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문화 개관 1
2007-10-25 10:07:37

그리스 문화 개관 1

 

I. 그리스 문화 1) 그리스 문화의 특색 II. 시대구분  III. 그리스 미술 (1)그리스 미술의 조형상 (2)그리스 건축 (3)그리스 조각 (4)그리스 회화 (5)그리스 공예 IV. 그리스 문학 (1)서사시 (2)서정시 (3)역사학 V. 그리스의 사상 (1)그리스 관념론의 발전 (2)그리스 자연철학 VI. 그리스 신화 /참고자료


I.그리스 문화

1)그리스 문화의 특색

고대 그리스가 세계에 남긴 최대의 유산은 문화이며 그 특색은 다음과 같다.

(1)폴리스에서 이룩된 것으로, 자유롭고 밝으며 정신적인 여유를 지닌 시민들의 풍요한 생활을 바탕으로 하여 이룩되었다는 점이다.

(2)전체적인 국왕의 권력이 강했던 오리엔트의 문화가 중압감을 주고 엄격했음에 대하여, 그리스 문화는 자유롭고 합리적인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3)오리엔트 문화가 신 중심주의로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각각 다른 것으로 보았던 것에 반해 그리스는 인간 중심주의 세계였다. 이 때문에 여러 신은 인간과 흡사한 것으로 여겨져, 인간적이며 합리적인 학문· 예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2)시대 구분

처음에 분류했던 세 시대를, 다시 미술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상술 할 수 있다.

(1)알카익 시대 : BC 8~5 세기 초기의 미술로 커다란 환조조각은 BC 7세기의 중엽 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리스 미술의 시초는 이곳에서 엿볼 수가 있다. 이미 이 시대의 작품은 그리스적 특질을 뚜렷이 나타내게 되었으며 BC 6세기초에는 어느 정도의 형식까지 갖추게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것 중 가장 오랜 것으로는 <니칸드라(Nikandra)의 봉납상(BC 7세기)> 이다. 이 작품 이후에 <케라미이에스(Kheramyes)의 봉납상> <섭신의 입상>에 이르는 동안의 변천을 더듬어 보면 BC 7세기로부터 6세기에 이른 동안의 여성 착의상의 발전 경과가 대체로 짐작된다. 남성 나체상으로서는 BC 6세기로부터 5세기 초엽에 이르는 동안의 아폴론형(Apolfon형)의 입체상이 많이 만들어졌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 허다한 소녀상의 얼굴을 보면 대체로 미소 진 표정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미소가 알카익 조각의 현저한 특색이다.

또한 조각과 건축물 기둥의 오더(order)도 이미 단엄하고 웅경한 도리스 양식과 우아하고 온유한 이오니아 양식이 구별된다. 항아리의 그림은 처음 붉은 바탕에 까만 형상을 그려낸 흑화식 이었으나 BC 530년경으로부터는 이와는 반대로 검은 바탕에 빨간 그림을 그리는 적화식으로 변해갔다.

BC 5세기의 초기로부터 항아리의 그림은 발달의 절정에 이르렀다. 알카익시대 말기에는 아파이아 신전(in 아이기나섬)의 풍과 같은 훌륭한 군상조각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2) 엄격양식 시대 : BC 480~450 년경

알카익 시대와 클래식 시대의 중간시대이다. BC480년경으로부터 그리스의 조각은 차차로 알카익 미술의 구속을 벗어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알카익 후기의 쾌활하고 우아한 안면 표출에 대한 반동의 증후를 나타내게 되었다. 아케익 스아일에 대신하여 엄숙한 표정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대표작으로는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의 모든 조각, 디루페이에서 과낸 청동어자상, 에우보아에 부근의 바다에서 파낸 청동 포세이돈상 등이 있다. 이름이 전해지는 조각가로는 칼라미스, 오나타스, 피타고라스 등이다.

(3)클래식 시대 : BC 5세기 중간~320년경

그리스 미술의 전형적인 시대다. 첫째, 건축에 있어서 하중과 지주에 정력학적인 관념을 유럽에서 처음으로 뚜렷하게 나타냈으며, 이것을 다시 고도한 조화감과 결합해냈다. 알카익 시대 말기에 세워진 아이기나의 아파이아 신전·엄격양식 시대의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전과 같은 준엄한 형식의 전 단계를 거쳐서, 파르테논 신전에 이르러 클래식의 완성을 이룬다.

대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아크로폴리스의 부흥계획을 수행하였다. 이오니아 양식이 그리스 본토에 퍼지게되었으며 펠로폰네소스전쟁 시대에는 코린도(Corinth) 양식이 발생하였다. (밧사이의 아폴론 신전· 리시크라테스 기념비 등), 둘째 조각은 BC 5세기 중간 경으로부터 뮤론을 비롯한 페이디아스(Pheidas) ·폴리클레이토스(Polykleitos)와 같은 거장들이 나타나 독자적인 경지를 세웠다.

이어 BC 4세기 경에는 스코파스(Skopas) · 프락시텔레스(Praxiteles). 리십포스(Lysippos)의 3대 조각가가 나타나 활동하게 외었으니 조각사상 보기 드문 호화로운 시대였다. 기술상의 모든 곤란이 이 시대에 극복되었으며 인체의 여러 형식의 표현이 완성된 경지에 이르렀다.

셋째 회화는 BC 475~450년경에 활동한 폴리크노토스(Polygnotos)에 이어서 제욱시즈(Eeuxis), 아펠레스(Apollos) 등이 등장하여 활동하였다. 폼페이에서 출토된 알렉산더 모자이크(Alexander Mosaic)는 BC 4세기 말엽의 회화를 모사한 것이라 추측되는데 이와 같은 소수의 유품과 항아리 그림에 의하여 그리스 전성시대의 위대한 회화의 일면을 엿볼 수가 있다.

(4)헬레니즘 시대 BC 320~30년 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적 대제국 건설의 웅도를 품고 동쪽 제국에 원정하게 되자,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전하게 되었다. 즉 그가 죽은 후, 그의 후계 장군들이 오리엔트의 새 영토를 분할하여 새로운 나라를 이루게 되자,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인 세력과 더불어 문화도 본토를 떠나 이런 지방으로 흩어져 갔다.

새로운 시대의 대표적인 중심지는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등이다. 그리스의 문화는 이와 같은 국토 고유의 문화와 접촉하고 또 지배자의 보호 밑에 종래와는 색다른 형식으로 변하여 약 3세기에 걸쳐서 번영하였다. 이러한 시대(대체로 BC320~330)를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의 미술은 모든 방향에서 클래식을 초월하여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자유스럽고 풍부한 극적인 것으로 변하여 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사모트라궤(Samothrce)의 니케상(Nike像)> <페르가몬 제단의 부조>, <빈사의 골사람>,<라오쿤 군상> 등이다. 자연과 현실의 진실을 추구하는 자연주의와 현실주의가 급작스레 대두하였으며 개인적인 모습의 인격적인 묘사로 된 초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자연과 현실에의 관심으로부터 취재의 범위가 넓어졌으며 세태적인 모티브도 취급되게 되었다.

3)그리스 미술

(1)그리스 시대 미술의 조형성

BC 10세기부터 BC 1세기 말 로마에 정복되기까지의 약 9세기에 걸쳐 그리스와 남불 이탈리아· 에게해 주변 지방 등지에서 번영하여 오리엔트 세계로 전파된 미술 양식이다. 건축이나 조각의 초기 양식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등 오리엔트 미술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형식을 배운 데 지나지 않고, 그 세부적 표현에는 그리스인의 독자적 양식과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이를테면 이집트에서의 그리스 조형은 그들 종교관과 같이 전통과 형식 속에 정지해 있는 데 반해, 그리스에서는 종교가 현세적이어서 그 조형은 사실적이며 동적이다. 그래서 그 미술은 정체되는 일이 없이 항상 종전의 형식을 깨뜨리고 발전시켜, 그들의 이상미를 형성해 나갔다.

그리스 미술의 특질은 다른 어떤 민족에게서도 볼 수 없던 인간을 중심으로 한 합리성의 추구였다. 인간만이 자연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고 있던 그리스인은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 완전한 이상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그것은 조화·통일·均整에 의한 이상미의 탐구인 것이다. 그리스 미술이 이전의 크레타·미케네 미술을 그 바탕에서 계승했으면서도, 그것들과는 다르게 발전한 원인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그리스 미술의 황금기인 클래식 시대는 아테네의 최 전성기로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이 결합된 기둥 양식이 보이고 '회화'가 확립되었다.

건축에는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이 결합된 정교한 양식이 나타나고, 조각에는 역동적인 생명감이 표현되었다. 건축, 조각, 회와 각 분야예서 인간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모든 양식은 긴장 관계 속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보였다. 헬레니즘 미술은 고전주의 부흥을 이룬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미술의 귀족화, 대중화로 미술의 '모방' '유행' 경향이 일어났다.

그리스 미술에 사용된 색채는 자연소재의 색채가 그대로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조각이나 건축물에는 대리석 색상의 옅은 브라운계가 많이 사용되었고 도자기에는 황토색과 혹색의 대비가 부각되었다. 의복에서는 소색이나 이와 조화를 이루는 자연색이 애용되었고, 대채색은 장신구에서 많이 보였다. 문양은 자연물이나 동식물의 모티브를 응용한 문양이나 기하학적 문양이 애용되었다. 번개무늬, 소용돌이 무늬, 새끼줄 모양(guilloche) 卍(swastike), 월계수, 올리브, 아칸더스 무의 등이 그것이다. 건축의 기둥머리 부분 장식으로는 소용돌이 문양이나 아칸더스 잎 문양이 정교하게 조각되었으며 도기에서도 이러한 문양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고 있다.

(2)그리스의 건축

그리스 건축의 예술적 달성은 대리석으로 만든 신전·극장·스토아(stoa), 그리고 다른 공공건물이나 기념비적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으뜸 가는 현존 건축양식은 서양건축의 기본적 양식으로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그리스의 신전은 최초에는 목재, 다음에는 석회석과 같은 무른 석재들로 지어졌으나, 마지막에는 대리석으로 바뀌었다. 그리스 신전은 신의 住居이며, 신상을 모시는 건물로서, 그 안에 모여 제례의식을 행하는 장소는 아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적 건물이 내부공간에 중점을 두는 것과는 달리, 외형적 모습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했다. 수평의 拳(보)와 수직의 기둥에 의한 단순하고 명석한 신전은 각 부분이 유기적 통일을 유지하고 아름다운 비례를 가지고 있어서 일종의 조소적 성격을 보이고 있다.

신전의 원형은 미케네의 단순한 메갈론(megalon) 형식에서 발전한 것으로, 그 평면은 前室 '主室 ·寶庫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간단한 구조는 인 안티스 형이라고 하며, 델포이의 성지에 세워진 아테네인의 보고, 시프노스인의 보고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전면 또는 앞뒤에 열주를 가지는 형식을 프로스틸로스(prostylos), 신전 둘레에 1줄의 기둥을 둘러 세운 형식을 페리프테로스(peripteros), 2줄의 열주를 세운 것을 디프테로스(dipteros)라고 한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은 페리프테로스, 디듀마의 아폴론신전이나 아테례의 올림피에이온은 디프테로스 형식의 대표적 신전이다. 그리스의 신전형식은 그 기둥의 양식의 차이로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서 도리스식이 비교적 일찍이 도리스인이 살고 있던 그리스 본토와 남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①도리아식

특징은 간소하고 基壇에 직접 원주가 세워졌으며, 위로 갈수록 굵기가 줄어든다. 기둥은 완만한 곡선형 배불림(entasis)이 있고, 기둥에 얕은 세로줄 홈이 패어 있다. 기둥머리(capital)에는 접시 모양의 원반과 사각형의 板石이 올려져 있고, 지붕을 받치는 수평부에는 2개의 트리글리프(triglyph) 사이에 사각 벽면인 메토프(metope)가 배치되어 있다. 이 도리스식 신전으로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올림피아의 헬라신전, 델포이나 코런트의 아폴론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전, 파에스툼의 포세이돈신전,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 테세이온 신전 등이 있는데, 이 신전들은 BC 7-BC 5세기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

② 이오니아식

이오니아인들이 살고 있던 소아시아 서해안에서 생긴 양식으로, 형식은 도리아식과 거의 비슷하다. 도리스식이 묵직하고 장중하며 단정한 데 비해, 이오니아식은 기둥이 높고 가늘며, 세부에 걸쳐 조각 장식이 많이 있어서 경쾌하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 예로부터 대체로 도리스식은 남성에, 이오니아식은 여성에 비유되었다. 기둥과 기단 사이에는 아름다운 주초가 끼워져 있고, 2개의 소용돌이 무늬를 연결한 특유한 기둥머리를 가지고 있다. 기둥 위 제일 아래의 하대는 수평으로 삼분되어 있고, 중간대(friese)는 트리글리프와 메토프 대신에 두루마리 그림 모양의 연속 부조가 새겨져 있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이 시기의 대표적 이오니아식 작품이었다. 아테네의 에렉테이온, 니케 아프테로스 신전은 그 좋은 예이다. 델포이의 시프노스인의 보고는 인 안티스 형의 이오니아식 소신전으로, 원주대신에 여인상이 사용되었다. 현재 정면만 원형으로 복원되어 델포이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③코린트식

BC 4세기에 들어서서 비로소 나타난 건축미술의 새로운 기법이다. 기둥머리는 원뿔형을 가운데서 잘라 뒤집어놓은 모양이며, 그 표면에 아칸서스의 잎과 덩굴이 얽힌 모양을 조각했다. 그 이외의 부분의 구성은 이오니아식과 거의 같으며, 비교적 자유로운 변화가 보인다. 전체로서는 이오니아식에 비해 한층 더 우아하고 화려한 것이 그 특징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가까이에 있는 올림피에이온은 가장 현저한 코린트식 신전으로, 전면 8주, 측면 20주의 이중주주식이며, 약17 m 높이의 열주가 104개나 늘어선 최대의 신전이다.

아테네의 리시크라테스의 합창대 우승기념비도 순수한 이 양식의 유일한 작품으로서, 사각형의 높은 臺座 위의 코린트식 기둥 사이에 원당(torus)을 두고, 원뿔형 지붕의 정점에는 상품인 三脚杯를 장식한 소박하나 아름다운 건몰이다. 이러한 호사스러운 신전 건축과는 반대로 아르카이크 시대에서 고전시대 전기에 걸쳐, 본토에서 우세했던 도리스식은 점차 그 모습이 사라져갔다. 신전에는 이런 직사각형의 모양 이외에 원당도 건축되었다.

헬레니즘 후기에는 이오니아식과 코런트식을 배합한 혼합식도 생겼다. 그리스의 극장은 오르케스트라·테아트론. 스케네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오르케스트라는 중앙이 원형 평면으로 된 무대이며, 테아트론은 관람석으로서 반원형인 언덕 사면에 있는 동심원의 돌계단에 마련되었고, 스케네는 테아트론 맞은편에 있는 준비실이나 분장실이며 그 뒤에 列柱姶이 부설되어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남동쪽의 벼랑 밑에 펼쳐진 디오니소스 극장은 현재 남아있는 最古의 것으로, 관람객 수용 인원은 1만 4천명에 이른다. 에피다우로스의 극장은 가장 완전한 모습을 오늘날까지 보여준다. 스타디움은 긴 U자형 평면을 둘러싼 3방향에 관람석을 계단식으로 마련한 경기장이다.

그 중 올림피아의 스타디움은 유명하지만 관람석이 흙으로 된 斜面(사면) 뿐이며, 돌로 만든 관람석은 없었다. 아테네의 스타디움은 1896년에 재건되어, BC 4세기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전한다. 신전이나 극장 외에는 도시의 중심부인 공공광장에 市民會場인 브래우테리온이나, 그 집행 기관의 건물인 프리타네이온, 시민의 휴식처인 동시에 물건을 사는 점포인 스토아 등의 공공건물이 죽 늘어서 있었다.

(3)그리스의 조각

그리스 조각을 서양 조각의 최초·최고의 표현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조각이 인간의 육체 그 자체의 미)와 생명을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하여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조각의 재료는 금·상아· 대리석 ·청동·석회암 ·목재 ·陶土 등이지만, 브론즈와 대리석이 가장 많이 쓰였는데, 그것은 그리스 조각의 특징을 발휘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재료였기 때문이다. 그리스 조각의 발전 시기도 다른 미술과 같이 미케네 기하학 양식(BC10~BC 8세기)· 아르카이크 (BC 7~BC 5세기 초)·고전 시대 (BC480~BC 400)· 헬레니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① 미케네 시대 : 이 시기의 그리스 조각은 크레타 미술의 모방과 그 양식을 따른 것이었지만, 그리스적 합리성과 추상성을 보여주었다.

② 기하학 양식 시대: 도리스인의 침입 이후, 크레타 양식에서 이탈하고 새로운 양식으로서의 기하학 양식이 그리스 각지에서 생겨났다. 브론즈 소품들인 나체의 남자·전사·말 ·괴수 등의 조각은 기하학 양식의 항아리 그림과 같이 신체의 마디가 강조되고, 추상화와 안정감이 강하며 생명력이 넘치지만 조소성이 충분치 못하였다.

③ 아르카이크 시대: BC 8세기 중반 이후에 오리엔트 지방과 교류하면서부터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미술의 영향을 받아, BC 7세기부터 그리스 조각은 새로운 출발을 하게되었다. 즉, 이때에 이르러 그리스 조각에는 等身大의 像이 나타나는데, 그 모습·표현·기교는 오리엔트 조각에서 배워온 것이다. 이와 같은 상의 출현은 거의 신전 건축의 탄생과 시대를 같이한다. 신전의 박공, 메토프(metope) ·프리즈(frieze)의부조가 구도와 여러 자세 등을 요구하여 조각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델로스섬에서 출토된 <니칸드라의 헌납상> (아테네 고고학 미술관 소장), <오세르의 부친상>(루브르 미술관 소장)은 아르카이크 시대 最古의 彫像이다.

그 후 BC 600년경에 각지에서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등신대나 거대한 쿠로스상「청년상]과 코레상[소녀상]들이 만들어졌다. 쿠로스상은 나체로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고, 양손은 허리에 대고 바르게 서 있다 그 모습이나 표현에는 이집트 조각의 영향이 강하다. 코레상은 항상 옷을 입고, 한 손은 가슴에 대거나 치마의 주름을 잡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조각의 대표적인 상으로는 스니온 출토의 <쿠로스상> , 디필론 출토의 <쿠로스상의 頭部> , 델포이 미술관의 <클레오비스와 비톤의 형제상> 등이 거의 완전한 모양으로 남아 있다.

딱딱하지만 격렬할 정도로 생명력이 넘치는 초기의 상에 비하여 중기 이후는 거의 등신대이거나 조금 더 커지며, 근육 표현은 한층 더 자연스러운 형태에 가까워진다. 이시기의 彫像은 부드러운 머리, 아몬드(almond)형의 눈, '아르카이크 스마일' 이라는 입모습 표현이 특징이다. 아크로폴리스의 <로스코폴로스(송아지를 멘 청년)> 상이나, 아나비소스 출토 <쿠로스상> 등이 아르카이크 중기 양식의 좋은 예이다.

한편 코레상은 여신의 좌상을 포함하여 모두 옷을 입었으므로 쿠로스상이 굳건한 청년의 근육을 유기적)으로 표현한 데 비해, 코레상에서는 살갗과 어우러진 옷 주름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다. 아르카이크 시기의 모든 상의 입매에 보이는 특징은 인물에 생생한 감정을 부여하고 있다.

아르카이크 후기에는 육체의 유기적인 구성에 대한 관찰이 한층 더 높아진다. 이런 독립상에 병행하여 건축공간을 장식하는 조각으로서의 군상조각이 만들어졌다. 케르키라섬의 <아르테미스 신전 박공부조> 와 <푸른 수염>으로 알려진 아테네의 헤카톰페돈 신전의 포로스 조각, 겔포이의 시프로스인의 보고인 프리즈 등이있다.

④고전 시대: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는 모든 면에서 큰 발전을 이룩하고 새로이 고전기를 꽃피웠다. BC 480년경부터 아르카이크 스마일이 사라지고, 묵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어 긴장한 시대의 정신과 생기를 나타낸다. 델포이의 브론즈 상 <馬夫> , 아이기나섬의 아파이아 신전이나,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의 힘찬 박공 조각 등은 아르카이크 시기에서 고전기로 향하는 과도기의 걸작이다.

BC 5세기 고전 전기의 조각은 조화와 균형에 의한 理想美를 창조했다. 像은 모두 단순하며 또 명석한 형식으로 정리되어 개개의 감정을 넘어선 정신을 보이며, 사실주의가 이상의 경지에까지 높아졌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가는 미론인데, 그는 <원반 던지는 사람> 이나 <아테나와 마르시아스>의 상에서 운동의 정점에 도달한 긴장의 순간을 훌륭하게 포착하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動中靜의 일순간이다.

여기에는 운동이라는 격렬한 동작에도 불구하고 고양된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시기의 조각가 피디아스의 造營에 의한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은 그의 양식을 전하는 걸작으로 유명하다. 금과 상아로 만든 <아테나 파르테노스>의 거대한 상을 비롯하여 <아테나 레무니아> ,올림피아의 <제우스 좌상> 등은 그의 가장 빼어난 작품이라고 하나, 그 원작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현존하는 파르테논의 프리즈나 박공 조각은 그의 양식을 전하는 걸작이다. 파나테나이아의 행렬을 부조한 프리즈는 전체 길이 160m로 인물·동물들이 360여를 혜아런다 미론과 피디아스와 더불어 이 시기를 대표하는 폴리클레이토스는 인체의 가장 아름다운 비례를 계산적으로 산출하여 <카논> 이란 책을 펴냈다. 그의 작품으로 유명한 <창을 든 청년> <승리의 머리띠를 맨 청년>의 彫像은 그 비례에 입각해서 제작되었다고 전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시작된 고전시대 후기는 도시 상호간의 대립과 항쟁의 시기로, 도시의 이념이 약해짐과 더불어 사상이나 감정상에서도 전세기와는 달리, 현실적인 풍조가 고조되어 왔다. 예술외 양식에서도 이전의 숭고한 양식에서 보다 인간적인 표현으로 옳겨간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에 의해 優美)한 여성의 이상상을 표현해서, 고전시대 후기의 우미양식을 화려한 프락시텔레스, 그와는 대조적으로 강한 눈매 속에 인간의 내면적인 감정을 포착한 파로스섬 출신의 스코파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궁정조각가로 대왕의 초상 조각을 제작하고, 또 <몸의 흙을 닦는 청년>상으로 우미한 인체의 이상상을 창조한 리시포스 등온 이 시기에 활약한 가장 훌륭한 조각가들이다.

⑤헬레니즘 시대: 이 시기에는, 조각이 고전 시대 후기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모든 면에서 시대를 뛰어넘는다. 고전적 감정은 흥분으로 변하고, 운동은 동요·격동에 이르게 된다. 새로운 미술의 중심지는 본토를 떠나 이집트·시리아·소아시아· 로도스 섬으로 옳겨서 이루어졌다. 동방의 여러 민족이나 문화와의 접촉은 조각의 製材를 매우 확대시켰다. <거위를 안은 아이> 나 <醉漢(취한)>에 이르는 세속적인 제재가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 표현되고, 한편 꿇어 앉거나 돌아보는 모습 등으로 관능적인 미를 자랑하는 아프로디테가 많이 제작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는 <라오콘>,<사모트라케의 니케>, <웅크리고 앉은 비너스>, <瀕死(빈사)의 갈라티아인> , 그리고 페르가몬의 신전 대 제단의 浮彫 등이 있으며, 어느 작품에나 격정과 약동이 소용돌이치는 역동적인 표현이 넘쳐 있다.

(4)그리스의 회화

그리스 시대의 회화)는 오늘날 거의 없어져 버렸다. 그 때문에 고대의 문헌. 陶畵와 아울러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로마 시대의 현존하는 벽화를 통해서만 상상할 수밖에 없다. 문헌에 의하면 화가로서 최초로 알려진 거장은 타소스의 폴리그노토스이다. 그는 BC 470년경부터 아테네에 와서 활약하면서 훌륭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기품이 있고 정확하며 사실적인 묘사는 당시의 조각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BC 5세기 후반에는 아가타르코스가 나와서 비극의 무대 배경을 그렸고, 같은 시대에 아테네출신의 아폴로도로스는 陰影에 의한 정밀한 묘사로 유명하여 당시에는 스키아그라포스(음영화가)라고 불렀다. 그 뒤로 제욱시스나 파라시오스 등이 활약하여 철저한 寫實을 추구했다. 제욱시스가 파라시오스와의 작품 경쟁 때에 그가 그런 포도를 새가 날아와서 쪼았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BC 4세기에는 시크온의 에우폰포스,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에서 회화의 이론적 기초를 부여한 팜필로스, 앤코스틱(encaustic)의 기법으로 명성을 얻은 파우시아스, 그 밖에도 니코마코스와 플록세노스 등이 활약하여, 원근법이나 명암화법에 의한 회화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고 전해진다. 폼페이 출토의 유명한 모자이크화인 <이소스의 전투>는 블록세로스의 명작 <알렉산드로스와 댜리우스의 전투>를 模作한 것이라고 한다.

알랙산드로스 대왕의 궁정화가였던 아펠레스는 고전시대 후기의 그리스 최대의 화가로 전해진다. 헬레니즘 시대외 회화는 건축이나 조각과 같이 극히 다양화하여 장식적·동적·관능적이 되었다. 그 주제도 신화와 역사 이외에 정물화나 풍속화가 나타났다. 색채는 더한층 화려해지고, 투시원근법이 거의 달성되었다. 폼페이나 헤르쿨라네움의 벽화는 이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5)그리스의 공예

그리스의 공예를 대표하는 것은 陶器이다. 최초의 도기는 BC 10세기경의 초기 기하학양식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기하학양식의 典刑은 아테네의 디필론 묘지에서 출토된 BC 8세기경의 한 무리의 거대한 항아리이다. 뒤이어 BC 8세기부터 BC 6세기 초에 걸쳐 그리스 각지에 동방의 有翼獸(유익수)나 물새, 동물이나 인물을 실루엣으로 그린 여러 형태의 다채로운 항아리가 나타났는데, 동방양식에서 코린트 양식의 항아리이다.

BC 6세기에 아테네에 黑繪(흑회) 도기가 생겨 도기는 현저히 발달하였다. 이것은 적갈색 바탕흙 위에 검은색으로 실루엣 화상을 그리는 기법이다. 그 가장 뛰어난 예는 화공인 클리티오스와 도공 에르고티모스의 작품인 크라텔 <프랑수아의 항아리> 이다. BC 5세기말에는 紅繪式 도기가 나타났다. 이것은 그림의 부분은 적갈색 바탕흙을 그대로 남기고, 그 나머지 배경을 흑색으로 칠하는 기법이다.

이 무렵에 백색의 레큐토스도 나타나, 이후 그리스의 도예는 형태와 도화 양면에서 사상 최고의 발전을 이루었다. 또 우미한 색채의 부인상으로 알려진 타나그라 인형은 BC 4세기에서 BC 3세기에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금속공예의 재료로는 황금·은·브론즈 등이 쓰였다. 그 가운데서도 청 브론즈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여 무기·마구·용기·가구·거울 등 다방면에 사용되고, 기법도 打出·鑄型·線刻·象嵌(상감) 등 다양하였다. 올림피아 출토의 <황금의 팔> , 브론즈의 <그리폰의 두부>, 프랑스 비크스 출토의 커다란 안포라, 아프로디테와 빵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선각한 경개, 그 밖의 귀금속으로 만든 장신구 등, 어느 것이나 각각 그 시대의 그리스 공예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는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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