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자 : 지강유철 출판사 : 홍성사 가 격 : 20,000원
책 소개
‘한국의 슈바이처’, ‘사랑의 의사’, ‘무소유의 삶’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기려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평전 《장기려, 그 사람》이 출간되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했고, 우리 사회의 개혁적 지식인들(홍세화, 진중권, 김규항, 고종석, 오한숙희, 박홍규 등)을 꾸준히 인터뷰해 온 저자 지강유철은 장기려에 대한 이전의 연구서나 책들이 간과하거나 에둘러 갔던 문제들 ― 고신교단이 선생을 조기 은퇴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의사들 사이의 폭력사태, 고신대 의대생들의 대규모 유급과 교단에 저항했던 교수들의 재임용 탈락을 불러왔던 학내사태, 제도권 교회를 떠나 말년에 몸을 맡겼던 ‘종들의 모임’과 다시 받은 세례, 함석헌과 장기려의 관계, 선생의 신앙과 사상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후지이 다케시 야나이하라 다다오의 영향, 평양 산정현교회의 분열과 기독교의 변절 등 ― 까지 포용력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그를 다룬 문헌에만 의존하지 않고 장기려의 일기, 노트,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들, 무엇보다 그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가공된 장기려’가 아니라 ‘참 장기려’를 그려내고 있다.
성산 장기려(聖山 張起呂, 1911-1995)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입암동에서 아버지 장운섭, 어머니 최윤경의 차남으로 출생.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나고야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평양 연합기독병원(기홀병원) 원장,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외과 교수, 부산복음병원 초대 원장, 청십자병원 원장, 부산아동병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부산대, 가톨릭대, 서울대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고, 우리나라 최초로 ‘간의 부분절제(1943) 및 대량절제술(1959)’에 성공했으며, 부산외과학회를 창립하여 의학 연구에 공을 남겼다.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무료 병원, 간질 환자들의 모임 ‘장미회’ 활동,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협동조합 ‘청십자의료보험’ 창설 등은 그가 평생 동안 무엇에 소망을 두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증언해 준다.
아내 김봉숙과의 사이에 6남매를 두었으나 6.25전쟁 때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하게 된 뒤, 북에 두고 온 아내와 가족을 그리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 부문), 국민훈장 무궁화장,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 자
지강유철
1958년 강원도 화천 출생. 총신대에서 지휘를 공부하고 20여년 동안 여러 교회에서 전도사와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 교단장금 권선거에 대한 양심선언을 계기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및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했으며, 지금은 월간 <인물과 사상>객원 인터뷰어와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요셉의 회상>(홍성사), <안티 혹은 마이너>(우물이있는집)가 있다. 저자 이메일 j33luke@empal.com
목 차
머리말 감사의 말 프롤로그
1부 어린 시절과 거듭남 한국의 갈릴리 ‘평안도’ 성경 이야기를 듣고 자란 유년 시절 장기려의 선친들 장기려를 있게 한 사람, 이경심 민족의식을 느꼈던 의성소학교 시절 송도고보 시절의 회심 장기려와 연애
2부 의사로서의 준비기 의사되기를 결심할 당시의 조선 의료계 공부밖에 모르던 경성의전 시절 두 가지 중요한 선택 눈동자요 손과 발이었던 여자, 김봉숙 첫 수술을 경험한 전문의 수련과정 이광수 소설 속 주인공과 장기려 한평생 기억해 온, 스승 백인제 박사 장기려와 노래 장기려와 스포츠
3부 평양 기홀병원 시대 이해할 수 없는 침묵 ‘대전’을 등지다 기홀병원에 천거해 준 이용설 박사 외과 과장이 되다 의사들의 텃세 ‘성서조선 사건’에 연루되다 더럽혀진 교회를 등지고 사면초가가 준 값진 선물 삶과 신앙의 스승들 1-야나이하라 다다오, 함석헌, 후지이 다케시
4부 공산치하의 평양생활 충돌하는 기독교와 공산주의 “건국하다 죽어야지” 북한 땅의 보이지 않는 최고 통치자 장기려와 평양 산정현교회 6.25전쟁과 장기려 삶과 신앙의 스승들 2-오정모, 주기철, 손양원
5부 복음병원 시대 “나의 세계는 나의 사랑하는 곳에 있다” 부산에서의 첫 생활, 제3육군병원 용공혐의로 체포되다 의사로서 행복했던 복음의원 시절 능력껏 일하고 필요만큼만 가져가는 무료 병원 복음의원의 정체성 진통 의학도로 알찼던 부산의대 교수 시절 행려병자에게 펼친 사랑의 의술 첫 세계 일주 성서연구를 위한 소그룹 ‘부산모임’ 장기려의 글쓰기
6부 청십자의료보험 시대 “사랑의 동기가 아니거든” 언행을 삼가라 공동체에 대한 꿈 간질 환자들의 평생 친구 복음간호전문대학의 설립 청십자의료보험의 태동 ‘청십자’ 창립 주역, 김서민과 채규철 청십자의료보험의 도약
7부 평화운동 시대 두 번째 소명 복음병원의 수난 ‘청십자’의 열매들 원칙을 고수하는 용기 장기려의 눈에 비친 미국 우정으로 극복한 내면의 위기 갑자기 날아든 북한 가족 소식 분단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8부 진리 안에서 누린 자유 다시 받은 세례 “여기만 진리입니까?” ‘종들의 모임’의 기본 정신 ‘종들의 모임’을 선택한 이유 평생 이어진 교회 개혁의 열망
9부 말년의 나날들 장기려, 그 사람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영원한 안식
에필로그 성산 장기려 선생 주요 연보 찾아보기
|