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온이 뚝 떨어진 6일 오전 서울 봉천동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강당. 문을 밀고 들어서자 똑딱똑딱 탁구공 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웠다. 초·중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 10여명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쉴새없이 공을 넘기고 있었다. 강당 한쪽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앙카라레(집중해), 츄 츄(파이팅, 파이팅).” 밝은 연두색 운동복을 걸친 한 중년 여성이 한 손에 라켓을 들고 제스처를 취해가며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몽골에서 16년째 탁구 선교를 펼치고 있는 강영순(51·여) 선교사였다. 그는 지난달 22일 3주 일정으로 제자와 코치 15명을 이끌고 전지 훈련을 위해 방한, 서울 성산동 열림감리교회에 머물면서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주일과 수요일에는 교회에서 함께 예배도 드린다.
오는 15일 출국 예정인 강 선교사는 “탁구 훈련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에게 좀 더 넓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큰 꿈을 갖도록 돕고 싶어서 한국을 찾았다”면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걱정”이라고 웃음 지었다.
1991년. 30대 중반이었던 그는 ‘주님의 이끄심에 따라’ 혈혈단신으로 몽골 땅을 밟았다. ‘한국인 1호’ 몽골 선교사였다. 소아마비로 불편한 오른쪽 다리는 그의 선교 열정 앞에서는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장애인 탁구국가대표로 활약했던 경력이 중요한 선교 도구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1993년 솔롱고스(‘한국’의 몽골 명칭)와 몽골의 첫 글자를 딴 ‘솔몽탁구클럽’을 만들었다. “학생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탁구에 복음을 곁들여 전했어요. 1대1 전도와 제자양육 훈련을 하는데 탁구 만한 선교 수단이 없더라구요.”
지난 93년말 몽골 울란바토르에 세워진 문힝 암드릴(영원한 생명) 교회는 ‘핑퐁 선교’의 첫 열매였다. 자신의 제자이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변신한 학생들의 공이 컸다. 그는 이후 교회 2곳을 더 개척했고, 현재 교회사역 일체를 현지인 교역자들에게 이양하는 중이다. 강 선교사는 지난 97년 선교사로 헌신한 양영자 전 탁구국가대표 선수 가정의 몽골 정착을 도우며 신앙의 멘토이자 동역자가 되어주기도 했다. 미혼인 그는 현재 입양한 딸 3명과 함께 산다. 지금까지 그가 ‘가슴으로 낳아’ 독립시킨 자녀만 10명이 넘는다.
이방인으로, 여성으로, 장애인으로 온갖 편견과 수모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강 선교사는 그때마다 “실력으로 보여주자”고 이를 악물었다. 지난 10여 년 간 솔몽탁구클럽에는 150여명의 학생선수들이 거쳐갔고, 국가대표만 20명 가까이 배출됐다. 꼼꼼하고 혹독한 지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 선교사는 이 같은 능력을 인정받아 히로시마(1994), 부산(2002) 아시안 게임에서 몽골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했다. 지금은 몽골탁구협회 국제이사를 맡고 있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후원금으로 사역을 펼치는 강 선교사는 요즘 한국의 침체된 경기를 온 몸으로 실감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맘 때보다 후원금이 절반으로 줄었더라구요. 하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때를 따라 필요한 만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거든요.”
박재찬 기자 / 2007.03.07 / 국민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