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마저 주고 떠난 사람 /어느 슬픈 젊은이
2007-03-25 17:07:30

육신마저 주고 떠난 사람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디모데전서 6:7)

전생수 목사는 2005년 10월 14일 밤 늘 하던 대로 교회 강단의 의자에 앉아 기도하던 중 뇌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는 회복되지 못하고 19일 향년 52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그의 유언대로 그의 각막, 신장, 간 등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이식되었고 나머지 시신은 화장되어 고향인 강원 인제군의 산과 들판에 뿌려졌습니다.

지난해 2월 25일 사순절 첫날에 작성한 그의 유서를 읽으면 죽을 때까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자’는 신앙으로 자신의 삶과 하나님의 진리를 일치시켜 나가려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는 그 유서입니다.

虛耳(만득이) 전생수목사의 유서
이 땅에 아무개라는 이름을 달고 산 지 쉰 한 해 되는 봄. 예수의 도에 입문한지 스물여덟 번째 되는 해에 유서를 쓰노라. 나는 스물 셋 되던 해에 예수의 도에 입문하여 늦은 나이에 학문을 접하며 좋은 스승들을 만났고 좋은 길벗들을 만나 여기까지 살게 된 것에 감사하노라.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 놓은 재산 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무슨 배경 하나 없이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누릴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

사람들의 탐욕은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치솟고 사람들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고 내달리며, 세상의 마음은 흉흉하기 그지없는 때에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하노라.

이에 남은 이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노니, 첫째, 나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인즉,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하지 말라.

둘째, 나는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어떤 음식이든 먹지 않을 것인즉 억지로 권하지 말라. 또한 내가 의식이 있는 동안에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를 꺼려하지 말라.

셋째. 내가 죽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려 장례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

넷째, 내가 죽으면 내 몸의 쓸모 있는 것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내가 예배를 집례 할 때 입던 옷을 입혀 화장을 하고,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향 마을에 뿌려 주기를 바란다.

다섯째, 내가 죽은 뒤에는 나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땅 위에 남기지 말라.(푯말이나 비석 따위조차도) 와서 산만큼 신세를 졌는데 더 무슨 폐를 끼칠 까닭이 없도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는 목회자로 살면서 목회를 위한 목회, 교회를 위한 목회를 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목회를 하였으니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계속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가 영원한 생명 안에서 어우러질 수 있으리라 확신하노라.

예수의 도에 입문한지 스물여덟 번째 되는 해 봄 2004년 2월 25일 사순절 첫 날에

虛耳(만득이) 전생수 씀.

 


어느 슬픈 젊은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다음은 어디서 퍼 올린 어느 여학생의 글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날라리'입니다. 일주일에 출석하는 날보다 결석하는 날이 더 많았고, 학교 가는 날에도 수업은 들어가지 않고 친구들이랑 모여서 담배를 피우지만 학교에서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학교에 간 날 누가 전학을 왔더군요. 난 그냥 무시한 채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내 짝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나보고 "안녕^^*" 이라더군요. 나도 일어나서 말을 건넸습니다. "너 좋겠다. 나 학교 잘 안 나와서. 너 혼자서 앉는 날이 많을 꺼야. 너도 혼자 앉는 게 더 좋겠지?"

그 다음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학교에 갔습니다. 그 아이는 나한테 인사하더군요. 나는 그 아이한테 처음으로 웃으면서 인사해 봤습니다. 그 아이가 나보고 내기 하자더군요. 내가 학교에 안 나오면 그 다음날 내가 선물 사주고, 내가 학교에 나오면 그 아이가 선물을 사주기로.

나는 선물이나 받아보자는 심보로 그러자고 약속했습니다. 나는 그 뒤로 학교에 꾸준히 다녔고, 그 아이는 나를 위해 매일 선물을 사 주더군요. 하지만 난 별로 관심이 없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냥 책상에 쌓아두었습니다.

어제는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한테 선물로 주려고 종이접기를 했습니다. 힘든 장미를 접어 예쁘게 포장해서 가방에 넣어 오랜만에 웃으면서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종례시간에 선생님이 하얀 국화를 들고 교실에 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이 우시면서 오늘 학교 오는 길에 그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진지 20분 만에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가 죽은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네요. 나는 또다시 결석을 밥 먹듯이 하다 어느 날 책상에 쌓아 놓았던 선물을 집으로 가져와 하나씩 풀어 봤습니다. 필기도구며 참고서, 노트까지 그리고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네가 이 선물 때문이라도 학교에 돌아왔으면 좋겠어. 지금 어른들이 널 우리들의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그래서 네가 힘없이 밀려나고 있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널 밀어내려는 사람들을 헤치고 우리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와. 그게 내 바램이야. 그리고 널 첨 봤을 때부터 널 내 여자친구 만들기로 했었어. 사랑해 정말로... " 난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학교성적으로 버림받은 젊은이, 가난으로 버림받은 젊은이, 사랑받지 못해 버림 받은 젊은이들... 이들에게 꿈을 주고 사랑을 주어야하는데 우리들의 공교육은 버림받았다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양산하고만 있지나 않은가 회의하게 됩니다.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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