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위기 재래시장 분노 폭발
대형슈퍼 허가 싸고 부천시―재래시장 갈등
경기도 부천시와 이 지역 재래상인들이 다국적 유통업체 설립허가를 놓고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부천시측은 ‘법적하자가 없다’며 설립허가를 내줄 방침인 반면 재래시장 상인들은 ‘대기업과 지자체가 밀실행정으로 영세상인들을 죽인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재래시장 육성 특별법까지 제정하며 재래시장 육성에 나서고 있으면서도 한쪽으로는 대형 유통업체의 입점을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래시장 육성을 위해 연간 수천억원씩 쏟아붓게될 예산만 낭비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상인과 지자체의 갈등=부천시 지역 7개 재래시장 상인대표들과 홍건표 부천시장은 지난달 27일 시장 접견실에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가 운영하는 수퍼마켓 ‘수퍼 익스프레스’건축허가를 놓고 격론을 벌였지만 입장차만 확인했다.
재래시장 상인대표들은 수퍼 익스프레스 건설부지가 재래시장 현대화 계획에 따라 조만간 리모델링 작업이 이뤄질 고강제일시장과 불과 30여m 떨어진 곳에 있어 부천시가 설립을 허가할 경우 재래시장은 ‘고사’된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들은 또 부천시가 이 기업이 제기한 건축허가 행정소송에서 최근 패소했지만 항소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홍 시장은 “시에서는 할 만큼 했고,이미 행정소송에서 져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만큼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건축허가 과정과 밀실행정 논란=삼성테스코측은 지난해 8월 이 일대 홍모씨 소유의 땅 480여평을 임대해 지하 1층,지상 3층 연면적 600여평 규모의 홈플러스 수퍼익스프레스 건축 허가를 신청했다가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같은 해 10월19일 건축허가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바로 이틀 뒤인 21일 땅주인 홍모씨 명의로 건축허가를 재신청했고 다음날인 22일 부천시의회는 주택지역 내 상업시설물 제한을 기존 2000평방미터에서 1000평방미터로 축소 개정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대형수퍼는 해당 부지에 들어설 수 없지만 조례안 통과 하루 직전에 건축허가 신청이 접수돼 삼성테스코측은 이 조례를 적용받지 않게 된 것.
부천시는 법적으로 대형수퍼 입점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계속되는 상인들의 반발로 건축허가를 차일피일 미뤄오다 결국 행정소송에서 졌다.
상인연합회는 시측이 밀실행정을 통해 삼성테스코측과 대형수퍼 설립을 추진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삼성테스코측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를 제시했다. 서류에는 삼성테스코의 모 임원이 부천시장을 면담하고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 건축주 명의를 변경키로 합의했다고 적혀있다.
이에 대해 홍 시장은 “따로 삼성테스코측과 면담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고 상인들은 전했다.
손연훈 경기도 재래시장 연합회장은 “입점부지를 지역주민을 위한 복지시설이나 시장 주차용지로 시가 매입해 줄 것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며 “재래시장을 육성하겠다는 정부 취지에 따라 현대화 시설 작업이 예정돼 있어 주차장 부지가 필요한데도 시측은 오히려 삼성테스코 측의 편의만 봐줬다”고 주장했다.
◇재래시장육성특별법 세부 시행,곳곳 불협화음=정부의 재래시장 육성특별법이 각 지자체의 수수방관 속에 대형할인점의 ‘무한 영토 확장’과 정면 충돌,있으나 마나 한 법으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에서는 부천의 경우처럼 상인들의 반발에 부닥치자 대형 유통기업들이 해당지역 지주 명의로 건축허가를 받고 있다. 지난 2월부터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는 충남 논산시 화지시장 상인들과 전북 김제의 상인들은 해당지역의 건축주가 대형유통업체와 근저당설정 관계에 있다며 위장출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자체가 대형할인점 설립 규제를 위해 조례를 제정해도 미리 건축허가 신청을 해둔 업체가 많은 데다 해당지역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 이 조례는 무용지물로 전락한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재래시장 현대화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해당 재래시장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 지 철저한 검증 작업 없이 예산을 마구잡이식으로 집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천시 내부 문건에 따르면 내년부터 2009년까지 560억원이 투입되는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에서 ‘외부기관 지적사항 및 평가결과’와 ‘예비타당성 조사’ 항목은 비워져 있다. 이미 상권이 죽은 재래시장에 막대한 시설비만 쏟아붓는 게 아니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인호 부천시 재래시장연합회 자문위원은 “살길을 스스로 찾아나서려는 상인들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고서는 정부의 재래시장 육성정책은 선심성,과시성 행정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 20050804 / 부천=서지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