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보답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
2006-10-19 04:14:34

은혜 보답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
역대하 32:24-26절, 336.347.495장.(추수 감사주일)

히스기야가 하나님으로 부터 많은 사랑과 기적을 체험하고서도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받은바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할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으나 회개할 때 다시 그들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은혜 보답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축복을 받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보답해야 한다는 식의 동기부여가 아니라 그 보답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신앙고백 적 차원에서 취급했습니다. 보답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품에서 떠났다는 의미이고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날 때 그들을 징계하시면서 까지 그들을 부르시고 주님의 품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그리고 히스기야를 그렇게 살려주신 하나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1년 동안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 하셔서 우리들에게 풍성한 열매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풍성한 열매들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농부가 1년 동안 들판에 나가서 모진 비바람과 무더위 속에서 곡식들을 가꿉니다.

수고는 농부가 했지만 뿌린 싹이 돋아나고 줄기를 내고 꽃을 피고 열매를 맺는 이 신비로움이 어찌 이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오직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를 생각해 볼 때 어찌 찬양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현대 교회가 11월 셋째 주일을 맞이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추수감사주일로 정해 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 추수감사주일의 기원은 영국 정부 아래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청교도들이 지금의 미국 땅에 도착하여 그 땅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처음 지금의 미국 땅에 도착했을 때 개간되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예배당을 세우고 땅을 개간했습니다. 개간되지 않는 밀림과 같은 땅을 파고 곡식을 뿌렸습니다. 무서운 병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맹수들의 방해와 도전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초조하게 하는 것은 과연 이 씨앗을 뿌릴 때 열매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지탱할 수 있으려면 이 씨앗이 돋아나서 열매를 맺고 추수를 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씨를 뿌렸습니다. 의심하면서 뿌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고 자신들의, 생명(生命)이 씨앗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告白)하며 하나님께 예배(禮拜)를 드리면서 뿌렸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지 않았는지, 그들의 기도(祈禱)를 외면(外面)하지 않았는지 씨앗이 돋아나고 많은 열매로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오늘날은 이 추수감사절은 단순히 이런 추수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서 1년 동안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감사축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1년 동안 우리들의 생명을 지탱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좋은 직장을 주셔서 굶어죽지 않게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지금 이 지구상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부족으로 죽어 가는 인류가 많습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저 북녘 땅에는 아직도 나이 많으신 노인들과 어린이들 중에 영양부족으로,

죽어 가는 사람이 많다는 귀순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고백입니다. 금년에는 륭천 열차 폭파사건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민족은 인도주의적인 정신, 혹은 신앙의 정신으로 많은 위문품을 전달하고 중장비도 지원해 주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되고 하면서 투정을 한다고 합니다. 회담 때에도 오히려 거들먹대며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회담을 유도하려는 것이 공산당의 기본전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하지 못한 민족이나 사람은 망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사업을 지켜주시고 자녀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 민족을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고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성경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우리 나라와 같이 남.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쪽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남쪽을 택하셨습니다.

왜 남쪽이냐 면 그 남쪽에 속해 있는 유다 지파를 통하여 장차 메시야가 오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남쪽 나라 이름을 그냥 유다라고 합니다. 그 유다 나라는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1.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유다 나라 가운데 13대 왕이었던 히스기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히스기야가 죽을병(炳)에 걸렸지만 그는 하나님께 간절(懇切)히 기도하게 되자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 연장 받는 기간 3년 째 되는 해에 아들 므낫세를 낳았습니다.(대하33:1).

그러니까 아들을 낳게 해서 유다지파의 순수성의 혈통이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그 혈통이란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유다 지파를 통하여 장차 메시야가 오시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그 유다 지파의 혈통은 단절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히스기야의 지파의 혈통 가운데 히스기야의 왕이 아들이 없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 약속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죽을병에 걸려 있는 히스기야에게 은혜를 주셔서 병을 고쳐 주시고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 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24절에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 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이적을 보이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2.그러나 교만하여 은혜를 보답지 않습니다. 25절에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驕慢)하여 그 받은 은혜(恩惠) 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히스기야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치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히스기야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유다 나라 전체에까지 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왕 한 사람의 범죄 행위를 이스라엘의 전체에게서도 묻고 있습니다. 이런 예는 여호수아서에서 아간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진노를 이스라엘 전체(全體)에게 묻는 것과 같습니다.(수22:20).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우리 자신(自身)들에게 허락(許諾)하셨던 축복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물(微物)인 짐승도 은혜(恩惠)를 입은 주인(主人)을 위해서 몸을 바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추수감사는 아주 작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감사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우리들의 얼어붙은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 보다 더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일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히스기야도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였는데,

그 이유는 바로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잠16:5절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罰)을 면치 못하리라"고 합니다. 교만(驕慢)한 사람과 어울리는 그 사람까지 교만(驕慢)한 사람으로 평가(評價)하시겠다고 합니다.

잠18: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滅亡)의 선봉(先鋒)이요 겸손(謙遜)은 존귀(尊貴)의 앞잡이니라"는 말씀을 기억(記憶)해야 될 줄 압니다.

3.그러나 하나님께서 회개하면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한 교만하여 은혜를 갚지 못했던 히스기야 일지라도 그가 마음을 고쳐먹고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26절에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구약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 품을 떠났다가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언약의 갱신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제 일성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 천국은 예수님 자신을 지칭합니다. 회개해서 그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회개는 우리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야 합니다. 세리가 이제 다시는 옛날 그런 모습으로 살지 않겠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예수 믿으면 우리 삶 속에서도 회개와 반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나의 감사생활, 즉 하나님의 은혜 보답의 생활은 정상적입니까? 은혜에 보답한 히스기야에게 주신 축복은 무엇입니까?(27절) 그 축복은 어떤 축복입니까? 그 축복은 결국 구약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이런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구속의 은혜를 늘 감사하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드리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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