와 관련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복음서의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세례를 예수의 권위와 연결지으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를 예수의 권위 아래 두려는 노력은 마태복음 28장 19절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표준새번역) 고 한 부활한 예수의 최후 위임 속에 잘 반영되고 있습니다.

  3) 바울의 세례

        바울은 세례에 관한 직접적인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른 문제들을 다루는 가운데 세례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7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표준새번역)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세례를 경시여긴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은 바울이 다른 동역자들이 세례주는 것을 용인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세례를 주는 것은 의식을 집행하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였던 것같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아볼로와 같은 선교자 주변에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는가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의 이름으로" (eis to onoma) 라는 세례 공식을 알고 있었으나, "그리스도 안에" (en Christon) 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en to onomati tou kuriou Iesou  Christou) 라는 공식을 사용하여 세례를 그리스도에의 '소속' 개념과 연결시키고 있으며, 그것을 세례받은 자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과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 1-14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는 그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것이며, 그와 함께 묻힌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세례는 세례받은 자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현실화하는 것,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는 세례는 그리스도가 살아나신 것처럼 새로운 생명 가운데 살아가게 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주장은 세례를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윤리적인 동시에 종말론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세례는 믿음과 연관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맏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갈3:26-27, 표준새번역)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의 구원 행위는 복음 선포 안에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그리고 세례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로 얻게 되는 새 생명은 현재의 윤리적인 의무를 다하는 것이며, 마지막 날에 그의 부활에 참여할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의 윤리적, 종말론적 이해는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어주심을 받고, 거룩하게 하여 주심을 받고,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습니다." (표준새번역) 또한 바울은 세례받는 사람들은 한 그리스도, 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다고 말하여 세례가 지닌 공동체적 성격에 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고전12:13).

        바울은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행했던 세례 의식의 의미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빛에서 조망하고 있으며, 그것을 종말론적 소망 안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윤리적인 삶으로 구체화시킬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